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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서당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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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달군 작성일15-01-27 19:49 조회6,18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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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별자리서당 강의 요약과 추천도서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28수 별자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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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그려진 몸과 운명의 지도: 동양의 하늘 이야기

 

손영달

 

우주는 혼자 쇼하지 않는다

20143월 진주에 운석이 떨어졌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 진짜로 별에서 그대가 온 것이다. 진주 일대의 넓은 들판에 떨어진 운석을 사람들은 운석 로또라 불렀다. 우주 광물로서 상당한 연구 가치를 가진 이 돌덩이들은 거래 가격도 만만치 않게 천문학적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별에서 온 그대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수 천 명의 운석 사냥꾼들이 드넓은 진주 들판을 가득 메웠다.

운석의 입장(?)에서는 다소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다. 역사상 이 만큼 운석이 환영받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대대로 사람들은 운석을 상서로운 징조로 여겼다. 운석은 곧 하늘이 인간 세상에 내릴 무시무시한 재앙의 전조였다. ‘운석(隕石)’이라는 말에 이미 그런 뜻이 담겨 있다. 왜 하늘에서 돌이 떨어졌다는 뜻의 석운(石隕)’이 아니라, ‘돌을 떨어뜨렸다는 뜻의 운석(隕石)’이라 표기하는가? 송나라의 주석가 정자(程子)의 말에 따르면, 하늘이 사람의 잘못을 책망하기 위해 떨어뜨린 돌이 바로 운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운석에 관한 고대의 생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웠던 진시황(秦始皇)의 이야기를 들 수 있겠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 36, 동군(東郡)이라는 지역에 운석이 떨어졌다. 한 백성이 운석 위에 진시황이 죽고 제국이 분열 된다고 새겼다. 분노한 진시황은 인근에 거주하던 백성을 모두 죽이고 돌을 불태워버렸다. 하지만 어떠한 행위로도 이 불길한 전조를 막아낼 순 없었다. 그 이듬해 7, 진시황은 달리는 마차 위에서 허망하게 객사하고 만다.

운석은 곧 하늘이 내리는 경고였다. 인간이 행한 과오가 전체 우주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는, 그리고 이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머지않아 우주가 거대한 몸부림을 치게 될 것이라는 최후통첩에 다름 아니었다. 운석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봤다. 위정자라면 특히나 이를 더욱 무거운 의미로 받아들여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옛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우주관의 한 자락을 확인할 수 있다. 하늘이 우리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오랜 시간 인간의 생각을 지배했다. 인간의 운명과 사건은 우주의 운행과 맞물려 돌아간다. 이를 알았던 인간은 하늘을 보고서 자신의 삶을 읽어냈다. 태양의 운행을 읽어 농사의 때를 읽고, 달의 차고 기욺을 보고 사람의 몸을 이해하며, 별자리의 이동을 포착해 운명의 조화를 읽었다. 해와 달과 별들, 하늘에 수놓인 빛줄기들은 그야말로 삶의 길을 밝혀주는 길잡이였다.

그런데 불과 몇 세기 만에 하늘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오늘날 하늘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객관적인 대상에 불과하다. ‘이윤 가능성의 잣대로 우주가 저울질 되는 시대. 하늘은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스마트폰을 켜면 한 낮에도 내 머리 위에 어떤 별이 떠 있는지 알 수 있다. 미디어에는 천체의 운행이 실시간 생중계 된다. ‘금생에 다시 못 볼 우주 쇼라는 말과 함께! 이때의 우주란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상연되는 단순한 극장에 지나지 않는다. 천문(天文)우주 쇼가 되어 버린 시대. 옛 사람들의 우주관은 우리에게 단순하고도 명백한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우주는 결코 혼자 쇼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늘의 무늬를 읽다

인간은 왜 하늘을 올려보았을까? 다름 아닌 앎의 열망 때문이다. 변함없는 질서를 제공하는 하늘의 별들을 관찰하면서 인간은 삼라만상의 변화의 규율을 알아냈다. 앎이 점차로 깊어지자 별들의 운행이 사계절의 변화를 만들고, 사계절의 리듬 속에서 인생의 희노애락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우리는 우주와 긴밀히 연결된 존재였다. 천체의 조화, 우주의 운행이 삶의 여정과 운명의 전개와 다르지 않다는 것, 고대의 천문학은 일찍이 이러한 지혜에 도달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천문(天文), 우주(宇宙) 등의 용어가 이미 그러한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주(宇宙)()’는 상하, 사방의 공간을, ‘()’는 고금(古今)의 시간을 뜻한다. , 우주란 저 멀리에 외따로 떨어진 어딘가가 아니라 시공간의 총체로 짜여진 지금-여기를 의미한다. 또한 천문이란 하늘의 무늬()를 읽는다는 뜻이다. 미묘한 무늬()’를 통해 하늘의 전언, 메시지()’를 읽는 것이다. 그것을 읽어 우주의 운행에 부합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천인이 합일되는 좋은 삶에 도달할 수 있다.

동의보감에 인용된 손진인의 말은, 인간과 우주가 대칭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선명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사람의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닮은 것이요,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닮은 것이다. 하늘에 사계절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 하늘, , 인간은 하나다. 하늘의 별들은 그 자체로 몸과 우주의 지도이다.

하늘, , 인간이 하나로 감응하는 오묘한 삼중주. 그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웅장한 앎의 하모니였다. 아득한 거리를 두고 떨어진 별들의 세계가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삶과 연결된다. 별들의 질서를 안다는 것은 내 삶을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자기 존재를 이해하는 자의 앎은 라는 경계를 넘어선다. 자신의 앎을 확장하여 다시금 우주의 이치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하여 앎은 삶의 문제이자, 공동체와 전체 우주에 결부된 문제로 깊어지게 된다. 우주에 대한 앎을 자기 존재에 대한 궁극적 이해로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고대의 천문학은 오늘날 학문의 영역에서 추방되어 버린 점성술(astrology)에 근본적인 뿌리를 두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미신이라는 선입견을 지우고 고대의 천문학을 볼 필요가 있다. 동양인들에게 천문은 인간사에 대한 예측과 대응의 수단이었고, 오만한 군주에 대한 견책의 수단이었으며, 우주 질서 안에서 삶의 길을 찾으려는 군자(君子)의 자기 수련의 기술이었다. 하늘에서 얻은 앎으로 옛사람들은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려 했고, 궁극적으로 자기 존재를 알아가려 했다. 고대의 천문학은 강한 실천적 색채를 띤 인간학이었다.

 

우주의 걸음걸이, 음양오행

동양의 지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이다. 익숙하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단어다. 회남자의 한 구절은 우리에게 이 말의 뜻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는 우()와 주() 사이에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앞서 보았듯 우주(宇宙)’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겐 이 둘을 별개의 것으로 여기는 고질적인 습관이 있다. 이 통념을 버리고 시간과 공간을 동시적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우와 주 사이에 있는 미묘한 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에는 이들을 아우르는 이치가 담겨 있다. 천문학으로 설명하자면 음양(陰陽)은 해와 달을, 오행(五行)은 육안으로 관찰되는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의 다섯 행성을 뜻한다. 이들은 공간의 구획과 시간의 조직 원리로 적용된다.

오행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봄이라는 시간은 해가 떠오르는 방향인 동쪽과 관련되며, 이들은 오행 중에 생성의 기운을 담은 목()기운에 배속된다. 여름이라는 시간은 한낮에 태양이 자리한 남쪽과 관계되며, 이들은 성장의 기운을 담은 화()기운에 배속된다. 가을이라는 시간은 저물녘에 해가 걸리는 방향인 서쪽과 결부되며, 이들은 수렴의 기운을 가진 금()기운에 배속된다. 겨울이라는 시간은 태양이 머물지 않는 북쪽이라는 공간에 상응하며, 이들은 응축의 기운을 담은 수()기운에 배속된다.

오행의 도움을 받으면 광대한 하늘도 구획 지을 수 있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별자리의 교대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동서남북의 공간으로 구획된 하늘이 운행하며 계절마다 다른 별자리가 찾아든다. 봄에는 동방 청룡 별자리, 여름에는 북방 현무의 별자리, 가을에는 서방 백호의 별자리, 겨울에는 남방 주작의 별자리. 이 별자리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이 동양 고유의 별자리인 ‘28(宿)’ 혹은 ‘28()’이다. ‘28라는 이름은 이 별자리들이 일월오성이 머무는 숙소(宿)’라는 의미이며, ‘28라는 이름은 ()를 펼치다는 뜻이다. 바둑판 위에 바둑돌이 놓여 세()를 형성하듯, 28수라는 우주의 바둑판 위에 일월오성의 바둑돌이 운행하며 세상에 기()를 펼쳐준다. 여기서 우주의 바람인 팔풍(八風)이 일어나고, 여덟 절기가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만물의 생성 원리이다. 오행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쳐 내는 상생 상극의 흐름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만들어지고, 몸의 오장육부가 생겨나며, 세상사의 희노애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행의 행()절뚝거리며 걷는다는 의미다. 28수 위를 지나는 오성은 갈 지()’자로 어지러이 운행한다. 태양이 지나다니는 길 황도(黃道)는 북극성의 중심축으로부터 치우치고 찌그러져 있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탓이다. 그 결과 삼라만상의 변화를 규율하는 오행의 운행 역시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삐걱이게 된다. 우주는 태생적 절름발이다. 태과불급(太過不及)이라는 불균형 상태가 이미 생명의 조건인 셈이다. 하지만 이 우주적 어긋남이 있기에 변화와 생성 또한 가능한 것이다. 고통과 갈등, 충돌이 거꾸로 우리를 살게 만드는 동력이라는 역설!

우리는 이런 삶의 부정적 영역들을 되도록 제거하려 애쓴다. 고통 없는 세상, 갈등 없는 평화 상태를 꿈꾼다. 여기, 동양의 지혜는 우리에게 알려 준다. 죽음이 있기에 태어남이 있고, 고통이 있기에 삶 또한 있는 것임을.

그렇다고 이 어긋남 속으로 무모하게 달려들 수많은 없다. 우리가 가진 앎을 활용해 그것을 읽어내야 한다. 그럴 수 있는가? 옛 사람들은 감히 그렇다고 답했다. 절뚝거리는 우주의 걸음걸이를 따라 자연과 생명은 돌고 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순환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요, ‘든다는 것이다. 계절의 순환이 원점으로 돌아온 이 겨울, 한 번쯤 하늘을 보자. 하늘에 그려진 미묘한 지도를 읽어보자. 천지자연과 호흡하며 사는 법을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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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북드라망에서 나온 책들

고미숙, 나의 운명사용 설명서, 북드라망

고미숙, 몸과 인문학, 북드라망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북드라망

류시성, 손영달, 갑자서당, 북드라망

송혜경, 김동철, 절기서당, 북드라망

손영달, 별자리서당, 북드라망


***기타 참고도서

전창권, 어윤형, 음양이 뭐지, 와이겔리

전창권, 어윤형, 오행은 뭘까, 와이겔리

전창권, 어윤형, 음양오행으로 가는 길, 와이겔리

강진원, 역으로 보는 동양 천문 이야기, 정신 세계사

김일권, 동양 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 예문서원

유아사 야스오, 몸과 우주성, 모시는 사람들



댓글목록

수강생님의 댓글

수강생 작성일

강의요약과 자료 감사합니다~ '별을 떨어뜨리다'라는 운석의 뜻이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하늘을 보면서 인간의 길을 생각한 옛 사람들 이야기가 생생하네요.

달군님의 댓글

달군 작성일

ppt가 용량 초과로 안 올라가네요. 파일이 필요하시면 다음 주에 usb 에 받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