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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캠프> 튜터 인터뷰 - 낭송, 최고의 공부
 글쓴이 : 감이당 | 작성일 : 14-12-30 11:53
조회 : 3,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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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s <낭송캠프> 튜터들을 만나다


또다시 캠프의 계절이다. 방학과 연초를 뜻 깊게 보내려는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 열리는 수많은 캠프들. 겨울만이 아니라 여름까지. 우리는 캠프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가끔 이 시대적 흐름은 우리가 원초적으로 길을 떠나는 존재들, 유목하고 여행하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보고 싶어 한다. 어떻게 이 길 위에, 자기로부터 떠나는 길 위에 설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방법이 궁금해 ‘낭송캠프’의 튜터들을 찾아갔다. 그들이 말하는 캠프, ‘낭송캠프’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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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는 내용인데요. ‘낭송’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박장금 : 낭송은 알다시피 소리를 내서 글을 읽는 것이죠. 하지만 단순히 읽기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어제 영화 <인터스텔라>를 봤는데 거기서 낭송에 대한 영감 같은 것을 좀 얻었어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넘나드는 영화더라고요.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귀신이나 유령의 영역으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현대과학이나 양자물리학과 같은 과학의 언어로 이런 세계를 보여주려고 했던 영화 같았어요. 미래의 아버지와 과거의 딸이 딸의 방에서 만나는 장면은 불교의 인드라망 같은 것을 떠올리게 했어요. 보이진 않지만 현존하고, 서로 감응하는 세계를 과학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거죠. 낭송도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소리를 통해서 우주의 리듬을 서로 감응하게 하는 것? 그게 낭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창희 : 낭송이라고 할 때 낭(朗)자는 ‘밝다, 맑다, 환하다, 깨끗하다, 유쾌하고 활달하다’ 등의 뜻을 가진 글자에요. 거기에 외울 송(誦)자를 써서 맑고 밝고 유쾌하게 외운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 소리 내서 외우면 맑고 유쾌한 기운이 흐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낭송이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기보다는 소리 내어 읊음으로써 몸의 기운을 맑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선시대 유학자 이덕무의 글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평소 가슴 속에 바윗돌이 얹힌 듯하여 까닭 없이 슬픔이 일어 깊이 탄식할 때가 있다네. 그때는 『논어』를 읽지. 그러면 기운이 풀어지더군.” 그러니 낭송은 글을 소리 내어 외우고 그 기운이 몸과 마음을 맑고 유쾌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캠프 소개글에 보니 어려운 고전을 익히는데 낭송이 최고의 공부법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런 것이죠?

이영희 : 일단 낭송하려면 소리를 내야하기 때문에 몸을 써야 합니다. 아랫배에서부터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올 때까지 오장육부의 기운을 다 쓰는 거죠. 이때 글과 소리가 섞이면서 자연스러운 리듬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글이 몸으로 체화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게 근대이전엔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공부법이었어요. 낭송은 이 잃어버린 공부법을 되살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공부 따로, 몸 따로, 취업 따로, 스펙 따로. 온통 따로 국밥인 이 시대의 공부와 몸을 일치시키는 공부법이기도 하고요. 앎과 삶의 일치?^^ 이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까요? 그러니 낭송은 최고의 공부법인 것이죠.

오창희 : 우리가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어를 배울 때 팝송으로 접근하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글자도 깨치지 못한 아이들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지만 노래를 곧잘 따라 부르잖아요. 그러다가 서서히 뜻도 모르고 외우던 노래가 어떤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고전 또한 마찬가지고 낭송은 어려운 고전을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인 거죠.

박장금 : 맞아요. 낭송은 일단 남녀노소, 부귀빈천을 떠나서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공부법입니다. 낭송 앞에서는 배운 게 없어서라든지, 나이가 많다든지 하는 것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냥 소리 내서 읽고 외우면 됩니다. 그런 점에서 또한 최고의 공부법이자 매혹적인 공부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 : 핑계 댈 수 없는,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 같은 공부법이군요?^^

박장금 : 그래요. 읽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공부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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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질문과 연결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영희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낭송은 아주 새로운 공부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래 전부터 낭송이 기본적인 공부법 가운데 하나였으니까요.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공부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라도 있나요?

오창희 : 예전에는 공부라고 하면 몸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의미가 훨씬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덕무의 글을 보면 이런 말도 나와요. “옛날에 여조겸이라는 자가 기운이 지나쳐서 매우 사나웠다고. 그러다가 병이 들어 『논어』를 읽고서 그 기질이 변했다.”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거라는 생각이 보편화되었어요. 기질이 변하는 공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공부란 것이 스펙을 쌓는 도구에 불과하게 된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하다니 보니까 공부도 그런 성과를 내기 위한 도구가 된 거죠. 그런데 낭송은 이와는 다른 것들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박장금 : 맞아요. 낭송은 일단 몸과 마음의 일치를 전제로 합니다. 낭송하는 동안 딴생각은 잘 안하게 되자나요. 우리는 사실 번뇌를 없애려고 공부하자나요. 예전에 도법스님이 연구실에 오셔서 강의하실 때 그런 말씀을 하신 적 있었어요. ‘즉각 해탈하려면 즉각 관세음보살을 말하라’ 번뇌가 일어날 때 관세음보살이라고 소리를 내면 그 순간만은 관음보살이 된다는 거죠. 낭송도 우리에게 이런 경험들을 하게 합니다. 고전들을 소리 내서 읽으면 그 즉시 고전의 비전과 접속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번뇌 많은 우리 시대 꼭 필요한 공부법이 되는 것입니다. 묵독이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정보를 습득하는 법으로 고정되어 버렸자나요. 이 묵독이 보편화되면서 몸과 마음의 분리가 자연스럽게 일어났고요. 하지만 낭송은 하는 순간 몸과 마음의 일치를 소리를 통해서 이루게 됩니다. 



그럼 이렇게 합숙훈련을 해가면서 고전을 낭송하고 익히고 공부하는 것과 혼자서 공부하는 것과 차이가 있을 텐데요. 같이 낭송하고 익히는 것이 어떤 점에서 좋은 가요?

이영희 : 소리는 일단 ‘투게더’를 원합니다. 아이스크림 아니에요.^^ 한 사람 보다는 두 사람을, 두 사람 보다는 다섯 사람을, 다섯 사람보다는 열 사람을 원합니다. 왜냐면 소리는 울려 퍼져나가는 속성을 갖고 있어서 그래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소리를 합치면 그 파동이 증폭되는 거죠. 그러니 혼자 낭송하거나 묵독하면서 공부할 때보다 몇 배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창희 : 무엇보다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함께 할 때 그 기운들의 교감이랄지, 익숙했던 곳으로부터 벗어나 전혀 새로운 장으로 나를 밀어 넣을 때 나도 몰랐던 또 다른 내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랄지. 사실 이런 것들을 경험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자나요. 게다가 나이, 학력, 전공 불문 많은 사람들이 함께 3박 4일을 보낸다는 건 참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요?

박장금 :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요. 낭송을 하면 우주나 자연, 그것들과 감응하는 신체가 되는데 그 감응의 구체성은 우정으로 표현됩니다. 즉, 낭송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반드시 우정을 나눌 친구를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 인연이 낭송캠프에 있다는 사실! 낭송과 우정의 관계가 의심스러우면 낭송 캠프에 오셔서 확인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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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커리큘럼을 살펴보니까 필사하고, 낭송하고, 읽고, 요약하고, 토론하고. 완전히 공부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걸 3박 4일이라는 짧은 일정 안에 촘촘하게 짜 넣은 이유라도 있나요?


이영희 : 일단 공부가 몸에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짰습니다. 이렇게 한 번 빡세게 해보면 집에 돌아가서 마음이 흐트러지더라도 다시 다 잡을 수가 있어요. 예전에 공부하던 사람들도 시간 날 때마다 며칠씩 스승의 집에 머무르면서 공부의 기본기를 닦고 돌아가곤 했습니다. 낭송캠프도 이런 뜻을 담고 있어요.

박장금 : 고전이 우주와 자연의 비전을 담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텍스트와 하나 되는 경험을 싶었어요. 매일 이렇게 강도 높게 할 수는 없겠지만 3박4일 경험한 짜릿함이 내 인생을 뒤흔들지 어떻게 알겠어요. 인터스텔라에서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메시지를 전하듯, 시공간을 초월한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 일을 벌이고 싶었습니다. 당장 알 수는 없지만 내 삶에 반드시 영향을 미칠 것라고 생각해요.

그럼 텍스트는 어떻게 선정된 것인가요? 텍스트 선정에 약간 두서가 없어 보이기도 하던데요.^^ 판소리부터 유학경전들, 의서들까지 총망라되어 있더라고요. 어떤 기준에서 이런 텍스트들이 선택된 것인가요?

박장금 : 연구실에서 오랫동안 읽혀왔던 고전들이고 이번에 낭송시리즈로 나왔어요. 그 가운데서 선택했습니다. 선정기준은 매우 고심해서 매니저가 하고 싶은 텍스트를 골랐어요.^^ 굉장히 이기적인 결정이고 비난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이 이기심을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가 읽고 싶은 책이어야 다른 사람들도 읽고 싶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저의 생각이기 때문이요.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모두 이렇게 기획합니다. 이기적 선택^^

이영희 :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요즘 사람들은 말을 잘 못해요. 일단 목소리부터 옹알이수준인데. 목소리를 내보질 않아서 그래요. 판소리는 목소리를 내는 훈련에는 딱입니다. 이팔청춘 춘향이의 입담을 낭송하다보면 목소리가 툭 트이는 경지에 도달할지도 몰라요.^^ 동양고전들을 선택한 것은 하심(下心)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기운이 위로 붕 떠 있는 경우가 많아요. 호흡도 고르지 않고. 더 빨리 더 많이. 경쟁에 목을 매다보니 생긴 현상들이라고 생각해요. 동양고전들은 이렇게 떠 있는 기운들을 내려줍니다. 의서는 읽는 것만으로도, 소리만으로도 몸이 생리적으로 감응하게 되는 텍스트에요. 자기 몸을 소리로 불러내서 이해하게 되는 거죠. 이거 최고의 양생술 가운데 하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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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낭송캠프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참여하면 좋을까요?


이영희 : 저는 고민하지 말고 어떤 마음가짐도 갖지 말고 와서 부딪쳐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야 3박 4일 동안의 공부가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딪혀 보세요!

오창희 :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망설임이 가져다주는 건 불안과 걱정, 터무니없는 기대 같은 거 뿐입니다. 망설이지 마세요. 맘에 끌리면 10분쯤 생각하고 곧바로 결단을 내리는 거죠. 지나치게 생각하면 탁한 기운이 끼어들게 마련입니다. 걱정과 불안, 지나친 기대와 망상으로 에너지를 다 소진하게 되는 거죠. 이게 우리 현대인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일단 마음이 동하면 결단을 내리고 뛰어드세요. 이렇게 결단을 내리면 그 움직임에는 결과에 상관없이 배움이 있습니다.

박장금 : 저도 그래요. 그냥 어떤 전제도 없이 오시면 됩니다. 아무 준비 없이 와서 해보라는 것들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오면 저절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꾸 <인터스텔라>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기자 : 영화 볼 때 주로 잤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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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금 : 뒷부분에서는 깨어 있었어요. 오늘 한 이야기는 다 뒷부분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웜홀을 통해 거시세계에서 미시세계로 들어가거든요. 그때 거시세계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미시세계로 들어가거든요. 이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무 생각이나 기대 없이 오세요. 그렇게 해야 자기가 상상한 것 이상의 세계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유쾌한 인터뷰가 끝이 났다.(곧 <낭송스텔라>가 나올 거 같은 예감이 드는 이유는 나만의 느낌일까?^^)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튜터들의 이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들이 곧 낭송캠프의 청사진이라는 생각. 자기로부터 떠나보는 방법? 그것은 어쩌면 아주 손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생각.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하나의 동작과 하나의 동선을 반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그것에 뛰어드는 일뿐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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