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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인 듯 후기 아닌 후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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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예진 작성일14-07-20 13:45 조회2,66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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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학년 예진입니다.


지난 금요일, 3학기 첫 의역학 수업 시작을 5분 남겨두고 있을 때였어요.

우리 조 부조장님이신 영미샘이 종종종 오시더니 “예진샘~ 후기!” 하시는데,

머릿속에 종소리가 댕~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학기 마지막 주 후기를 쓰기로 해놓고 에세이다 발제다 바쁘게 지내는 사이에

완전히,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겁니다. (헉.)

하지만 그렇게 당혹스러워 하던 차에 3학기는 시작되고...

결국 이렇게 학기를 넘긴 늦은 후기를 올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_-);


그런데 문제는 지난 학기가 너무나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2학기 마지막 주에 무슨 책을 읽었더라 하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다보니

떠오른 세 글자, 도.련.님.

고민이 되더라구요. 다른 선생님들도 저처럼 옛날 얘기같이 느끼실 텐데

이제와 새삼 도련님 이야기를 다시 꺼내도 될까 해서요.

하지만 다른 방도는 없어 보였습니다. 제가 후기를 맡은 수업이 ‘도련님’ 수업이었으니

늦었더라도 도련님 얘기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컴퓨터에서 ‘도련님’ 파일을 다시 열어 기억을 재구성해 볼까 합니다.


사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은 제가 이제껏 읽은 일본 소설 중에서 가장 재밌는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책이 잠자리에서 엎드려 읽는데도 하나도 안 졸릴 수가 있을까요.

특히 소세키의 아주 유쾌하고 시원시원하면서도, 짧고 담백한 문체가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요 책은 대대손손(?) 간직해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아무튼 <도련님>은 어려서부터 도쿄에서만 죽 살다가

‘깡촌’ 시코쿠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일하게 된 한 수학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시골 중학교에서 만난 ‘너구리’ 교장 선생과 대책 없는 학생들,

그리고 온갖 고상한 척은 다 하면서 뒤로는 기녀 ‘마돈나’랑 놀아나는 ‘빨간셔츠’와 ‘알랑쇠’.

그 사이에서 주인공 도련님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섞일 수 없는 경계인으로 살아갑니다.

<도련님>에 대한 강의를 해주신 문리스샘께서는

도련님이 전근 간 시골 중학교를 일종의 ‘야만적’ 세계로

‘빨간셔츠’의 세계를 문명인 도련님보다 더 ‘문명적인’, 고상하고 엘리트적인 세계로 규정하셨지요.

‘야만적인’ 중학생들 입장에서 보아도 ‘엘리트적인’ 빨간셔츠의 입장에서 보아도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도련님은 사회의 ‘루저’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 도련님 자신은 그 둘 중 어느 쪽 세계에도 동화되거나 편입되려고 애쓰지 않고 살아갑니다.

오히려 도련님의 눈에는 중학생들이나 빨간셔츠나 다 비겁하고 위선적인, 똑같은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일 뿐이지요.

즉 도련님은 자기 나름의 판단 준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는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고, 어떻게든 다른 사람 사이에 껴서 인정을 받아보고자 노력하기 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고민하는 인물이지요.

그래서 그는 시골 중학교로 처음 전근가던 날, 만나던 선생님들마다 자기 식대로 별명을 하나씩 지어주고 

자기 식대로 그들을 관찰하고 평가합니다.

도련님이라는 캐릭터가 그토록 매력적인 건 그의 그런 ‘자기본위성’ 때문이겠지요.


이번 2학기 에세이를 통해 ‘독창성’이라는 화두를 새로 받아서인지

이런 도련님의 자기본위적 행로가 새삼 다르게 보이네요.

새로운 길, ‘나’의 길을 걷는 것.

틈틈이 <도련님>을 다시 읽으며 그게 뭔지를 좀 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 앗, 그런데 그럴 시간이 있을까요? ^^;

3학기엔 <장자>도 읽고 밴드글쓰기도 하고 이미 읽을 책이 넘치도록 많네요.

그렇다면 <도련님>은 잠시 책장에 꽂아두고 그 책들을 읽으며 나의 길을 고민해 보는 걸로!ㅎㅎ


그럼 이상, 아주 더운 여름날의 <도련님> 후기를 마칩니다.

흐르는 땀만큼 정신줄도 자꾸 놓치게 되지만

금화교역의 계절인 만큼 최대한 꽉 붙들고 3학기도 재미나게 공부해 보기로 해요~~

전 이만 3학기 첫 독송 수업을 들으러 숑~!ㅋ

댓글목록

無心이님의 댓글

無心이 작성일

예진샘, 에세이까지 다 마치고 다시 보는 후기도 그나름의 맛이 있네요.  "문리스샘"을 보는 순간 까마득히 멀어져간 문리스샘의 목소리와 표정 몸짓이 갑자기 달려와 눈앞에 펼쳐지는 게 신기하네요.^^..........  일명샘이 말씀하신 그분도 후기를 올리셨네요^^

일명님의 댓글

일명 작성일

후기 쓰기가  아마도 네거 아닌 내것이었음을 뒤늦게 아신 분이 또 계신듯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