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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1주차 의역학 - 장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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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곰취 작성일14-07-22 20:23 조회3,333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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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네 서점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저의 모든 책은 이 서점을 통해 구입하지요. 서점직원이 장자를 내 앞에 턱하고 놓자 그와 동시에 ~~~’하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두께에 놀라서. 책 무게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 내가 장자를 읽다니^^’ 은근한 자랑스러움에 가슴이 뻐근해졌습니다. 후기인줄 모르고 있다고 덜컥덕 후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상적이었던 사실들을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그저 가난하게 살았다.”

첫 수업 후 가장 인상적인 말이었습니다. 쓸쓸함이 밀려왔습니다. 썩 내키지 않는 씁쓸함, 가난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자유로움은 언제나 비움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배웠으면서도 그것을 가난과 연결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연결 못 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가난은 이런 것이 아니였는지도 모릅니다. 장자는 누덕누덕 기운 남루한 옷짚신을 엮고 목덜미가 비쩍 마르고 얼굴은 누렇게 뜬 채 곡식을 빌리러 갈 정도로 가난 했지만, 나의 가난은 지금 것들을 그대로 유지한 가난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가난이라는 것도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니 뭐라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혹시 제가 가진 비움, 가난이 너무 추상적인 단어는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가난할 수 있다. 자유로운 삶을 살다보면 가난할 수 있다. ~어쩌다 장자처럼 가난해진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직은 장자처럼 가난해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려^^

 

장자의 시대와 사상

장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시대, 戰國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나라들이 서로 주인이 되겠다면 끊임없이 싸움을 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건 그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던 시대에 지성의 꽃도 만발했다는 것입니다. 공자, 맹자, 묵자 등 왠만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이들이 모두 이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농사를 짓고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땅과 사람이 곧 힘인 이 시대였기에 전쟁력 만큼이나 사람들을 꼬실 수 있는 비법 또한 중요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천하를 꿈꾸던 제후들은 그런 비법을 가진 공자, 맹자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할 수 밖에.

장자 역시 이 시대에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명은 다스려질 수 없다.” 다스림, 통치, 국가 자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좋든, 나쁘든 이런 것들은 근본적으로 억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본 것이지요.

장자의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뉴스에서는 연일 보도되고있는 세월호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고 우리를 안전하고 평화롭게 만들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7·4재보선 선거를 잘 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들에게 가하고 있는 무자비한 폭격이 떠올랐습니다. 진정, 정치, 국가가 우리를 자유롭고 평화롭게 하는 걸까요? 장자는 말합니다. 그게 아니라고. 그것들은 절대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고. 그저 본성대로 살라고.

 

공부의 이유

서민은 목숨을 걸고 를 쫓고, 士人은 몸을 바쳐 명예를 쫓으며, 대부는 몸을 바쳐 가문을 지키고, 성천자는 목숨을 바쳐 천하를 지킨다. 그래서 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은 하는 일이 다르고 명칭도 다르지만, 그 본성을 해치고 자기 몸을 희생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장자, 변무, 250)

 

장자는 , 명예, 가문, 천하를 가지는 일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요즈음 식으로 말한다면 돈과 권력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있는지 묻는 것이겠지요. 저는 본성을 해치고, 자기 몸을 희생한다는 말이 꽂혔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든 나의 본성과 몸을 해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제가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혹시 공부라는 대상만 바뀌었을 뿐 이것을 통해서 뭔가를 쟁취할 수 있으리라 기대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그러니 앞서 말한 것처럼 가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본성을 해치고 몸을 희생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돈, 명예를 쫓는 일과 다르지 않겠지요. 잘 들여다 볼 일입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은 적다

장자가 넘어선 사상가들(유인물4) 편에 나오는 송견의 이야기입니다. 왠지 모르게 이 말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서 종종 행복해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무한 증식의 욕망을 가진 욕심꾸러기다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송견의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은 적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실제 인간이 욕심꾸러기가 아니라 이 시대가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축적하라고, 그래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우리를 자꾸 다그치고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는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혜시와 언어

장자에게는 혜시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혜시는 이름하여 명가류로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언어가 얼마나 실제와 맞지 않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이였습니다. 수업 후 한 친구는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 수 있도록 장자에게 끊임없이 날카롭게 질문해주는 혜시라는 도반의 존재가 인상적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본인도, 그리고 본인에게 누군가가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혜시보다는 언어라는 것에 대해 더 관심이 갔습니다. 사유가 언어를 만들기도 하지만, 언어가 사유의 길을 만들기도 하는 것, 장자의 사유는 그 언어를 뒤집어 보는 것에서 확장 된 것. 물론 이런 질문을 해 준 이가 혜시이니 혜시와 혜시의 언어를 구분할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내가 그런 존재가 되거나 혹은 나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겠지요^

우리의 사유를 구성하고 있는 언어를 뒤집어보는 질문들, 허허 이런 질문들 좀 가지고 싶습니다요^^ 그런데, 늘상 에세이를 쓰면서 직면하는 문제는 언어 없음! 아무리 탈탈 털어도 나오는 언어가 없다는 것. ^^ 뒤집어 볼려고 해도 뒤집어 볼 것이 없는 이 지경. 우선 언어부터 만들고 볼 일입니다  

 

조릉에서의 깨달음

조릉에서의 까치 사건을 겪고 나서 장자는 철학자로서 서로가 서로의 생명을 해치지 않으면서 온전히 지켜가는 관계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의 생명을 해치지 않으면서 온전히 지켜가는 관계라 참으로 멋진 말인 것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생명은 일정정도 다른 무엇의 생명을 담보로 목숨을 이어가는 존재라고 여기는 저로서는 과연 이것이 가능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만큼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장자가 이 길을 어떻게 펼쳐 놓았을지^^

그럼, 다음주부터 아니 이번주인가요 그 세계로 고고씽~~~

 

 


 

   

댓글목록

파랑소님의 댓글

파랑소 작성일

언니이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ㅎㅎㅎ 언니식으로 다시 구성한 후기 잘 보았습니다.
수업 후 장자를 잊었지뭐에요... 매번 한참-을 잊고지내다가 에세이 쓸 때만 반짝 뭘 배웠나 생각해내는게 문제 같아요ㅎㅎ 배운 걸 끝까지 밀고 나가서 내 방식으로 풀어내야 '내 언어'가 나오는게 아닌가 싶어요~ 언제쯤 '내 말'을 할 수 있을지!!!

無心이님의 댓글

無心이 작성일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게 하는 후기입니다. 저도 고개를 갸우뚱했던 부분이  "인간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적다"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적다'에 눈이 가서 정말일까? 싶었는데 가만히 보다보니 '본질적으로'라는 말에 눈길이 옮겨가네요. 그러다 보니 장자가 줄곧 얘기하는 '인간의 본성'이란 뭘까 싶기도 하고요..... "서로가 서로의 생명을 해치지 않으면서 온전히 지켜가는 관계"라는 것도 아마 그 본성을 지키면서 관계맺음을 말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생명을 담보로'라고 할 때 그것이 본성을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그건 그대로 본성대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인간의 본성"이란 데서 또 막히네요.ㅠㅠ.

일명님의 댓글

일명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