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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3주차 장자 후기_ 제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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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양희 작성일14-08-05 10:35 조회2,61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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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수업을 들었지만 아직도 장자는 알 듯 모를 듯하다. 알 듯한 것은 이분법적인 가치판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머리"는 이해를 했는데, 그래도 모를 듯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은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란 탄식이 앞선다. 작은 일만 벌어져도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어떤 판단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맞다 틀리다를 떠올리는 삶의 방식이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장자는 내 몸 깊숙이 체화된 삶의 방식의 근원을 찾아서 제동을 걸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1. 無?
애초에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無의 세계에서 어떤 운동과 부딪힘으로 인해 "우연히" 有가 생겨났다. 즉 有는 어떤 의도나 목적이 있어서 한 주재자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리고 우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는 전제나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2. 우리는?
우리는 스스로가 이미 주어진, 그리고 완성된 몸과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변화란 쇠락과 소멸을 뜻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외부의 사물 (사건과 물)과의 부딪힘으로 그때그때 몸과 마음이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완성된 마음과 몸이었던 적이 있는가? 고정된 우리란 있는가?
 
3. 道는?
유가의 도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야하는 원리"라고 하면 장자의 도는 "사물이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하는 원리"이다. 유가의 도가 인의예지신으로 함축된다면 장자의 도는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각자가 외부와 만나면서 그때그때 만들어지는 것, 즉 "도는 길을 나서며 걸어가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너의 도와 나의 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떤 환경에 있기를 선택하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무엇을 하며,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가 중요하다.
 
4. 옳고 그름?
장자의 "시비, 미추, 대소, 선악이 없다"는 말은, 이것들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 아래 시비, 미추, 대소, 선악을 분별할 수 없고,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어떤 관점에 서느냐에 따라 시비가 다르니 시비는 하나인 것이다. 나의 도와 너의 도가 다를 때, 누구의 도도 더 옳지 않고, 그것도 하나의 도이고, 저것도 하나의 도인 것이다.잘못 이해하면 "판단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될 대목이지만, 장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기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5. 분별없음 그리고 하나됨 
기준을 넘어서고,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도를 체득하면, 만물에 분별이 없는, 즉 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그 자체의 자연스러움에 맡기고, 모든 사물 사이의 경계가 지워진 분별없음(하나됨)의 세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제물론은 나를 잊고 나비와 접속했던 호접몽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내가 나를 잊고 내가 타자가 되고 타자가 내가 되는 경지, 이 것이 장자가 추구한 삶이 아닌가 싶다.
 
만물을 분별하지 않고, 내가 타자가 되는 경지. 이 경지에 닿아 본 적 없는 나는 우선 헉하고 한 번 놀라고 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본다. 여전히 알 듯 모를 듯하고 나는 망망대해에 있다.
 
길 샘의 강의는 "無爲"를 이야기하면서 끝이 났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것이 되는 단계를 말한단다. 우리는 자아가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有爲"하게 열심히, 억지로 해야 "無爲"의 경지에 갈 수 있단다. 그렇다. 어찌 한 번에 모든 걸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열심히 有爲하게 일상을 정성껏 살 뿐이다. 장자의 화두를 끌어 안으며.
댓글목록

일명님의 댓글

일명 작성일

전 유위하게 열심히, 억지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슴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