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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1학기 2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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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준오 작성일15-03-09 14:32 조회3,7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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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 주 화요일. 남대문 시장표 찐만두와 딸기, 귤과 함께한 두 번째 의역학 수업이 있었다. 적은인원이지만 결석 없이 모두 제시간에 오셨다. 초면인 분들이 계서서 그런지 아직은 분위기가 차분하다. 토요일에는 독송 & 글쓰기 수업이 있었다. 독송수업 때는 감성 3학년 선생님들이 참관하셨고, 글쓰기 시간에는 말린 고구마 찐 것, 땅콩, 방울토마토와 딸기 등등 푸짐한 간식이 참석해주었다. 이날은 순찬샘이 결석하셨다. 출장 때문이라고 하는데 하셨는데 조금 걱정이 되었다.
 
  화요일 의역학 수업, 도담샘이 2주간에 걸쳐 강조하신 점은 의역학 시간에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이 ‘한의학을 통한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어디가 아픈지 파악(진단)하고 거기에 필요한 약(처방)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약을 팔아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의학을 통해 몸을 살피는 방식을 배우고 그것을 어떻게 내 몸-삶의 지혜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한의학에서 진단과 처방은 기운을 통해 이루어진다. 병은 사람의 기운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고 약은 기운의 흐름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기운은 물질의 영향을 받지만 감정 같은 빗물질적인 것에도 조응한다. 병으로 겪는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약재를 쓸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정이나 생각의 패턴을 바꾸는 것으로도 약이 내는 기운작용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혜가 약재가 내는 기운처럼 쓰여 병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한의학의 지혜와 인문학의 지혜가 맞닿을 수 있는 지점이다. 성인들이 약을 먹지 않아도 건강하게 장수하는 이유, 우리는 거기에 주목해야 한다. 너무 아프면 얼른 가까운 한의원을 찾아가 처방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내가 겪고 있는 병에 대해 보다 근원적으로 알고,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다스리려 한다면 이곳에서 배우면 된다. 의역학 시간은 다름 아니라 ‘한의학을 통한 인문학’을 배우는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도담샘은 다시 한 번 강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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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주차에 이어 두통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대해서 배웠다. 여러 병증 중에 가장 관심이 갔던 것은 간화상염두통을 설명하실 때 들은 간화상염이라는 증상이다. 간화상염은 간기울결의 증상이 진행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간(肝)은 목(木)의 기운을 뜻하는 장기로 소통과 배설 작용을 한다. 이를 소설(疏泄)작용이라고 부른다. 이 작용은 위(胃)에 모인 음식을 부수고 흩뜨리거나 감정을 펼쳐내는 일을 한다. 이 기운에 정체작용이 있으면 기가 뻗어나가지 못하고 쌓인다. 이를 간기울결(肝氣鬱結)이라고 한다. 간기울결에 걸리면 소설작용에 문제가 생겨 음식이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나오거나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생긴다. 그것이 계속되면 막힌부분을 뚫으려고 과도하게 에너지가 소모되고 간에 열이 발생한다. 눈이 뻑뻑하고, 잠이 오지 않고, 꿈이 많고, 손발이 저리고, 입이 건조하고, 가슴이 답답해 어쩔 줄 모르며, 옆구리가 찌르는 듯 아프다. 이를 간화상염(肝火上炎)이라고 한다. 그러다 몸이 그것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면 쌓인 것을 터뜨린다. 도를 넘은 소설작용이 발생한다. 소화가 되는 것을 넘어서서 위벽이 헐 정도로 위산이 나오고, 감정을 표현하는 게 지나쳐 크게 화를 내거나 엉엉 운다. 쭉 뻗는 목의 기운이 신체의 모든 부분을 공격해서 문제가 발생한다. 막혀서 불안불안하거나 갑자기 터지거나. 터지면 끝을 모르고 간다.
 
  최근 곰집에서 나에 대해 내린 평가도 위의 경우와 비슷했다. 뭔가 끝까지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등산을 해도 끝까지 가야되고, 살을 빼도 확 빼야 하고, 돈을 벌면 목표치를 반드시 채워야 하고, 산책을 해도 꼭 남산타워를 찍어야 되고, 술을 먹어도 끝까지 가야한다. 그 결과 벽에 끝까지 다가가다 얼굴에 무늬를 만들었다. 이제 그것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닌가. 곰집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그동안 나의 이런 패턴이 나쁘게 생각해봐야 마무리 욕심일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병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막힌 것이 있고 그것이 해소되지 않고 갑자기 터뜨리는 방식으로 기운을 쓰는 것인지. 그것이 나의 끝까지 가는 힘의 동력원인지. 풀어내야하는 뭔가가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야하는 시간이 왔다. 내 안에 울체된 것이 있는지 살피고, 만약 그렇다면 약의 기운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할 것인가. 이번 의역학 시간 수업을 듣는 동안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잡는 것.
 
 
  토요일에도 ‘균형’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졌다. (한의학을 포함한) “동양사상에서 균형이 흐트러지는 것, 중심을 못 잡는 것은 악(惡)이다.” 글쓰기 시간에 고샘이 하신 말씀이다. 동양의 선악개념은 균형과 관련 있다. 선(善)은 ‘스스로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악(惡)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불선(不善), 선을 행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곧 악(惡)은 ‘스스로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의 리듬을 갖추는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알고, 내가 할 일을 아는 것이다. 내가 누구고, 세상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면 그것은 불선이고 곧 악이다.
 
  ‘악인에게 남은 것은 폭력밖에 없다’고 고샘은 말씀하셨다. 균형을 잃은 자에게는 자신을 파괴하거나 남을 파괴하는 쾌락의 추구만 있을 뿐이다. 이것은 비판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사람을 만나면 동정해준다. 망가진 악인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저 사람은 참 안됐어.”라고 말한다. 이렇게 악인에게 동정심을 갖는 것을 착하다고 한다. 균형 잡지 못하는 사람에게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것은 악인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동양의 개념에서 봤을 때 절대 선(善)하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이 착하다고 말하는 지금시대는 선악의 가치가 위험한 방식으로 전도된 시대라고 고샘은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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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으로 알겠지만 인간은 삶의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과연 인간은 스스로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인가? 인간은 원래 균형을 잡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현실의 인간들은 자신을 모르고, 세상을 모른 채 눈 앞의 이익에 휘청거린다. 한비자의 예리한 붓은 유가가 말하는 성선, ‘모든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의 허점을 파고든다. 인간은 단순히 ‘잘 될거야’라고 말해준다고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착한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다. 군주의 재앙은 사람들을 믿는데 있다. 군주가 자신을 자식처럼 사랑하면 신하는 그것을 이용해 이익을 얻는다. 군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하에게 모든 것을 숨겨야 한다. 그 자리에 없는 듯, 재주와 지혜를 비운 채 윗자리에 앉아 신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야한다. 마음 단속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균형을 잡을 수 없다면 차라리 드러내지 마라. 정신 차려야 한다. 철저하게 하라! 한비자는 말한다.
 
  법가는 인간이 균형을 잡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각자가 균형을 잡을 수 없는데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국가라는 집단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때 한비가 내놓는 해결책은 법(法)이라는 먹줄이다. 균형을 깨뜨리는 인간존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정확한 틀을 가지고 세상을 재단한다. 먹줄을 튕기듯 정확한 상벌을 행하는 법치시스템이, 인간 밖의 공명정대한 제도가 세상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한비는 말한다. 그런데 문제점이 있다. 사람을 믿지 못해 법을 믿는다고 치자. 근데 법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법을 만드는 것도, 법을 집행하는 것도 사람이다. 각자 사람들은 법을 제 이익에 맞게 사용한다. 한비자는 그런 삿됨이 없는 법치를 말했지만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 유가적 낙관론과 다를 바 없다. 법치국가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이 법을 운용하는 것에서 빈틈이 생긴다. 틈을 메우기 위해 법은 더욱 많아지고 엄격해지고 복잡해진다. 법이 더 엄정해지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공명정대함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법을 만드는 만큼 법의 구멍은 늘어난다. 법치도 완벽함에 이르는 길은 요원하다. 그렇다면 제도가 아니라 인간에게서 삶의 균형을 잡는 답을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비록힘들더라도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공명정대함을 구성하는 힘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유가의 허점에서 나온 법가가 다시 자신의 허점으로 유가와 닿는다.
 
  어쨌거나 균형을 잡지 못한 채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들이 결국 하는 일은 전쟁이다. 목숨이 오고가는 절박함 속에서 온갖 변수들이 충돌하는 역동적인 변화무쌍의 장, 전쟁터. 이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이를 해결키 위해 병가가 등장한다. 자신을 파괴하거나 타인을 파괴하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전쟁에 중독되지 않는 방법, 예측불가의 상황 속에서 중심을 찾는 방법을 손자병법/오자병법은 제안한다. 손무는 병사를 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매번 승리하는 법이 아니라 매번 스스로를 위태롭지 않게 하는 방법을 말해준다.(知彼知己 百戰不殆) 고샘은 이런 병가의 싸움기법을 자신과의 싸움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전쟁기계’ 개념을 들어 자신과의 싸움을 어떻게 잘 해나갈 수 있는지를 병가에서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나 자신과의 전쟁이 가장 위대한 승리라고 덧붙이셨다.
 
  선한사람은 편한 사람이다. 자신의 위치를 알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며 자연스럽게 그 행동이 나온다. 스스로 편하면 남에게도 편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다. 착하게 살면 나도 좋고 남도 좋다. 그렇게 되면 좋은데 그 ‘착하게’가 잘 안 된다. 저번 주 토요일 나도 불편하게 하고 남도 불편하게 하는 일을 벌였다. 술을 먹고 넘어져서 얼굴을 다쳤다. 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다. 이런, 일 너무 자주와서 정말 지겹다. 매번 언제 어디서나 남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것도. 그것과 더불어 내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까지 악인으로 살 것인가. 나 자신을 불쌍하게 내버려두는 존재가 되지 않으리라. 이제 좀 차카게 살자. 2주차 수업을 통해 그나마 나에 불균형에 대한 새로운 진단을 내려 볼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수확이다. 금주와 300배로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를 편안하게 하는 리듬을 찾아보련다.
 
 
다음시간 예고
화요일 : '두통' 프린트 챙기기, <한의학 입문>, <낭송 동의보감 외형편> 가져오기
토요일 : 사물탕 약재, 약성가, 약성, 효능, 활용 시험 / <낭송 주자어류> 암송 & 필사, 질문거리 만들어 오기
 
 재시험 보셔야 하는 분들은 토요일 3시 50분까지 깨봉 2층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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