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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에세이 후기 1조, 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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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초코송 작성일15-04-28 17:45 조회3,22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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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선생님들~^^
에세이를 마치고, 홀가분하게(?) 시험과 낭송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정환군과 에세이 후기를 나눠서 쓰기로 하였습니다.(저는 1조와 3조)
발표자, 주제, 목차, 코멘트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최대한 가감없이 하려고 했으니 오해는 마시길~*


[1조] 정순찬, 송은민, 고은미, 조정환

* 정순찬, 공부에 대한 이해
- 1. 공부
- 2. 즐거움에 치우친 공부
- 3. 공부하며 살아가기
- 4. 내가 만든 공부의 장애물
여전히 사회 활동을 좀 하는 전형적인 중년 남성의 글임. 공부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썼으나, 초점이 크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쓴 부분이 많음. 나의 렌즈와 타인의 렌즈가 교집합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도록 초점을 변용하는 능력이 필요함. 거친 시선으로 반성하면 안 되고, 정밀해져야 함. 그렇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음. 화두를 가지고, 문턱을 넘어야 함. 절대 돌아갈 수 없도록!

* 송은민, 마주침을 위한 글쓰기
- 들어가며
- 꽉 막힌 신체
- 산책하기
- 낭송하기
- 신체의 변용
- 공통 개념의 형성
- 나오며
평소에는 발산을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자신을 점검하고, 단련하는 수렴의 과정을 거쳐야 함. 글쓰기는 나의 언어를 정련하는 과정인데,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정을 모으는 것과 같음. 탁하지 않은 물을 모으고, 그런 신체를 만들 수 있어야 함. 그렇지 않으면 습관대로 쓰게 됨. 앞에서는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 뒤에서는 책의 내용을 씀. 둘이 섞이지 못하고 있음. 다른 사람들과 산책을 하고, 낭송을 한 것은 운이 좋았던 것이고, 신체가 받쳐줘서 할 수 있었던 것임. 그리고 거기서 배운 것들이 너무 미약함. 여전히 깊이 마주치지 못하고 있음. 자기 언어가 없고, 외워서 쓴 것임.

* 고은미, 낯선 질문을 만나고 스스로 답하는 공부
- 치유의 강박을 넘어서 낯선 질문을 만나기
-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기
독백의 글임. 단문인데, 모호함. 또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고 있으나 잘 구분이 되지 않음. 어떤 당위만 있을 뿐. 스스로를 우울증 환자로 규정하여 그곳에 정체되어 있음. 그에 대한 방어기제도 보임. 이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서 두 발로 서 있을 수 없는 상태임. 그렇게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됨.

* 조정환, 무기력한 사람의 필사적인 글
- 나라는 사람, 무기력한 사람
- 화를 내지 못하는 정신
- 행동하라. 무기력 할 수 없을 것이다
- 책으로 마무리
자기를 정면으로 마주침. 무기력증을 논리적으로 분석함. 솔직함. 훌륭한 철학자의 자질이 보임. 논리를 배웠으면 그 개념과 노는 것이 필요한테, 그것은 자기 삶에서 재밌게 구성하는 것임. 글의 주제를 벗어나서 쓴 글이고, 맞춤법에서 틀린 것이 많음. 그렇지만 그런 부분에서 마음을 비운 만큼 자유의 공간이 생긴 것임. 앞으로도 철학을 활용하여 사유를 넓힐 것. 그러면 활기, 생명력도 찾을 수 있을 것임.


[3조] 서유미, 김영미, 최영수, 이지현

* 서유미, 왜 하필 글쓰기인가?
- 들어가며
- 자유란 내게 어떤 의미인가?
- 왜 하필 글쓰기인가?
- 글쓰기의 신체성에 대하여
- 글쓰기는 그 사람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다.
- 다시 글쓰기로
딸 얘기를 계속하고 있음. 딸과의 신경전, 울컥하는 감정은 성적인 욕망이 남편에서 딸로 옮겨 간 것임. 공부를 해서 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마음 놓고 정당화하려함. 마음을 더 담는 글쓰기를 함. 여기에는 자유가 없다. 공허함만 남는다. 집착하는 것은 담음 상태로, 감정을 붙들고 있음으로 인해 엄청난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는 것임. 여기서 벗어나 보편적 이성을 향해 나아갈 것.

* 김영미, 내 안의 신에게 한방 날리는 글쓰기
- 사자로 변신하는 글쓰기
- 은폐된 욕망을 향해 구역질하는 글쓰기
- 몰락해 가는 글쓰기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글과 자신의 종교 관념의 변화 과정을 잘 연결하여 정리함. 그렇지만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넘어가고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음. 구체적 현장이나 과정, 즉 전투하는 부분이 없음. 그리고 중간 중간 니체의 사유를 그대로 따라간 것이 보임.

* 최영수, 나는 왜 글을 쓰는가?
- 1. 로드클래식의 만남
- 2. 대중지성에 발을 담그다
- 3. 나는 왜 글을 쓰는가?
- 4. 무너진 건강
- 5. 38년간 직장생활의 말미에서
- 6. 방제학을 배우고
글에서 자신의 내적 성장이나 세상을 보는 시선의 변화는 전혀 알 수 없고, 어떤 외형적인 정보만 있음. 자신이 좋아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 쓰고, 솔직한 욕망을 분석하려고 하지 않음.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음. 그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은 무감각한 것임. 분명 불안하고, 공허할 텐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삶의 반쪽 부분, 즉 사유의 한쪽 부분을 버리고 살았다는 것임.

* 이지현, 함께 공부하는 기쁨
- 들어가며
- 기억과 연상 그리고 신체의 방기
- 변화를 위한 공부
- 글을 마치며
문장이 길다. 아팠던 것을 핑계 삼아 마음껏 우울해 하는 것은 아닌지? 슬픔, 약함에 대한 집착은 공감할 수 없기에 외부와의 소통을 막음. 오히려 완강하게 보이고, 거부감을 불러일으킴. 그 집착에서 떨치고 나가야 함. 정말로 약한 존재는 오히려 소통이 잘 됨. 그들을 봄으로써 우리는 편안함,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임. 하여 우리도 어린 아이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함.


이번 학기 장원(?)은 세 분이 계셨죠?
정환, 준오, 영미샘^^ 축하해요, 그리고 다시 고치는 기쁨을 누리시길!!!
다른 분들은 각자 쓴 글과 코멘트를 보시며 질적 도약을 이룰 수 있는 계기로 삼으셨으면 합니다.
그럼 전 이만^^ 토요일에 뵈요~*

댓글목록

key1254님의 댓글

key1254 작성일

후기까지가 에세이의 마무리같아. 잘 보았어~
근데 소....제목을 다 적어 놓다니...다시 읽어본거야? ^^

초코송님의 댓글

초코송 댓글의 댓글 작성일

네~ 근데 다시 보기가 참 쉽지 않다는^^;;
다 읽진 않았고요, 후루룩 훑어 보았어요.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