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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 4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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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ldnwise 작성일15-06-08 20:55 조회3,4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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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글쓰기 수업은 신근영 쌤의 조별 토론에 대한 꿀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조별 토론을 할 때는 반드시 나온 이야기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상비평에 머물 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수업은 지난 주 수업했던 1, 2부를 포함, 3부까지 여러 편의 에세이를 종횡무진 오가며 굴드 사상의 키워드를 정리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는데요. 근영쌤은 에세이도 이런 방식으로 쓰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키워드 중심으로 발제 내용을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도반들이 14번째 에세이 <구두장이와 샛별>에서 굴드가 말하는 물리적 시간과 생물학적 시간의 핵심적인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근영쌤은 우리는 시간에 대해 하나의 개념밖에 갖고 있지 않으나, 사실 존재는 고유의 시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간도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굴드는 이 에세이를 통해 물리적 시간, 진화적 시간, 문화의 시간 등 다양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리학은 시간과 상관없는 법칙을 이야기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물리학에는 시간개념이 없다. 그래서 분자생물학이 나오기 전까지는 물리학과 시간의 흐름을 전제로 한 생물학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그런데 물리학이 생물학으로 들어오면서 시간을 배제한 변하지 않는 조건 즉 유전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후에 공부할 <삼중나선>의 르원틴은 이런 유전자조차도 역사성을 가진다는 이론을 펼친다또한 사회생물학에 와서는 이런 유전의 원리를 도덕적인 것으로 치환하는 오류를 범했는데, 굴드는 인간이 가져야할 윤리는 생물학과 다르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인종주의 경향에 극렬히 반대했다. 이는 인간의 시간과 생물의 시간은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정리해주셨습니다.

경계와 변방, 그리고 독창성  

p58: <황금률: 우리의 환경위기를 평가할 적절한 규모>에서 굴드가 그레이엄산의 다람쥐를 보존해야하는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1)다람쥐가 변방의 개체군이라는 점 2)그레이엄산인 두 구역이 접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굴드가 세계를 보는 시선을 알 수 있다. 굴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중심, 순수하거나 깔끔한 지역이 아닌 변병 또는 두 구역이 접한 곳이다. 이런 곳이야말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풍부한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으로 굴드가 사소한 것에 천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중심을 기준으로 무엇을 정의한다. 자신을 정의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하지만 오히려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계 지점에서 자신이 하는 행동, 내가 나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실수 등이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프로이드가 농담, 말실수 등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부분을 중요시 여긴 것도 그 때문이다.

p206 굴드는 이렇게 각자의 막다른 골목, 경계 지역에서 진정한 독창성이 발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흔히 경계를 넘는다는 것을 안에서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지만 내적 추동력과 외부 환경 제악 사이의 긴장으로 인해 제3의 길이 열린다.(p108 참고)

목적론적 인식 vs 고유한 시공간의 맥락에서 파악하기   

적응의 문제를 사다리꼴로 생각하면, 과거는 늘 부족하고 미래를 위해서만 존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류-양서류-포유류로 진화했기 때문에 포유류가 최고의 적응 상태이며, 인간이 바다에서 땅으로 올라왔으니 바다는 땅보다 열위의 공간이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직선적 세계관, 목적론적 인식의 한계이다.

p264 어셔에 대한 굴드의 평가처럼 어떤 것을 평가할 때는 그것이 처한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져야지, 지금의 상태가 기준이 될 수는 없다.

p166 ‘하나로 두 개 하기’ ‘둘로 하나 하기기관들이 특정작업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은 창조론의 잔재이며, 기관들은 무언가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겪어 진화한다.

그런 점에서 시공간의 맥락에서의 인식은 바로 진화론적 인식이기도 하다.

문제의식

p163 굴드는 다윈의 실수를 이야기하면서 내용이 아니라 그의 문제의식에 주목한다. 책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저자가 말하는 해답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질문을 시공간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의 해답이 틀린 것이더라도 우리는 그를 통해 배우면서 한 스텝 더 나아갈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이데아를 고민한 이유는 그리스 문화와 관계가 있다. 그리스 사회는 한 마디로 경쟁(agon)사회로 모든 것이 대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상대를 이겨야한다는 경쟁논리가 강해졌고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플라톤은 내 안의 무엇과 싸우는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이데아를 제시한 것이다. 후에 니체는 플라톤을 넘어, 스스로를 시험하게 하는 적, 나를 경계까지 데려갈 수 있는 훌륭한 대상으로 적의 개념을 정리한다.

우리가 플라톤을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플라톤이 너무 많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동양학에서는 주자가 그런 역할을 했다.

굴드는 다윈의 이론 중 많은 부분을 부정했지만 문제의식만은 모두 떠안았다. 때문에 진화론자들에게 배척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전문가와 아마추어

~다움. 눈은 눈답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생각은 존재가 어떤 기능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전문가도 마찬가지.

P219 아마추어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아마추어라는 단어의 어원은 사랑한다는 뜻의 아모르이다. 즉 곁에 두고 사랑하는 자가 아마추어로, 이는 한정된 시공간 속의 일이 아니라 일상이 된다는 뜻이다. 굴드의 에세이를 보면 고생물학자로의 시각이 일상을 관통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의미로 볼 때 굴드는 아마추어라 할 수 있다. 둘째, 굴드의 아버지가 보여준 꼼꼼함이다. 세세한 것까지 관심을 갖고, 결을 느끼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잡종성이다. P222 굴드는 외부의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로 관용이나 상대주의를 드는 시각에 반대했다. 왜냐하면 이는 외부 사람을 내부자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과학자조차도 외부와 적극적으로 만나야 하며, 접경지역을 귀중하게 생각해야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전체성   

사건이든 인물이든 굴드가 문제 삼는 오해는 시공간적 맥락을 배제한 상태에서 또는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일부만 떼어내어 평가하는 경우이다. 굴드에게 있어 모든 비판은 맥락적으로 이루어져야하며, 맞고 틀린 것을 떠나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지, 통합적 전망은 무엇이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이다.

우리는 글을 쓸 때 공간적인 구성에만 신경 쓰는 경우가 많은데, 굴드의 에세이에는 이런 시각을 반영하듯 시간적 맥락, 즉 서사적 흐름이 있다. 즉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방식이 아니라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저자 자신도 모르는 길을 걷는 자의 시선이 보인다.

괴테는 이 세계는 유기적으로 전체성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상은 그의 <색채론>의 마지막 부분인 <자연론>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글은 뉴턴의 광학에 반대하기 위해 쓴 것. 뉴턴은 스팩트럼을 통해 빛은 7가지 빛깔로 분해되며, 그것이 모이면 다시 빛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괴테는 색 자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분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에세이를 쓸 때도 유기적 통합성이 중요한데 굴드가 한 가지 주제를 동물 이야기, 인물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이야기했듯이 주제에 맞춰 통합해야 한다.


9장 보이지 않는 손

페일리가 만난 보이지 않는 손은 신이고, 다윈이 만난 보이지 않는 손은 자연선택 즉 헤카툼이다. 자연선택이란 보이지 않는 손은 1)신에 의존하지 않는, 우연의 영역이면서 2)개체들의 상호작용이 그 원인이고 3)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페일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바로 3)번의 특성인데 그는 자연이 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사고를 하지 못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자연선택을 묘사한 용어는 생존을 위한 분투(struggle for existence)”로 이는 빅토리아 시대 안전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빼앗는 일이었다.

우리가 목적론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갈 곳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길이 정해진 것만큼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게 없다. 종교를 버렸다는 것만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사람들은 자유하면 무제한, 걸리적거릴 게 없고, 편안한 상태를 연상하지만 다윈의 생존을 위한 분투라는 말처럼 자유롭게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를 선택하는 것도 편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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