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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에세이 후기 (1, 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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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케이 작성일15-10-05 13:31 조회2,7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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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3학기 에세이와 시험이 모두 끝났습니다. 에세이는 끝났지만 각자에게 남겨진 숙제가 있죠?^^ 에세이 때 길샘께서 해주신 코멘트 정리합니다. 저는 1, 3조 코멘트 올립니다.


1: 이여민, 고은미, 서유미, 김영미 

* 이여민 <제목 : 이반 일리치의 고통>

1. 아프고 고통스러운 병

2. 가볍고 즐거운 삶

3. 나가며 

comment : 고통의 문제에 대해 썼다. 고통은 어찌해 볼 수 없다. 고통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 고통의 원인을 알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고통이 일상이라면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불통보다는 소통을이라고 하면 너무 도덕적인 결론이다. 고통 후에 빛을 본 지점과 과정에 대해 말했어야 함. 고통만 보고 있다. 이반 일리치의 병의 원인이었던 가볍고 즐거운 삶에 대해서는 여전히 긍정하는 느낌. 경쾌한 사람인데 왜 불통이었을까? 일련의 사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했고, 어떤 관계를 맺어야 했는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음.

 

* 고은미 <제목 : 자기희생의 길과 이기심의 길 사이>

1. 자기희생의 길에서 만난 P부인

2. 이기심의 길에서 만난 백윤희

3. 자기희생적 사랑의 길에서 봉구

4. 순영 길을 잃다

5. 자기희생의 길과 이기심의 길 사이

comment : 순영이를 옹호하고 싶은 건지, 이광수를 옹호하고 싶은 건지 모호하다. 이광수를 옹호한다면 3.1운동 세대의 파탄에 대해서는 잘 보여준 것 같다. 근대화의 길은 물질적 향락을 추구할 때 오는 도덕적 파탄이다. 도덕적으로 응징하려고 했던 이광수와 충돌하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세계를 이분법적 세계로 나누는 전제 위에서 봐야 한다. 도덕적 세계에서 갑자기 현실로 갔을 때 파탄 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자기 희생도 쾌락이고 이기심도 쾌락이니까 같은 쾌락에 대해 욕할 수 없다는 결론은 이상하다. 이런 식으로 가면 논리의 파탄이다. 그나마 작년보다 나아진 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글쓰기를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외부로 시선이 열린 것 같다.

 

*서유미 <제목 : 이반 일리치의 삶과 죽음>

1. 죽음으로 실체가 드러나는 관계들

2. 품위 있는 그러나 끔찍한 삶

3. 진실한 관계는 우리를 구원할까?

4. 내 아버지의 죽음

comment :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고 싶은건지, 죽음을 바라보는 가족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는가에 관심이 있는건지? 일리치의 삶과 죽음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일리치의 삶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드러나지도 않음. 게라심과의 관계는 왜 진실하다고 해석했는가? 게라심 때문에 진실했던 것이 아니라 게라심 앞에서 자신의 가면을 벗고 품위를 완벽히 내려놓았기 때문에 편안해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일리치가 게라심 앞에서 진실할 수 있었던 것은 남 앞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런 해방감에 대해서는 언급 없다. 진실한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본인의 해석이 없다.

 

*김영미 <제목 : 홀로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1.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인생

2. 순영을 무엇을 배웠나

3.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다

4. 방향을 잃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comment : 소설의 들끓는 현실은 사라지고 당위만 남았다. 순영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바람만 썼다. 순영이의 갈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의 해석이 없다. 순영이의 배움을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하다. 근대식 교육을 따져보았어야 했다.

 

3: 유기옥, 김수희, 나경, 송은민

 

*유기옥 <제목 :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해주는 <살아있는 삶>>

1.

2. 나와 장교 그리고 친구들

3. 나와 리자

4. 나와 아뽈론

comment : 지하생활자가 죽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 지하생활자를 우울증 걸린 사람으로 묘사했다. 주인공에 대한 이해가 없다. 지하생활자는 시대에 반항하는 사람이고 아직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들끓는 걸 보여주는 사람 아닌가? 하찮은 인간인 이 존재의 지하에서의 몸부림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 있음. 단순한 우울증, 간기울결로 볼 수 없다. 무엇과 대결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한 광기인지에 대한 해석이 없음.

 

*김수희 <제목 : 병과 죽음, 건너뛴 삶의 댓가>

1. 무엇이 잘못인가? 진짜는 무엇인가?

2. 양생의 길, 살생의 길

3. 회피가 초래한 순환하지 않는 삶

comment : 죽음을 단순히 잘못된 삶에 대한 심판으로 볼 수 있을까? 죽음과 같은 고통이 있어야만 삶을 반추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죽음과 같이 벼랑에 서는 경험이 아니라면 삶의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9세기 근대의 계몽적 시선을 너머에서 톨스토이가 삶에 대해 보여주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이 뭔지 해명이 필요한데 갑자기 사주명리로 닫아 버렸다. 정리가 잘 되고 칼 같은 글이지만 여백이 없어서 닫히는 느낌이다. 더 이상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느낌이다.

 

*나경 <제목 : 어느 축복일의 죽음>

1. 고독한 여인

2. 싫증나서 버려진 장난감

3. 그녀는 약하지 않았다

4. 죽음, 생명의 시작

comment : 처음에는 무언가 샹린댁에 대해서 느낀 것이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보니 샹린댁이나 화자, 그 누구에게도 공감하지 못했다. 샹린댁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 자기 내부에서 충돌하는 것 같다. 등장인물들과 샹린댁과의 관계를 전혀 보지 못했다. 불쌍해하면서도 수절하지 않는 샹린댁을 욕하는 사람들의 이중적 시선 같은 것은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글쓰는 것을 떠나서 본인의 생각이 어긋나는 지점을 봐야할 것 같다.

 

*송은민 <제목 : 다이스케의 방황>

1. 들어가며

2. 같은 듯 다른 두 청년

3. 아버지와 두 아들

4.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친구

5. 현실 세계에 발을 디디다

6. 나오며

comment : 미치요와 다이스케가 만난 지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글이다. 의미 없이 살던 다이스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다 던지고 하는 사랑은 어떤 것일까? 목적이 없는 삶, 이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세키의 시선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이스케의 방황이 갖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 글에서는 다이스케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만 보인다.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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