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 첫시간 수업후기입니다(의역학_낭송_글쓰기(위생의시대) >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일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일성.png

1학기 첫시간 수업후기입니다(의역학_낭송_글쓰기(위생의시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산수유2 작성일17-02-20 17:25 조회2,491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1조에서 첫시간 수업후기를 쓴 것입니다.

글쓰기 수업은 <위생의 시대>(고미숙샘)만 있습니다.

(잘라라 기도하는 손을_ 2조에서 올릴예정입니다.)


1교시 : 의역학 입문(뇌과학과 생리학)

 

오랜만에 뵙는 정화스님은 보통처럼 30분 먼저 강의실에 오셨습니다. 4주간 강의 주제는 뇌과학입니다. 스님은 제게 생물학을 공부하라고 권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번 강의는 교양으로 읽는 뇌과학(이케가야 유지, 은행나무)을 중심으로 수업을 하십니다.

 

(주제1)뇌에 대하여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뇌는 과학연구 분야의 최고로 흥미로운 부위이다. 우주와 뇌 연구만 남았다고 볼 수 있다고 할 정도다. 뇌과학의 빅뱅이라 할만한 2가지 발견. 첫째, 40억년 전 생물의 번식 시작(다윈의 발견)138억년전 우주의 빅뱅(아인쉬타인의 발견). 그러니까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의 역사는 138억년이나 됐다. 생물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정보해석이 아주 중요한데 쓸모 있는 정보가 아닌 것은 쓰레기처리를 잘 해야한다. 이는 미생물부터 모든 생물이 다 하는 과정이다. 인간의 생각의 쓰레기를 잠으로 처리한다. 우리 몸의 세포는 2-3개월 만에 바꿔서 쓰레기 처리한다.(뇌세포는 평생 동일 세포). 뇌의 역할은 정보해석지도를 형성하는 것인데 이때 지도 형성에 관여하는 것은 환경, 유전자, 세포의 무작위 결합 이 3가지가 관여한다. 상상력이란 뇌의 내면화된 운동으로 시공간의 변화를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고 표상(기억)이란 여러군데 흩어졌던 정보가 재구성되는 것으로 꾸며진 이야기이다. 뇌는 3중 구조다. 소뇌(생명력, 공간지각능력), 변연계(구피질, 감성의 뇌) 그리고 신피질(이성의 뇌로 시간 표상을 한다)이 그 3중 구조다. 모든 감각은 시신경으로 모아졌다가 흩어진다(후각정보는 바로 신피질로 감).

 

(주제2) 마음과 뇌의 관계에 대해서 : 파란색을 느낄 수 있으려면 파란색 수용체가 있어야 한다. 도파민 형성되어도 그 수용체가 있어야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 두 가지의 만남이 마음이 된다. 물질 작용과 정신 작용의 구분은 모호하다. 예를 들면 누구의 정신은 언어의 소리로 나오며 그 진동수로 전달되고 나의 뇌로 들어와 재해석된다. 이것은 서로 공명해야 가능해진다. 의욕이란 것도 물질과 정신의 작용이다. 의욕은 측좌핵이 on되면 생기는 건데 잘 안켜진다. 우리가 뭘 하고 싶어하기가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에너지 소비를 막도 절약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단 30분 정도하면 측좌핵에 불이 들어와서 의욕이 있다고 느낀다. 이처럼 환경과 정신은 상로작용한다. 현대의 환경 변화로 생태계의 변화는 당연히 연결된다. 기계가 노동을 하고 인간은 놀이를 하게 될 것이다. 해마의 역할은 신경세포가 계속 증가하고 연결망을 만들어 창의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케가야 유지가 쓴 해마를 읽어보길 권한다.

 

 

2교시 : 낭송 (낭송 춘향전)

 

낭송 첫 번째는 봄의 기운, 생동감을 가진 동청룡 No1. 춘향전을 1조분들이 준비하셨습니다.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의 뜻은 care의 라틴어로 배려라는 뜻입니다. 자기배려, 즉 자기 욕망과 호흡을 일치시키는 능력을 키우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이장숙, 강유정, 이순이, 최은미, 이가영, 최민경이 준비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일요반 모든 분들(담임샘 포함)과 낭송을 재밌게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낭송 논어/맹자를 하게 됩니다.

 

3교시 글쓰기 기초 : 앎과 삶 _ 왜 공부를 하는가?

 

위생의 시대고미숙, 북드라망. 고미숙 선생님의 유쾌 명쾌한 강의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이해한 범위에서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20세기초 동양은 나름의 철학체계와 정치체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기독교화 근대화등으로 방향 전환되었을까? 이것에 대한 답으로 모든 것이 답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 답이 아닐 수 있다. (정답이 그 시각에서 나오지 않는 다면 깊이, 넓이 봐라. 그래야 답이 나온다) 딱히 정해진 틀이 없이 사회가 변한 것이다. 계보학적으로 보면, 그 때의 진리는 무력으로 쟁취된 것이 많다. 진리는 의외로 일시적이다. 20세기 초 근대화 자료를 연구하면서 철학을 깊이 하려면 이 근대를 알아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공부했다. 한국은 근대화로 분단국가가 됐고 순식간에 왕을 버렸다(조선왕조 500년이면 운명이 다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근대화를 이식에서 심었다. 한국전쟁 후로 미국의 영향을 받게 됐고 선교사에 의한 감리교, 장로교의 영향이 컸다. 교회의 보수주의가 정치력을 행사했다. 3공화국의 변화는 이미 이 계몽 시기에 만들어졌겠다싶다(다이나믹 코리아^^).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실상과 리듬을 타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이념을 주장하다가(태극기 부대처럼) 힘쎈 것을 신봉하며 자신의 두려움을 해소하려고 한다. 이는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모습이며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인종주의와 보수주의 행보와 북학의 현실을 봐도 그렇다. 현실의 변화, 새로운 것을 받아드려야 함을 깨닫는 것, 이것이 계몽시기의 위생권력이 어떻게 권력을 획득했는지를 공부하는 이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