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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차 글쓰기 후기(A조-잘라라,기도하는 그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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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수리 작성일17-03-21 20:10 조회2,2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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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성준입니다^^

문탁샘이 강의해주신『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전반부 후기를 맡게 되었어요.

먼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저자 사사키 아타루는 일본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의 첫 책은 『야전과 영원』인데요. 
그의 책이 놀라웠던 것은 2가지였다고 합니다.
첫째. 자기 힘으로 책을 읽고 엮어내서 박사학위 논문을 써낸 것
둘째. 일본의 니체라 불릴정도로 아주 독특한 문체
이 두 가지 였는데요. 저도 책을 보는 동안 내내 그의 불같은 문체가 아주 강렬하더라구요 ㅎㅎ

문탁샘은 통역당 사건으로 신영복 선생님과 함께 투옥되신 길단서원의 박성준 선생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박성준 선생님은 맑시스트와 기독교를 버리고 나서 65세의 나이에 노인증을 받으시면서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해요. 충격을 받은 이유는 다 버리고 나서 그냥 나이만든 노인이 된 것 같아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예전에 문탁샘과 곰샘이 함께 공부하던 수유너머에 오셨다고 해요. 그리고 나중에는 혼자 길담서원이라는 서점컨셉의 공동체를 만드셨는데 그걸 하면서 많이 힘드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용하면서도 돈은 내지 않으려고 하고, 거기다 나름 서점인데 거기서 세미나 하는 책까지 길담서원에서 사지 않고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것을 보고 몸과 마음이 다 아프셨다고 해요. (장자 서점을 운영하는 저도 이 마음을 조금은 알 듯했답니다 ㅎㅎ)

그때 아프실 때 박성준 선생님을 일어나게 한 책이 바로 우리가 읽고 있는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고 해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직접 사사키 아타루를 한국에 초청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아픈 사람을 일으킬 정도로 강렬한 이 책은 어떤 책일까요?
제목부터 아주 셉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자르라는 게 아니라 "기도하지말 말고 읽어라!"를 표현한 것이라고 해요.

이것은 저자가 살고있는 현재 일본 사람들을 보고 느낀 것이라고 하네요. 일본에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고 불안해지자 사람들은 원전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며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사를 가서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고 작가는 안타까웠다고 해요. 그래서 작가는 기도가 아니라 읽는 것! 그것이 왜 필요한가를 이야기합니다.

읽는 것은 "읽을 수 없는 것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이 말을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문탁샘께서는 그것을 우리가 전혀 모르는 외국어를 읽을 때 반복하고 또 반복해가면서 읽는 것에 비유를 해주셨어요. " 읽을 수 없는 것을 반복해서 읽는다"는 이 모순은 어쩌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말처럼 그냥 반복해서 읽어보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저는 몇 권 안 되는 책을 반복해서 읽기 때문에 입에 붙어 거의 원문 그대로 술술 나옵니다. 반복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정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지요."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기도하는 그 손을』, 자음과 모음 ,45쪽

아무튼 정말 저 말처럼 읽는다면 미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한 예가 '대혁명'을 일으킨 루터입니다. 루터는 타락한 수도원과 교회와 교황에 의문을 품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책에는 어디에도 면죄부라든가, 교황의 권위라든가 교회법에 관한 근거를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루터는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미친듯이 성경을 읽었다고 해요. 자기 자신이 성경에서 교회법에 관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잘 못 읽었을 수 도있고, 지나쳤을 수 도 있어서 그것을 반복적으로 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리 찾아도 그 근거는 단 하나도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루터는 이제 미친 듯이 읽는 게 아니라 진짜 미친 존재가 됩니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의 근거를 부정하고 성경에서 새로운 근거를 발견하고 95개를 자신이 써냅니다. 세상과 다른 근거를 가지는 순간 그는 세상과 분열되고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종교 재판에 서게 되고 목숨의 위협까지 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찾은 근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읽는다는 것은 이처럼 위험한 것입니다. 미쳐버릴 수도 있고 죽임을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것!

"정말 목숨을 택할지, 읽는 것의 광기를 택할지 하는 일이 됩니다. 죽임을 당하거나 아니면 광기를 무릅쓰고 읽거나. 읽는 내가 옳은지, 읽는 나를 압살하려는 세계가 옳은지."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자음과 모음 , 129쪽

그리고 읽고 미쳤다면 이제는 써야 합니다.

"그들은 읽었습니다. 읽어버린 이상 고쳐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쳐 읽은 이상 고쳐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읽은 것은 굽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쓰기 시작해야만 합니다."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자음과 모음 , 196쪽


자 이렇게 읽으면 미치고, 목숨을 위협받고, 거기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쓰기'까지 해야 하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읽어야 할까요? 이것은 아마도 각자 이번 에세이를 통해서 자기가 찾아봐야겠지요?^^ 

문탁샘께서 친절하시게도 마지막에 에세이 쓰기 팁까지 주셨어요.

"에세이를 잘 쓰시려면 에세이를 쓰기 전에 준비가 필요해요. 미리 써놓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읽은 것에서 꽂힌 것 중심으로 메모 형태로 정리를 해야 하고, 가져와서 함께 토론시간에 그것으로 의견을 나누어 보세요. 그리고 그 의견을 통해서 메모를 자기가 수정해야 해요. 자기식으로 꽂혔던 부분을 계속 정리해나가고 덧붙여가는 진화의 과정이 9주 동안 가지셔야 해요. 가만히 있다가 에세이 때가 찾아와서 쓴다고 하면 물리적으로 힘들어요. 그런 식으로 시간에 쫓겨 쓰면 1학기나 4학기나 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쓰는 프로세스를 가져가셔야해요. 쓰는 프로세스를 가져가려면 써놓은 게 있어야 해요. 그래서 나중에 에세이를 쓸 때 자기가 썼던 메모들, 필사한 것들을 놓고 포인트를 잡고, 구조를 잡고, 문제의식을 여기에 넣고 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립해야 해요. 일필휘지? 불가능해요. 조립해야 해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그러려면 읽을 때 정리해서 토론때 의견을 나누고 수정해가는 과정을 매주 거치셔야 해요."

"메모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A4 한 페이지에 3꼭지 정도를 요약해보세요. 새로운 걸 쓰라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요약하면서 논리적으로 정리해야 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왜 이렇게 썼는지를 자기식으로 정리하는 거예요. 그리고 조별 토론시간에 나는 이런 거 같다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토론할 때 단발성으로 질문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자기식으로 정리해가지고 와야 해요."

자 그럼 저의 후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우리 모두 쓰는 프로세스를 가져가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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