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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조 글쓰기 8주차 후기(저항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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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영 작성일17-04-09 22:55 조회1,7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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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항의 인문학' 2번째 공부를 하였습니다. 긴 호흡을 요구하는 사이드의 글은 읽기가 수월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관점으로 읽기를 제시해 줌으로써 신선했습니다.

 문헌학으로의 회귀에서 사이드는 정밀한 독해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가진 세계관이나 관점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도 한 문단도 그 연결을 따라가면서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정밀하고 끈질기게 읽음으로써 글이 쓰여진 시대적, 인종적 맥락을 이해하고 이러한 수용적 읽기가 인문주의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인간이 만든 것만 이해하는 데 그것이 언어이며 언어로 된 텍스트의 독해를 통해 글쓴이의 삶과 정신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맥락을 받아들이는 수용적 독서는 다른 사람의 맥락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존의 권위와 권력에서 벗어나는 저항으로 나아갑니다. 현재의 인문학이 주로 백인중심의 고전 읽기라는 맥락이 없는 강단 인문학, 교조주의적 인문학의 풍토를 비판합니다. 소외된 이들, 흑인들, 주변지역을 담는 맥락적 읽기 즉 세속성이 인문학에는 필요합니다. 정밀한 수용적 읽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재독해와 그에 따른 글쓰기로 이어지는 실천적 과정을 사이드는 이행이라 합니다. 너무 빨리 정치적 독해를 하는 비약은 주의해야 합니다.

사이드는 인문학의 현실의 문제를 인문학적 독해를 통해서 개입할 것을 주장합니다.

 

독자들도 각자가 살고 있는 다양한 세계 속으로 자신들의 독해를 확장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세계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전통에 대한 감각, 제가 소속과 분리, 수용과 저항이라 표현했던 피할 수 없는 조합을 갈고 닦는 것이 지금의 인문학자들에게는 특히 필요합니다. 인문학자의 임무는 이러한 위치나 장소를 접하는 것도, 어느 곳에 그저 속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문학자은 우리의 사회, 누군가의 사회, 타인의 사회에서 문제시 되며 유통되는 사상과 가치에 내부인이면서 외부인 이어야 합니다.”(저항의 인문학, p.109)

 

인문학이 그저 우리 삶과 정신의 고양에 필요하며 읽기라는 것이 내 관점의 근거를 찾기 위한 독서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사이드의 세속성이라는 개넘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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