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4주차 글쓰기 후기-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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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安 작성일17-05-29 12:57 조회2,9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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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시-문리스 선생님]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학고재, 1997

 

p.87의 「문장 작법과 병법」을 원문으로 읽어보며, 연암 문장의 묘미를 짧게나마 느껴보자. 

 

騷壇赤幟引(소단적치인, 소(騷)는 시끄럽다는 뜻이고, 단(壇)은 문단으로, 여기서는 과거 시험장을 뜻함. 적치(赤幟)는 붉은 깃발로 적을 꺾어 승리한 영수(領袖)의 비유로 쓰임. 과거시험에서 승리를 거둔 명문장들을 모은 책이란 뜻이다. 인(引)은 서(序)와 마찬가지로, 『소단적치』라는 책에 붙인 서문이란 뜻이다.)

 

善爲文者, 其知兵乎.(其는 아마, 乎는 추측형 의문문, 설의법)

 

字譬則士也; 意譬則將也; A 즉(則) B 야(也) ; C 즉(則) D 야(也)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題目者, 敵國也; 掌故者, 戰塲墟壘也; A 자(者) B 야(也) ; C 자(者) D 야(也)

제목은 적국이다. 제목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문장 작법을 병법과 연결 지어 이 글을 풀어가는 것도 제목인 ‘소단騷壇(=전쟁터)’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고사(故事)의 인용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束字爲句, 團句成章, 猶隊伍行陣也; A 유(猶) B 야(也) ; 

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어 행군하는 것과 같다.

 

韻以聲之, 詞以耀之, 猶金皷旌旗也; C 유(猶) D 야(也)

 

照應者, 烽埈也; 譬喩者, 遊騎也; A 자(者) B 야(也) ; C 자(者) D 야(也)

조응은 봉화불이고, 비유는 유격대다. 유격대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특별한 임무를 수행한다. 지난주에 읽었던 코골이와 이명의 비유를 떠올려보면, 비유가 유격대라는 점을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抑揚反復者, 鏖戰撕殺也; 破題而結束者, 先登而擒敵也; A 자(者) B 야(也) ; C 자(者) D 야(也)

 

貴含蓄者, 不禽二毛也; 有餘音者, 振旅而凱旋也. A 자(者) B 야(也) ; C 자(者) D 야(也)

 

연암이 작정하고 썼다는 생각이 든다. 문장을 병법에 빗대어 글을 전개하면서 자신이 말한 것을 자신의 문장에 그대로 실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번역 글에서는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뿐, 문장의 구조나 조응 관계가 또렷이 느껴지지 않지만, 원문을 보면 연암 문장의 탁월함을 느낄 수가 있다. 

『소단적치』는 연암의 처남 이재성이 과거시험에서 승리를 거둔 명문장을 엮은 책이다. 이재성은 연암 초창기 글에 대한 비평가이기도 했고, 연암의 절친이라 서문을 부탁했을 때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 글을 쓰자’는 게 연암의 지론인데, ‘명문장을 갈고 닦으세’라고 할 수도 없고, 노골적으로 욕하기도 애매할 때, 연암이 어떻게 글을 풀었는지를 보라. 『소단적치』라는 제목으로부터 병법에 빗대어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마지막에는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무턱대고 옛 전법을 흉내 내다 실패하는 수도 있고, 옛 전법을 역이용하여 승리를 얻는 경우도 있다’면서 옛 전법을 때에 따라서 변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마천의 문장이 후대 사람들에게는 고전(古典)으로 보여도 사마천이 글을 쓸 당시에는 ‘지금 여기’의 글을 쓴 것이다. 法을 따라간 사람이 아니라 法을 창안한 사람이다.

연암은 묘비명, 제문 등 형식적으로 써지는 글조차 개성적으로 썼다. 누님의 제문을 쓴 글을 보면 누님이 시집가기 전날 연암이 새신랑 흉내를 내며 장난치다가 울며불며 하던 일화가 하나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사람 이름만 바꿔서 그대로 써도 좋을 형식적인 제문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연암은 대체불가능한 에피소드를 가미하여 쓴 것이다. 일반적 상식, 통념과는 다르지만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18세기 조선 지성의 큰 축을 살펴보자. 기득권을 대변하는 주자학 수호자로 정조가 있다. 다른 한 축에는 전문 백수인 연암 박지원이 있다. 박제가, 이덕무, 홍대용, 유득공 등이 어울렸던 이 축의 핵심윤리는 우정이다. 횡적관계이다. 다른 한 축에는 다산 정약용이 있다. 남인이며 소수 계파이자 관료 출신이다. 핵심윤리는 효(孝)제(悌)이며, 다산의 베프는 정조와 둘째 형인 정약전이다. 친구가 별로 없다. 강진 유배기간 18년 동안 많은 저술을 남긴 그의 글쓰기는 수목형이다. 뿌리, 줄기가 명확하며 본(本)과 말(末)이 뚜렷하고, 종류별 분야별로 나누어 저술했다. 반면 연암의 글쓰기는 우정과 연계되어 있고, 고구마 넝쿨처럼 여기 저기 달려 있다. 연암과 다산, 저명한 두 작가가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건만 상대방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Q & A

Q 연암의 글을 읽다가 ‘친구를 잃은 슬픔은 아내를 잃은 것보다 심하다’며 ‘아내를 잃은 사람은 그래도 두 번, 세 번 새 장가라도 들고, 서넛의 첩을’ 둘 수도 있고 ‘후처가 도리어 전처보다 나을 수도 있고’ ‘후처는 젊고 고우니 새 장가 드는 즐거움’이 있다며 친구를 잃은 고통이 더 심하다고 쓴 것이 걸리고, 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사라고 하는 대목도 걸립니다.

 

A 친구와 처를 모두 잃은 박제가의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것인데, 조선시대의 가족은 오늘날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당시엔 남편은 주로 사랑방, 부인은 내실에 머물러요. 사랑방은 집 안에 있으면서 집 밖으로 열린 외부와 연결된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가장 일차적인 관계가 이루어졌어요. 연암은 이덕무가 죽었을 때 나를 잃은 것 같다고 했고, 홍대용이 죽고 나서는 집안의 모든 악기를 다 없애버렸습니다. 악기들을 홍대용이 조율해주고 알려주곤 했는데, 그런 홍대용이 죽자 악기를 모두 치워버린 것이죠. 여러분도 남편보다 친구가 더 좋지 않나요?^^

 

자기 분수를 지키며 살라는 것이 걸리는 것은 스스로 자기 분수를 너무 낮춰 봐서 그런 건 아닐까요?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 내가 가진 분수 내에서 잘하는 것이 타고난 명(命)을 충분히 살려 사는 것이라 볼 수 있죠. 왜 더 많은 것을 욕망하며 살아야 하죠? 

신분제는 잘못된 것이고, 민주주의가 옳다는 관념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어요. 신분제도 그 시대에는 충분히 기능을 했던 것이에요. 민주주의가 늘 옳을까요?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예로 들어보죠. 공동체 구성원의 참여도나 기여도는 저마다 다릅니다. 마지못해 최소한의 참여만 하는 사람보다는 매사에 더 마음을 쓰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힘이 쏠리게 되어 있어요. 민주적으로 모두의 의견을 동등하게 반영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다보면 때로는 노력하기 싫어하는 다수가 쉬운 쪽으로만 결정을 할 수도 있는 거죠.

생각의 폭을 넓혀보면 좋겠습니다. 읽다가 걸리는 일부 대목으로 인해 자칫 ‘고전은 역시 나와는 안 맞아’ 식의 결론으로 갈 수도 있으니까요.

 

평소의 생각들이 인간관계나 공부 등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 스스로 질문하고, 의문이 생기면 책을 통해 나아가는 것, 이 이상의 글을 잘 쓸 수 있는 비결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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