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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5주차 글쓰기 A조 후기 -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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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준희 작성일17-06-08 00:38 조회1,8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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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환샘
 
일반적으로 18세기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을 들 수 있다. 연암(1737~1805)은 노론계 적자 집안으로 본관은 반남 박씨다. 16세에 결혼을 하고 과거 공부를 시작 하지만 35세에 스스로 과거 시험을 포기한다. 이후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홍대용, 백동수 등과 교류하며 이른바 백수 지성의 길을 가게 된다. 50세에 음직으로 관직을 얻어 지방관으로 근무를 하다가 65세에 병을 얻어 관직을 사직하고 돌아와 69세에 별세한다. 우리가 흔히 유약한 이미지로 떠올리는 유학자와는 달리 연암은 풍채도 좋고 체력도 좋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당시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이미 비범한 존재였다. 저서로는 <연암집><열하일기>가 있다.
 
연암과 다산은 정치적인 배경은 달랐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둘 다 스스로 자기 길을 내면서 살아온 지식인이다. 흔히 연암이 갈림길에서 과거를 접고 백수 지성의 길로 갔다고 하지만 시작할 때 길이 있어서 간 것은 아니다. 길은 중(중간)에 있지만, 길은 미리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저곳에 가면 저곳은 이곳이 되고, 그 이곳에서 또 다른 저곳에 가면 다시 이곳이 되고, 여기서 또 따른 저곳에 가면 또 다른 이곳이 된다. 이렇게 매번 지금 이곳이 아닌 곳으로 내가 이동을 할 수 있을 때 이것들을 이라고 한다. 이것이 이다.
 
다산(1762~1835)은 원칙적이고 보수적인 남인계 인물이다. 28세에 과거시험에 급제를 하며 정조에게 발탁이 되어 관료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다산은 정조가 죽고 40세에 강진과 해남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유배 생활 중에 다산은 500여권의 <여유당전서>를 저술한다. 다산을 18세기 지성의 한 축이라고 말하는 것은 길이 끊겨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스스로 저술 지식인으로의 자기 길을 냈기 때문이다. 안정이 보장된 길을 포기하고 백수의 길을 간 연암이나, 다산이 길이 막혀 막막할 때 책을 쓰게 된 것이 그들에게 어떤 길이였나를 생각하고 고민할 때에 그들이 보여준 지성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연암은 44(1780)에 영조의 부마였던 삼종형 박명원의 자제군관으로 5개월반동안 북경으로 연행을 가게 된다. 이때 일정이 뜻하지 않게 북경에서 열하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는 조선 650여 중국 연행 중 유일하게 열하까지 가게 된 사건이었다. 귀국 후 연암은 백수의 눈으로 천하를 본 중국 여행기 <열하일기>를 쓰게 된다. 여러 가지 우연한 일들이 겹쳐 <열하일기>가 등장한 것이지만 우연이라고 하는 것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연암이 그 우연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자기의 방식으로 자기 삶(생활)을 단련시키는 방법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중국을 갔지만 연암과 같은 여행기를 남긴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이것은 우연이었지만 연암이었기에 가능한 필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연암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런 우연이라고 하는 길들에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내는 그 단계(과정)들이 무엇이 있었는지를 궁금해 하고 들여다보게 해주는 지점이다.
 
책을 읽고 질문을 할 때 질문은 단순히 궁금한 것을 묻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 물음표를 다시 만들어야 질문이 되는 것이다. 관념으로 보지 말고 실제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추리해본 것 위에서 질문을 구성해야 질문의 내용은 풍부해지고 물음은 간결하고 명확해진다.
 
서양고전은 보통 한권이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다. 반면 동아시아 고전은 한편 한편이 각기 다른 배경과 맥락위에서 다른 주제로 쓰여 진다. 같은 주제도 누구에게 주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언표는 똑같아도 어떤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 예를 들어 연암의 법고창신을 추구했던 연암의 문장론을 살펴보자. 연암은 박제가의 초정집서에서는 창조하여 교묘한 문장을 짓기보다 차라리 모방하여 비루해지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이서구의 녹천관집서에서는 네게 옳으니 계속 새로운 글을 쓰라고 말한다.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박제가는 글 쓰는 재주가 승하고 욱하는 성질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사람들과 번번이 부딪힌다. 그러나 박제가는 서자이다. 그를 돌봐줄 세력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연암은 박제가에게 창신보다는 법고할 것을 권한다. 반면 이서구는 적통 노론 집안 출신이기에 자기 세계 안에서 얼마든지 자기의 문장 세계를 펼쳐나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어떤 맥락위에서 연암의 글이 쓰여졌는지를 꼼꼼히 살펴 읽어야 한다.
 
97문학비평은 어떻게편은 연암의 글쓰기 기본 초식을 알 수 있는 텍스트다. 연암은 이명증과 코골이로 글 쓰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명은 자기만 들리는 것이고 코골이는 자기만 듣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 혼자만 아는 것은 남이 알아주지 못함을 항상 걱정하고, 자기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 남이 먼저 깨달을까 기피한다.” “나의 병인 이명증은 들으려 하지 말고 나의 코고는 것만 일깨워준다면 얼추 작가의 진의를 얻으리라.” 즉 글은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게 첫 번째다. 자기가 실수하거나 사기당한 일도 쓰지 못할 것이 없다. 중요한 건 전달하고자 하는 내 생각과 뜻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꼭 거창한 말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67사마천과 나비 잡는 아이편에서 연암은 글을 어떻게 읽어야 되는가를 말하고 있다. 사마천은 맹자, 장자와 함께 동양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특히 사마천의 서사 구성력과 문장은 제일로 친다. 연암의 글 또한 서사 능력과 심도가 깊은 내용, 논리적인 구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짧은 편지글이지만 어떤 마음으로 글을 읽을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다.
 
나이와 신분의 차이가 있었지만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 백동수, 유득공 등으로 불리는 연암 그룹은 서로 벗이며 스승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서로의 글을 읽어주던 그들이 보여주는 길은 한마디로 지성으로 맺어진 우정의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상하 수직관계인 효와 제를 강조한 다산의 글쓰기는 방대한 책으로, 길 위에서 우정을 펼친 연암의 글쓰기는 형식화되기 쉬운 글에서조차도 이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대체 불가한 글들을 써 나간다. 연암은 매번의 글쓰기에서 자기가 전해고자 하는 그 뜻을 적실하게 쓸 수 있는 글을 쓴다. 이는 매번의 만남의 관계들을 하나의 우정으로 변주시킬 수 있는 자세로 사람을 대했기 때문에 그런 글쓰기와 삶이 가능했던 것이다. 삶과 글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즉 연암의 글쓰기는 연암이 살고자 했던 삶의 길을 보여준다. 바꿔 말하면 연암이 살고자 했던 삶의 길을 볼 수 있다면 연암이 지향했던, 연암이 쓰고자 했던 글을 알 수 있다. 결국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문제와 닿아있다.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읽는다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나 삶의 장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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