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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짜라투스트라......』글쓰기 수업 첫 번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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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매정 작성일17-10-15 22:21 조회2,2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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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글쓰기 수업 후기 2017. 10. 15. 매정

 

현존재는 재앙일까? 축복일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 2, 3부는 니체의 배움의 기록을 따라간다. 1부는 신의 죽음, 2부는 힘에의 의지, 3부는 영원회귀이다. 그리고 4부가 영원회귀 이후의 삶을 말한다.

신의 죽음은 초월성의 죽음이고 혼돈의 상태를 뜻한다. 신은 삶의 방향, 목적, 의미의 핵심이었고, 이러한 신의 존재는 우리의 존재의 의미를 보장해주고 있었다. 내 존재의 근거가 신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신은 현존재를 가장 왜곡시킨다. 이렇게 삶을 왜곡시키는 신을 누가 말하는가? 욕망하는가? 는 살펴보아야한다.

예전부터 엄마는 내가 성당에 다니기를 원했다. 그러한 소망을 뿌리치고 다니지 않는 것에 대한 죄스러움이 내 의식 밑바닥에는 있었다. 하지만 짜라..의 수업에서 신이 현존재를 가장 왜곡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짜라..를 통해 니체는 신의 죽음 이후, 강력한 힘의 의지에 의한 몰락을 원한다. 여기에서 짜라..는 베풂(고양)과 몰락(파괴)를 통한 자기극복을 제시한다.

육체와 분리된 정신은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 니체는 인간을 신체성(힘의 의지)을 따라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리고 형이상학자는 병약하고 겁 많은 신체를 번역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때문에 병약한 신체를 바꾸지 않으면 누구라도 형이상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병약한 신체를 양산한 시대가 근대이다.

근대는 노동을 양심으로 하면서 출현했다. 노동은 근대의 경찰이다. 근대에서 말하는 이성, 행복, 덕은 짜라..의 자기극복(위버멘쉬, 자기몰락)을 방해한다. 자기극복을 하려면 자기를 대면해야한다. 자기를 대면하지 않음은 자기기만을 만든다. 이렇게 해서 자기기만은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자기를 약자로 만든다. 더 나아가 약자는 신을 원하게 된다.

신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신을 만들어낸 약자들의 마음장에 대한 비판이다. 약자는 자기를 볼 힘이 없다. 모든 행동의 원인을 외부로 돌린다. 그래서 자신을 대면하지 못한다.

자기를 대면하고 자신이 오직 교량, 과정 몰락 속에 존재하며 사유(사유는 질문을 품고 질문과 싸우는 과정이다.)하는 자만이 위버멘쉬가 될 수 있다. 인간말종은 이러한 위버멘쉬를 욕망하지 않는 자이다.

신이 죽고 나서 현존재는 삶의 방향성이 없어졌다. 이제 아무데나 갈 수 있다. 이러한 현존재는 재앙일까? 축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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