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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 4주차 전습록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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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영 작성일17-11-11 10:23 조회1,9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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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록 4


성선설이나 성악설은 성을 선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성을 악의 측면으로 본 것. 얼핏 보면 둘이 모순된다. 그러나 양명이 보기에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성은 지극한 측면에서 보면 선하다는 측면에서 접근한다. 순자는 성이라는 것이 점점 다른 환경들에 의해 나쁘게 될 수 있는 점들이 있다는 것에서 성을 이야기 한다. 둘 다 성을 이야기하나 포착하는 지점이 다른 것이다.    <br><br>









아울러 본성은 정해진 게 없다고 했는데, 본성이 정해진 게 없다고 하는 것은 성을 어떤 측면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 사람의 어느 부분을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br><br>






유학은 마음을 다룰 때, 마음은 성과 정이라는 두 차원에서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본성과 감정. 이 중에서 어떤 것은 마음의 아주 순수한 측면에서 마음을 바라볼 때 하는 이야기이다. 어떤 것은 마음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본성이라는 것은 근원적인 것이다. 말의 쓰임새와 용법이 자연스럽게 회로화 되어 있는 것. <br><br>


 


마음의 용처로 이야기할 때는 정. 마음의 본체 측면에서는 성과 많이 닿아있다. 그런데 성은 누구에게나 본래적인 것이다. 감정은 선할 수도 있고 불선할 수도 있다. 언제가 선하냐면 좋고 기쁘고 슬프고 불선한 것이 중에 맞으면 선하고, 좋고 슬프고 성나고 하는 것이 정도에 어긋나면 불선한 것이다. 지나치게 슬퍼하고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고, 이런 것도 불선이다. 자기 마음이 지나치게 너무 분노가 없는 것,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본성은 항상 선한 것이다.  <br><br>






항상 선한 것이라 선하지 않은 쪽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게 순자이다. 선하지 않은 것을 수행이나 평상심 차원에서 막아야 한다.  <br><br>






위기지학 : 자기를 위하는 학문, 자기로부터 학문의 출발을 삼는 자, 자신의 양지를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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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지학 : 사람을 위하는 학문, 향원과 사이비.  <br><br>






치양지를 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더 마음이 남지 않는 길로 가는 것이다. 옳은 길을 가는 게 아니고 내 마음에 더 이상 내가 다시 이 길을 와도 이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길을 잘못된 길이라고 해도 후회가 남지 않는다. 그래서 치양지한다고 하는 것이 선이라는 말에 휘둘려서 정의롭고 옳고 하는 것이 아니다. <br><br>
 





시비는 옳고 그름. 옳고 그름은 호오이다. 선악의 구도로 보면 선과 불선. 선악이 결국 호오의 선악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어떤 일을 겪을 때 좋은 일이라는 기호가 기질적인 기호가 아니라 본질적인 기호라는 거다. 사람으로서 갖는 기호. 맹자는 그것을 4가지로 이야기한다.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때 작동하는 기제. 통상 이야기 하는 기질에 따라 어떤 마음들을 더 쓰는 사람들이 있다.  <br><br>





중용이라는 것은 중도의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치양지의 길이다. 그러나 중용이 어려운 말이다. 치양지가 오히려 간명한 말이 아닐까.  <br><br>






근대인의 공부와 양명의 공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 대하여... <br><br>






전습록은 이미 500년 전의 책이다. 공부를 하다보면 앎의 열매들에 접근하게 되고, 대상적 앎을 취해서 지식으로 갖는 공부를 쉽게 한다. 양명의 시대도 그랬다. 그런데 여기서도 볼 수 있는 것은 그런 시대나 공부, 마음의 본체에 대해 이야기 하고, 더 한 푼의 천리를 쌓는 공부를 하고, 이런 관념적인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br><br>






만약 전습록을 공부했다면, 마지막 이것만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br><br>






무선무악 심지체 :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 마음이 본체고 <br><br>


유선유악 심지동 : 마음이 움직이면 선도 생기고, 악도 생긴다. <br><br>


지선지악 시양지 :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는 나의 양지가 판단해준다. <br><br>


위선거악 시격물 :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이 격물이다.  <br><br>






결국 마음 밖에는 物이 없다. 사건이 없다. 이치는 마음 밖에서 찾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귀천과 학습의 정도와는 다르게, 마음이 저절로 가는... 누구에게나 다 양지의 작동의 마음들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다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다 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때로는 성인이 되기도 소인이 되기도 한다. 자기의 마음에 걸림 없이 떳떳하게 사는데, 살다보면 마음이 많이 남아. 그럴 때가 바로 공부를 할 수 있을 때이다.  <br><br>






양지라는 것은 내가 나와 관련이 있는 마음 사건에서 바름을 얻는 것. 양명이 만물일체설을 이야기 하면서, 유학의 끝까지 거의 이것을 밀고 나간다. 그게 맨 마지막 대학문. 933쪽. 치양지 한다는 것은 자기의 어짊 됨을 천지만물과 일치시킨다. 누군가에게 위기나 위급함이 있을 때 마음이 확 일어나는 것처럼. 그런 마음들이 우리에게 올라올 때 그 마음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 마음들의 싹들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눈여겨 보는 것이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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