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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대중지성 1학기 1교시 수업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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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Sks 작성일18-03-03 17:08 조회1,7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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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허망하다. 절망이 그러하듯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마찬가지이다.

  

감이당 입문생의 첫 수업시간, 첫 강의 후기입니다.

(‘혹은 처음이라는 말의 울림은... 뭐랄까요. -사랑, -만남처럼 떨림과 설렘을 주곤하죠. ‘이라는 말의 어감으로 잠시 삼천포^^)


-시간은 신근영 샘의 루쉰, 길 없는 대지편으로 본격적인 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루쉰의 일대기와 동서양의 시대적 상황 및 사상적 흐름을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루쉰은 사오싱의 명문가 집안으로 찬란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할아버지의 시험부정과 아버지 투병생활, 사망으로 집안은 급격하게 몰락하고 음울한 청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루쉰이 문예의 길을 걷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강남수사학당에서 광무철로학당으로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분학원에 입학하였다가 다시 센다이 의학전문학교로 옮기게 됩니다. 의학공부를 하던 중 돌연 환등기 사건을 계기로 공부를 중단합니다.

루쉰이 보기에 중국인들에게 시급한 건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보다는 정신을 개혁시킬 의학이 더 절실했던 것이지요

- 어리석고 겁약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건장하고 우람한들 조리돌림의 재료나 구경꾼이 될 뿐이었다. 병으로 죽어가는 인간이 많다 해도 그런 것쯤은 불행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저들의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뜯어 고치는 데는 당시 생각으로 당연히 문예를 들어야 했다. 그리하여 문예운동을 제창할 염이 생겨났다.

                                                    「외침p.11서문 (강의자료 복사본 )

 

 근대 서양의 계몽주의가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면, 루쉰의 계몽에는 방향제시나 해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그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하면서, <생각하는 인간, 존재하는 인간>을 통하여 진리를 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루쉰은 격렬하게 전통(중국의 낡은 습속, 自大)을 비판하면서도 서구의 가치를 추종하는 근대 계몽이성에 대해서도 무자비하게 비판합니다.

서구의 계몽이란, ‘데모크라시(다수, 대중, 민중, 구경꾼, 무리본능 등) + 사이언스(물질의 발전)’를 말하는데요. 루쉰은 물질이 결코 우리에게 깨달음(진리)을 주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루쉰에게 있어, 계몽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철방에서의 루쉰은 방 밖에서 바라보는 계몽적 지식인이 아니라, 루쉰 역시 철방에 갇힌 지식인으로서의 민중이기에 더 많은 고민과 질문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어떻게 아Q를 계몽시킬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아Q가 스스로를 혁명하도록 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 그의 질문이였습니다.

 루쉰에게 있어 삶이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 만일 다른 사람에게 길을 인도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조차도 어떻게 길을 가야 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대개 청년들의 선배스승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러난 나는 아니며, 나도 그들을 믿지 않는다. 나는 다만 하나의 종점, 그것이 바로 무덤이라는 것만은 아주 확실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이므로 누가 안내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질문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은 깨어 있는 자만이 가능하며, 삶을 사는 동안 끝까지 깨어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화두를 잡고) 살아가는(글을 쓰는) 것이 루쉰에게 있어 그 자체가 삶(글쓰기)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에 대한 집중도가 관건이며, 글의 시작과 끝이 일치해야 합니다.

에세이를 쓰는 것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하겠습니다.

내가 던진 질문과 싸움(사유)의 흔적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며,

아울러, 에세이의 핵심은

열고(어떤 질문을 얻었는가)”

풀고(씨름하고, 싸우고)”

닫고(절대! 윤리적 결론을 얻어내려 하지 말 것!)”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르그송의 말을 인용, ‘어쩌면 우리는 가짜 질문과 씨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씀으로 샘은 첫 강의를 마무리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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