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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2학기] 열하일기 첫번째 수업 후기
 글쓴이 : 문미선 | 작성일 : 18-05-14 16:35
조회 : 98  
연암이 살았던 18세기와 열하일기 라는 여정


조선에서 연경(베이징)으로의 연행은 약 650회 정도 된다. 일본은 약 50회.
큰 강대국을 중심으로 주변 국가들이 일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 동북아시아 전근대시대의 외교질서였다.
조공을 바치거나 사대를 하는 것이 특별히 굴욕적인 것이 아니다.
식민지나 종속국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1780년 연암의 열하행은 애초에 전혀 계획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행은 많았으나 열하까지 간 적은 없었다.

또한 병자호란 이후 '때려잡자 오랑캐'를 외치면서도 실제 오랑캐를 때려잡기 위한 조치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오랑캐에 대한 적대감은 무지한 하인 장복이조차 질색할 만큼 뼈속깊이 박혀 있는 생각이었다.
때문에 조선의 사신단은 되도록 청나라 사람이나 황제를 만나지 않고 돌아가고 싶었으나,
청 황제는 친히 자신이 있는 열하까지 조선의 사신단을 불러들였고
자신이 스승으로 모시는 판첸라마까지 접견하도록 명한다.

청나라는 명나라를 먹은 후 뿌리찾기를 통해 자신들 만주족의 원류가 장백산(백두산) 임을 확인했다.
청의 입장에서 조선은 단순한 조공국이 아니라 같은 조상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였다.

연암이 연행하게 된 배경으로 홍대용의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다.
홍대용은 연암보다 6세 위였고 연암 그룹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1765년 삼촌 덕에 연경에 다녀 온 적이 있다.
이때 우연히 중국 중앙관리를 뽑는 진사시를 위해 연경에 와 있던 지식인들을 만나
서로 필담을 통해 우정을 나누었고 이 후로도 서신을 주고 받았다.
홍대용은 이를 [회우록]이라는 책으로 엮었고 연암이 그 서문을 썼다.
연암은 35세에 과거를 포기했고 연암과 같이 수신을 더 중시하는 사대부들도 있었다.

열하일기는 열하까지 가는 과정이 적혀 있다.
우리의 여행은 보통 가는 목적지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열하까지 가는 길 위에서의 이야기들이 열하일기에 적혀 있다.
길 위에서 벌어지는 우발적인 사건들이 두번 다시 없을 최고의 사건들로 받아들여진다.

성환샘이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강의를 해 주셔서 그 이야기 속으로 쏙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필기를 많이 못했는데-_-;
홍대용과 중국친구들이 나눈 우정이나 연암이 열하로 가게된 배경 이야기에서는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필연들에 함께 놀라움을 느꼈고 감동스러웠습니다. 여전히 연암의 장인 이보천이 사위가 과거를 안봐도 좋다고 생각했던게 이해는 잘 안되지만 기본적으로 사대부들은 먹고 살만 했으니까 그랬던 걸까요..?
아무튼 열하일기를 좀 더 재미있게 만날 수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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