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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2학기] 열하일기 첫번째 수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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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미선 작성일18-05-14 16:35 조회1,6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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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살았던 18세기와 열하일기 라는 여정<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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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연경(베이징)으로의 연행은 약 650회 정도 된다. 일본은 약 50회. <br>
큰 강대국을 중심으로 주변 국가들이 일정한 관계를 맺는 것이 동북아시아 전근대시대의 외교질서였다.<br>
조공을 바치거나 사대를 하는 것이 특별히 굴욕적인 것이 아니다. <br>
식민지나 종속국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br>
1780년 연암의 열하행은 애초에 전혀 계획되어 있지 않았다.<br>
지금까지 연행은 많았으나 열하까지 간 적은 없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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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병자호란 이후 '때려잡자 오랑캐'를 외치면서도 실제 오랑캐를 때려잡기 위한 조치는 하나도 없었다. <br>하지만 오랑캐에 대한 적대감은 무지한 하인 장복이조차 질색할 만큼 뼈속깊이 박혀 있는 생각이었다.<br>
때문에 조선의 사신단은 되도록 청나라 사람이나 황제를 만나지 않고 돌아가고 싶었으나,<br> 청 황제는 친히 자신이 있는 열하까지 조선의 사신단을 불러들였고<br> 자신이 스승으로 모시는 판첸라마까지 접견하도록 명한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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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는 명나라를 먹은 후 뿌리찾기를 통해 자신들 만주족의 원류가 장백산(백두산) 임을 확인했다. <br>청의 입장에서 조선은 단순한 조공국이 아니라 같은 조상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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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연행하게 된 배경으로 홍대용의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다. <br>홍대용은 연암보다 6세 위였고 연암 그룹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br> 1765년 삼촌 덕에 연경에 다녀 온 적이 있다.<br>
이때 우연히 중국 중앙관리를 뽑는 진사시를 위해 연경에 와 있던 지식인들을 만나 <br>서로 필담을 통해 우정을 나누었고 이 후로도 서신을 주고 받았다. <br>홍대용은 이를 [회우록]이라는 책으로 엮었고 연암이 그 서문을 썼다.<br>
연암은 35세에 과거를 포기했고 연암과 같이 수신을 더 중시하는 사대부들도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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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는 열하까지 가는 과정이 적혀 있다.<br> 우리의 여행은 보통 가는 목적지에서 시작된다.<br> 하지만 열하까지 가는 길 위에서의 이야기들이 열하일기에 적혀 있다. <br>길 위에서 벌어지는 우발적인 사건들이 두번 다시 없을 최고의 사건들로 받아들여진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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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샘이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강의를 해 주셔서 그 이야기 속으로 쏙 빠졌습니다.<br>
그러다가 필기를 많이 못했는데-_-; <br>
홍대용과 중국친구들이 나눈 우정이나 연암이 열하로 가게된 배경 이야기에서는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필연들에 함께 놀라움을 느꼈고 감동스러웠습니다. 여전히 연암의 장인 이보천이 사위가 과거를 안봐도 좋다고 생각했던게 이해는 잘 안되지만 기본적으로 사대부들은 먹고 살만 했으니까 그랬던 걸까요..?<br>
아무튼 열하일기를 좀 더 재미있게 만날 수 있을것 같습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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