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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의역학수업 1강 요약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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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옹달샘 작성일19-10-17 11:42 조회2,12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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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당 일성 4학기 1교시 의역학 양생의 기초  오창희 샘/2019.10.13.일

강의 요약:

양생(養生)과 위생(衛生)

양생은 생명을 기른다는 의미이다. 즉 내가 무엇을 한다는 것이다. 반면 위생은 나의 생명을 지킨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외부의 적(敵)을 전제로 한다. 병이 나의 외부에 따로 있고 그것에 대해 내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를 생각하며 두 가지 태도/철학을 비교해보고 앞으로 지향할 바를 명확히 해보자.
병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건강에 대한 우리의 철학을 반영한다. 우리는 병과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위생은 무엇인가?
서양의학은 자연과의 단절을 특징으로 한다. 코흐(Heinrich Hermann Robert Koch 1843-1910)가 결핵균 발견한 이래 병의 원인을 세균으로 보았다. 이것은 다른 보이지 않는 것들-어둠, 귀신처럼 두려움을 일으켰다. 또 누구나 실천 가능한 양생과는 달리 위생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부분이 크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의사, 병원, 의사, 방역당국(cf. 메르스)에 의존하게 만든다. 이런 위생권력들은 소외를 만들어낸다. 그 효과도 의문스럽다. 전염병이나 미세먼지에 대항하기 위해 장착하는 마스크를 생각해보면 위생 논리의 허무함을 인식할 수 있다. 병은 막아서 지킬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비위생의 대표적인 물건으로 취급되는 똥의 처리는 수세식 변소가 해주는 것 같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것이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다만 내 눈앞에 있지 않을 뿐임을 알게된다. 똥을 거름으로 쓰던 시대에 비해 과연 더 위생적인 시대가 되었는가? 똥이 배추를 기르고 사람이 먹고 다시 똥을 만들어내는 순환시스템보다 수세식 변소는 단지 오염의 범위를 넓혀놓았을 뿐아닐까? 교통사고 사망자 집계를 보면 차는 메르스보다 사람을 더 많이 죽이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차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차길을 건너기도 하고 운전을 하기도 한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위생은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병이 없어지지는 않았고 새로운 병이 많이 생기기도 했다. 영화 『괴물』에서 괴물에 대처하는 태도는 메르스에 대한 대처를 생각나게 한다. 까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페스트에 대처하는 여러 인물들의 태도는 시사점을 준다. 우리가 어떻게 해도 병에 안 걸릴 수는 없다. 먹어서 건강해지려는 생각이 있지만 부질없는 생각이다.

그러면 양생은 무엇인가?

동양의학에서는 인간을 외부자연과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보았다. 자연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순환한다. 물이 증기가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내린다. 자연은 치우침을 바로 잡는다. 해일은 어선을 몰고 바다로 나간 어부에게는 큰 사건이겠지만 그것은 바닷물을 섞어주는 행위일 뿐이다. 인간 역시 소우주이고 자연처럼 순환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의 신형장부도가 보여주듯이 몸은 독립된 장기들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아기들에게 모자를 씌우고 양말을 벗기는 것은 불합리하다. 두한족열(頭寒足熱)의 양생법에도 어긋난다. 얼굴에는 양경이 다 지나기에 겨울에 얼굴을 내놓아도 얼지 않는다. 게다가 애들은 양기 덩어리이다. 그런데 모자를 씌워 열의 발산을 막고 있다. 발과 배는 따뜻하게 하라는 말도 무시하고 있다. 우리가 잘 때도 머리는 창문쪽으로 발은 바람이 안 들어오는 쪽으로 하고 자야 건강에 이롭다.
순환은 장부의 순환 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순환, 음식과 똥의 순환, 자연물의 순환으로 확장된다. 인간이 소우주라는 것은 순환시스템이라야 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원리에 따라 내가 나를 관리해주는 것이 양생이다.
인간은 병과 함께 태어난다. 병없이 살겠다는 말은 안 살겠다는 말이다. 도(道)는 음양의 균형으로 정의할 수 있다. 나의 외부의 기운도 알고 나의 체질도 알아야 한다. 정기신(精氣神)의 기는 몸 안에 들어온 자연(自然)이다. 기는 내 몸 안에도 있고, 나의 밖에도 있는 기운이다.
양생을 위해 『동의보감』은 다 줄이라고 말한다. 음식, 감정, 관계도 줄이고, 성욕도 줄이고 기름진 음식도 줄이고 말도 줄여라. 말을 많이 하면 양기가 소모된다. 과식은 적체를 일으키고 담음을 만든다. 몸은 우리가 믿는 바와는 달리 뭘 먹어서 더 잘 돌아가게 되지 않는다.

『명랑인생교본-동의보감 매일매일실천편』(북드라망)의 몇가지 지혜를 꾸준히 실천한 경험담.

글쓰기가 양생이다. 집중(集中)하고 수렴(收斂)하게 된다. 긴장을 놓치는 순간 외부의 적이 나를 치고 들어온다. 이때의 긴장이란 방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외부의 자극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이다. 모든 동양고전이 이것을 추구한다.

할머니의 죽음(1978)과 어머니의 죽음(2015)에 대한 목격과 인식 소개. 인간의 죽음은 나무의 죽음을 생각게 했다. 주역이 산수몽(山水夢)궤가 보여주듯 흘러나온 물은 여섯 개의 효(爻)/단계를 밟아가며 나아간다. 주역의 64궤의 이치를 배우면 번뇌가 사라진다고 하듯 모든 동양고전은 양생의 지혜를 지향하고 있다. 니체에게서도 양생에 대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자신 병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철학을 해나갔기에 절실한 비유가 많다. 가령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동의보감』 2권 중 172절: ‘치료법으로서의 전쟁’에 대한 아포리즘을 참고하라.
인도에서는 지혜의 결핍이 병이다라고 보았고 붓다도 언어와 행동을 명료하게 하는 것을 양생법의 근간으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주역에 정의입신(精義入神)라는 말이 있다. 미세한 이치를 궁구하여 오묘한 도리에 도달함을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의 짝이 되는 구는 쇄소응대(灑掃應對), 청소하고 손님을 맞는 것 같은 소소한 일상이다. 지혜란 이런 일상에서 비롯되고 일상에 적용가능한 것이다.

Real 개인 후기:

오창희 샘께서 매우 열정적으로 기운을 세게 쓰셔서 2회분 강의를 한 회에 다 해버리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서 하신 주역에 대한 말씀은 이치를 알면 양생을 실천할 수 있다는 말로 들려 내게 주역에 대한 궁금증을 폭풍처럼 불러일으키는 사건을 만들어냈다.
댓글목록

옹달샘님의 댓글

옹달샘 작성일

파일로 다시 올렸으니 그거 읽어 주세요.

들꽃처럼님의 댓글

들꽃처럼 작성일

훌륭하게 정리하신 후기를 보니 다시 수업을 듣는듯 생생하고, 제가 놓친 부분까지 깨닫게 됩니다. 해당 용어나 단어를 한자로까지 정리해주셔서 책 몇장을 보는듯 하네요^^  저게도 주역이란 학문의 세계가 웅장하게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