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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18세기 지성사의 배치 4강 후기(20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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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적 작성일20-11-05 15:30 조회9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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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일 4학기 강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는 다산의 글쓰기의 특징과 다산의 사상이 어떻게 20세기에 특별하게 주목받게 되었는지를 다뤘다. 

  다산은 3천 수 가까운 한시를 썼을 정도로 한시에 능통했다. 엄격한 형식미를 강조하는 한시는 당시 사대부의 교양의 지표라고 할 수 있었다. 다산의 글은 장르적으로 전통적인 고문의 문법을 따르고, 내용적으로는 정치적 개혁, 경세치용을 담고 있다. 봉건제의 틀 안에서 애민하는 군주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지방 수령들의 타락상을 고발함과 동시에 이로 인해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애절양」이란 한시를 들 수 있다. 여성문제를 다룬 대표적인 서사시로는 「소경에게 시집 간 여자」가 있다. 계급적 질곡 안에 성차별적인 질곡을 다루고 있지만, 개인의 내적 갈등과 모순, 욕망은 살피지 않는다. 그가 사랑하는 민중은 거대한 집단으로서의 민중일 뿐, 개인의 디테일한 모습은 들여다 보지 않은 것이다. 

  다산 글의 핵심은 중심성과 종합 집대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중심성이란 하나의 구심점, 주체가 있다는 것, 남인은 왕권 중심의 철학이었고, 다산은 당시의 군주인 정조를 철저하게 신봉했다. 인식론적으로 말하자면, 고전 경학에 나오는 하늘의 인격화인 상제(上帝)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상제는 천주교의 천주(天主)와 일맥상통한다. 다산이 한때 천주교를 믿었던 것은 그의 이런 인식론적인 사고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종합집대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은 다산이 유배시절, 경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모든 경서에 스스로 주석을 다는 작업을 했다는 것에도 잘 드러난다. 특히 『논어고금주』를 보면 그의 사상이 기독교적 사상과 얼마나 흡사한지 알 수 있다. 그의 배교 여부와 관계없이 셰계와 우주를 관장하는 주체를 상정하는 그의 사상은 기독교 사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다산 역시 실제로 정책을 입안하거나 개혁 정책을 현실 정치에 반영하는 것으로 역사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을 글로 남김으로써 역사에 참여했다. 다산의 저작들은 18세기 우리 선조가 어떤 사상적 모색을 해왔었는지를 가늠하게 해주며, 식민 시절 우리 민족에게 사상적 자부심을 일깨워 줌과 동시에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근대화, 계몽사상과 맞물려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다산의 산문 중 가장 대표적인 형식은 묘지명이다. 자찬묘지명을 비롯해 그는 많은 지인들의 묘지명을 작성했다. 자찬묘지명에는 정조와의 관계, 자신의 공부 내력, 배교의 이유와 더 이상 친주교 신자가 아님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또한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지인들의 묘지명은 그들이 천주교 신자가 아님에도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다산의 묘지명은 고인을 애도하기보다는 고인의 삶을 입증하는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다. 다산의 대부분의 글은 전문적이고 학술적이라 읽기가 쉽지 않지만, 아들들과 나눈 서간문을 통해서는 다산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다산이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도 박석무가 편역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다.

  20세기 한국 근대는 다산의 사상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1세기 디지털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식이 개방되고 백과사전식 정보, 계몽주의가 퇴색하기 시작했다. SNS의 발달로 각자가 자기 삶의 플랫폼이 되면서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18세기 동시대를 전혀 다른 철학으로 살아간 두 사람, 연암과 다산을 조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산 글의 특징뿐만 아니라,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 정조 이야기, 남인 후예들이 학계의 주류가 되면서 18세기 정치와 역사에 덧씌워진 왜곡된 이미지 등의 설명은 매우 흥미로웠다. 동시에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공부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18세기 두 사상가의 사상이 그 시대에 머물지 않고, 21세기 지금에 와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또 변주되는지 등 과거를 통해 현재를 고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는 강의였다.

  고미숙 선생님의 거침 없는 해석과 시니컬한 농담은 강의를 풍성하고 유쾌하게 했다. 그런 강의에 한참 못미치는 리액션이 못내 죄송스럽다. 다음에는 선생님 강의에 영혼을 담아 적극적으로 리액션을 하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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