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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물질과 기억> 수업 후기_이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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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케잌 작성일22-05-01 23:27 조회1,396회 댓글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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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일성 수업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학기 첫 수업이네요. SF 소설과 문구 덕후인데다 넉넉한 인심까지 갖추신 정군샘을 만난 덕분에 1학기 에세이 장원 네 분과 아차상을 받은 두 분 선생님들께서는 SF소설책과 스태들러 형광색연필 세트를 선물로 받으셨어요저도 운좋게 장원이 되어 책선물을 받게 되었지만 고백하자면 저는 SF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저의 빈곤한 상상력 탓에 SF 소설에 나오는 묘사를 따라가기 힘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자동화 기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가족 중 SF 소설 덕후가 있어서 저희 집에는 SF 소설이 차고 넘칩니다. 뭔가가 발에 채이게 많으면 지각되지 않고 통과하는 법, 소설을 좋아하지만 SF 소설만은 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읽은 두 권의 SF 소설이 있으니 바로 앤디 위어의 마션과 배명훈의 타워입니다. 둘 다 제목이 간결하고 강렬하죠? 제목 덕에 읽은 이 두 권의 책은 SF 소설이 진짜 재밌다는 것을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지구적 스케일도 모자라 화성까지 넘나드는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에게는 놀랍게도 비행공포증이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데 비행기를 못 탄다? 이건 거의 금치산자죠. 팬들이 앤디 위어를 너무 보고 싶어 하니 그는 결국 심리치료를 받은 후 비행기를 타고 샌디애고 코믹콘에 참가합니다. 저는 마션을 읽었을 때보다 앤디 위어의 비행 공포증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행기도 못 타는 사람이 우주선을 탔을 때 신체가 느끼는 과학적 사실과 감정을 어떻게 그렇게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사람의 의지와 상상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되었죠. 배명훈의 타워도 수직으로만 움직여야 하는 600층 넘는 타워에 살게 되면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행동양태가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를 매우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강추합니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제 기준에서 제목이 구린(?!) 관계로 책장에 10년 넘게 쳐박혀 있어야만 했습니다. 정군샘이 마침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을 주셔서 덕분에 저는 이걸 본숙샘께 선물로 드릴 수 있었고, 저희 조는 오늘 받은 세 권의 책을 돌려가며 읽기로 했습니다. 정군샘의 사려 깊은 선물이 순환으로 이어진 것이 너무 기분 좋습니다^^

 

그러나 정군샘의 책 선물로 제가 가장 크게 얻게 된 수확은 여성 SF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입니다. 저희 집에 있는 그 수많은 SF소설은 모두 다 남성작가의 작품들입니다. 저에게는 자동적으로” SF소설은 남성위주의 소설이라는 편견이 있었고, 그것 또한 제가 SF 소설을 멀리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된 책 네 권 중 두 권이 여성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저는 이제부터 SF소설에 마음을 열기로 했고 수업 후 바로 교보문고로 달려가 어슐러 르 귄의 바람의 열두 방향을 샀습니다. 무릎 수술 받으러 입원할 때 무슨 책을 가지고 갈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딱 요걸로 들고 가면 되겠네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하고 있는 많은 자동화를 점검해 보고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서는 이렇듯 타인의 시각과 경험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도반과 같이 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제 얘기가 너무 길었네요^^ 오늘 물질과 기억강독 수업에서는 저는 두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첫 번째는 분별에 대한 논의입니다. 우리에게 소용되지 않는 것은 통과시키고 필요한 것들은 비결정성의 지대에 머물게 함으로써 지각되게 하는 분별이 있기에 우리는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고 살 수 있는 것이겠죠.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분별은 긍정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대중샘이 분별이 긍정적인지를 물어보셨다고 생각합니다. 정군샘은 분별과 관련하여 이를 불교에서의 분별심을 내려놓아라라는 것과도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에 대해 분별심을 내려놓는다고 할 때의 분별이 앞서 베르그손이 말한 분별과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분별이란 구별입니다. 뭔가를 구별지어 유형화하고 비슷한 유형은 비슷한 방식으로 묶어 처리하거나 통과시킨다는 점에서 구별은 효율적입니다. 구별을 하려면 당연히 기억이 개입되어 있어야 하겠죠. 지각도 현존의 일부만을 편취한 것, 표상은 현존의 감소이니 기억도 당연히 현존과는 거리가 먼 것이겠죠. 그렇다면 당연히 분별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분별은 우리 삶에 필요한 효율성을 제공해 주지만, 필연적으로 실체와 동떨어진, 실체를 왜곡하는 구별을 짓게 하기 때문에 우리를 실체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분별은 필요하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분별이 현존과 매우 다르다는 것만은 확실히 안다면 안드로메다로까지 뻗어나갈 우리의 망상을 조금이라도 실체쪽으로 잡아당기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분별심을 내려놓으라는 것은 분별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너의 분별이 틀릴 수 있음을 알아라, “너의분별에서 자유로워지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권리적이라는 단어의 사용입니다. 이 문제의 단어는 다음 단락에 등장합니다. “따라서 당신이 설명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지각이 생겨나는가 하는 물음이 아니라, 어떻게 그것이 제한되는가 하는 물음이다. 왜냐하면 지각은, 권리적으로는 전체에 대한 이미지이고, 사실적으로는 당신에게 관련된 것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물질과 기억, 75)” 본숙샘은 권리적이라는 것은 법칙적, 원리적, 원칙적이라는 단어와 등치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정군샘은 그렇게만은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씀하셨고, 운섭샘은 자격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해석을 해 주셨습니다. 단어 하나가 이렇게 많은 의견을 불러일으키기도 힘든데, 베선생님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왜 우리의 천재 베선생님은 법칙적, 원리적이라는 명확한 단어를 놔두고 일부러 권리적이라는 단어를 쓴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에게 권리란 선택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원칙, 법칙, 원리라면 예외없이 항상 그래야 하는데, 권리라고 하면 그래도 되지만 안 그래도 상관없는 것이죠. 출마는 나의 권리이지만, 내가 정치할 뜻이 없다면 출마하지 않아도 완전 괜찮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각이란 전체에 대한 이미지이지만 항상, 예외없이 그렇지는 않고, 전체에 대한 이미지일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많으며, 더 나아가 아니어도 관계없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통해 지각하므로, 신체를 통한 지각의 본질적 한계로 인해 전체를 지각하기 보다는 전체 중 우리와 관계된 것만으로 제한하여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단어 하나의 선택도 허투루 하지 않음으로써 논리의 완벽성을 추구하려는 베선생님의 노력은 실로 높이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참 좋았는데, 제 질문 이후 정군샘이 유니콘 얘기를 하셔서 저는 또 다시 미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유니콘은 현존이 아닌데 그럼 어디로부터 감소한 것인지? 아니면 뒷부분에 가면 현존으로부터 감소한 것들을 짬뽕시키는 인간의 정신에 대한 얘기가 나오므로 유니콘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인지? 매 시간마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게 만드는 베선생님, 저에게는 정말 애증의 존재입니다만, 다음 강독시간이 기대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본숙샘과 윤경샘 사진 속 머쓱해하시는 정군샘이 정말 귀여우시네용^^. 후기를 길게 쓰라고 하셔서 정말 길게 썼는데 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찔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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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적님의 댓글

강적 작성일

아~왜 없어도 될 시련이... 다음 주 바톤을 받아 후기를 써야 할 저로서는 정말 야속한 후기군요. 기대치를 떨어트려 부담을 줄이는 악역을 공교롭게도 제가 맡을 수밖에 없게 되었네요! 사심을 내려놓고 보자면 글의 속도감과 경쾌, 명쾌함에 읽으면서 절로 웃음 짓게 하는 후기였습니다. 정말 잘 읽었어요!

이대중님의 댓글

이대중 작성일

아~후기는 이렇게 써야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만...

목인님의 댓글

목인 작성일

'유익하면서 재밌다'!!는 그 어렵고도 어렵다는 경지를 보여주는 글이네요ㅎㅎ
뒤늦게 녹음으로 들었는데 후기까지 더하니 내용이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입니다.
항상 적절하고 적확한 예시로 이해를 시켜주셔서 감사하고 부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네요.
요즘 유독 느끼는 것, 도반은 선물입니다!~~

p.s. SF여성작가를 말씀하시니 한국의 김초엽, 정세랑 작가의 단편집도 권해봅니다.

목도리님의 댓글

목도리 작성일

수미샘 이야기처럼 질, 양을 다 겸비하고 겸손을 떠니 참참참  먹물을 많이 드신티를 팍팍내니  가방끈도 짧고 먹물도 적은 저로써는 어메이징 할뿐입니다^^

구본숙님의 댓글

구본숙 작성일

형은샘의 음성이 지원되면서 쭉쭉 읽혀나가는 넘 시원한? 재밌는 그리고 유익한 후기였습니다.^^ "권리적"이라는 말은 형은샘께서 설명해 주신대로 생각해보니 이해가 쏙쏙 되었어요. 정성 어린 후기 잘 읽었습니다.

박운섭님의 댓글

박운섭 작성일

앞선 댓글들이 이미 이 후기의 진면목을 잘 표현해 주어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질과 양을 겸비, 일필휘지, 엄청난 속도와 정확한 딕션... SF에 대한 정군샘의 열정을 제3자적 시각에서 잘 입증해 주셨네요. 다만.. 권리적이라는 말에 대해, 저는 "우리가 감관을 열면 들어오는 세계를 편의상 모두 이미지라는 단어로 표현한다면, 각 개인이 저마다 매 시점에서 받아들인 이미지 중 어떤 부분을 자유행동과 연계시킨다면 특별히 그 이미지는 지각이라고 부른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모든 이미지가 지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권리적이라는 말과, 그 중 실제로 자유행동과 연관시킨 이미지만은 사실적이라는 말로 구분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법칙적 원칙적 원리적 이라는 말보다 권리적이라는 법적 용어와 같은 말이 훨씬 세분된 섬세함을 담고 있다는 뉘앙스 차이를 표현해 보려 했는데, 사족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ㅎㅎ

구본숙님의 댓글

구본숙 댓글의 댓글 작성일

운섭샘의 설명을 들으니 "권리적"이라는 말이 더 사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면이님의 댓글

면이 작성일

일필휘지는 이럴 때 쓰는 말이군요. 
ㅋㅋ 후기를 읽다 보니, 엄청난 속도와 정확한 딕션으로 에세이를 거침없이 읽어가던 형은샘이 떠오르면서 저도 그 속도로 읽게 되네요 ^^ 
글쓴이를 닮아 톡톡 튀는 매력이 넘치는 형은샘 후기 덕분에 읽으면서 덩달아 업! 되는 기분이 드네요 ㅋ
분별과 권리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김해서 더욱 좋았습니다. 형은샘 짱~~!!

들판님의 댓글

들판 작성일

"출마는 나의 권리이지만, 내가 정치할 뜻이 없다면 출마하지 않아도 완전 괜찮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언제나 적절한 비유로 쉽게 설명해 주는 형은샘, 감사해요. 엄청 빨리, 그러면서도 알기 쉽게 후기를 쓰셔서 지난번 따라하다 가랑이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정군샘 SF소설 얘기 들으니 관심이 가서, 울 애한테도 사줘야겠다 생각했어요. 정군샘의 신선하고 젊은 기운을 받아 도전은 해보고 싶으나 감이당 공부도 따라가기 힘드네요 ㅠㅠ

고소미님의 댓글

고소미 작성일

질과양을 다 겸비하신 형은샘은 욕심쟁이십니다 ㅎㅎㅎ
저도 수업시간 분별에 대해 이야기할때 생각이 많았어요. 마주치는 상황들에서 주관과 객관의 사이의 좁은길을 통과하며 분별을 어떻게 써야할지 중요한것 같아요. 그리고 정군샘 이야기를 들을 수록 낯설었던 SF소설이 끌리더군요 유쾌한 사진도 넘 재밌네요(2학기에도 사진은 꼭 남겼으면 한다는 ㅋㅋ)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