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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몸의 우주성>세미나 후기-1조 이대중(차례를 잘못 본김에 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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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대중 작성일22-05-10 01:14 조회749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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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를 써야 할 차례가 되어 바짝 긴장하며 샘들의 말씀을 들었다. 이번주는 꽤나 재미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그 중에 성과 속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동양과 서양에서 성과 속을 어떻게 대하여 왔는지를 비교하는 주제였다.

주란샘은 크게 질문거리를 던져주셨다.

 

1. 서양에서 그것을 구분하고, 동양에서 구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왜 그런가?

영필샘은 동서양의 차이가 타자에 의한 구원이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차이가 아닐까 하고 설명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 쉽고 간결하게 가려운 곳을 콕콕 긁어주시는 느낌이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서양에서는 성과 속의 구분으로 인해 자연스레 권력이 생기게 되고, 동양에서는 상대적으로 집단적 권력 형성을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우리는 성속의 구분과 권력의 형성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 동의했다.

 

2. 성과 속은 구분되어져야 하는가? 구분해 놓으면 좋은 점이 있나?

미연샘은 성과 속을 나눠놓으면 편리함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편리함이라니 재미나고 담백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듯말듯 아리송송 불교를 자력종교라고 한다면 절대자에 의지할 수 있는 기독교는 타력종교라 볼 수 있다. 절대자를 그리워하고 희구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자연스런 현상이며, 해결 방법이 없는 애매한 문제들을 타개할 방법을 주는 절대자는 어찌되었든 정신건강에는 확실히 좋다. 자영샘은 원죄의식-용서-안도감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설명해주셨고 그것은 제도의 효율성이라는 표현으로 정리되었다.

 

3. 성과 속은 같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차, 동양에서의 제사나 조선시대 종묘사직을 대하는 모습 등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셨는데 소위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은 같이 있을 수 있나? 하는 것이었다. 제사에서 조상신을 모시는 모습은 분명 성스러운 것과 관련되며, 종묘사직을 중시하는 것 또한 조상신과 토지신, 곡식신을 성스럽게 대하는 모습이다. 이렇듯 절대자를 철저히 구분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위계가 있었다는 점도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제사가 생각났다. 어릴 적 제사를 많이 지내고, 동네에서 지내는 제사도 보았다. 고조부, 증조부 등 병풍에 지방을 붙여놓고 향내 맡으며 공손히 절을 하였다. 절을 하며 건강하게 해주세요,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빌면서 하라고 하셨다. 재미난 점은 초중등 학교를 거쳐오면서 제사 때 조상신께 마음속으로 비는 그 강도가 옅어지는 것이 기억난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때도 물론 100%는 아니었다. 50%정도는 조상신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50%는 내 힘으로 해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커 갈수록 30% 20% 줄어들더니 고등학생 이후로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엎드려 절만 하는 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이 합리적이고 당연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조상에게 비는 것이 무슨 효용이 있나? 제사 준비는 엄마와 할머니를 고생시키는 쓸데없는 낭비 같았다.

   동네에 정말 크나큰 나무가 있었다. 밑둥 둘레가 성인 네 명은 되어야 감쌀 수 있는 나무였다. 동네 어른들은 매년 나무에 금줄도 걸고, 포장가림막을 하고 나무 밑에서 돼지를 잡았다. 돼지를 잡을 때면 아이들은 꾸웩꾸웩하는 돼지의 소리를 듣고 그 안 모습이 궁금해 자꾸 다가갔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멀리 쫓아냈다. 나는 모든게 무서워 나중에야 나무 밑에 붉은 핏자국만 겨우 보러 갔었다. 내가 타지로 와서 생활하던 어느날 큰 나무는 윗 가지부터 잘리었고, 나중에는 밑둥도 잘려졌다. 어른들 말로는 죽어서라고 하는데 수백년 살았을 그 나무가 갑자기 정말 죽었을까 아직 의문이 남는다. 아무튼 언제부턴가 돼지를 잡는 모습도 사라졌다.

   성과 속에 대해서 선생님들의 의견들을 들으며 제사와 큰 나무가 생각이 났다. 이제 우리집에는 제사도 합치고 합쳐 횟수도 줄고, 음식도 소박하게 한다. 동네에는 나무도 동네 제사도 없어졌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하며 합리적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에세이 때에 얘기했던 그립고 희구하는 마음이 어렴풋하지만 분명이 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절대자를 믿는 분들의 마음이 이런 비슷한 마음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주란샘 말씀대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요러한 마음들은 어찌하는 것이 좋을까?

댓글목록

면이님의 댓글

면이 작성일

확실히 후기를 쓰게 되면 쫑긋 귀를 세우고 수업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묘한 동병상련 , 인지상정의 감정을 느낍니다^^
꼼꼼하게 수업왜서 오고 간 얘기를 정리해두셔서 깜짝 놀랐어요^^

제사 이야기와 큰 나무 이야기가 인상적이네요
제사 지내는 어린 대중샘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남궁진님의 댓글

남궁진 작성일

ㅎㅎ 그러게요. 재미있는 후기를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네요. 제사와 동네마다 있던 서낭당 수호목에 대한 이야기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던 어쩐지 성스러운 공간,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단순삶님의 댓글

단순삶 작성일

우리에게 또다른 후기글 읽는 복을 준 것으로 좋은 일을 한 것이니 순서에 변동은 없는 걸로..ㅋㅋㅋㅋ

강적님의 댓글

강적 작성일

와~선생님,세미나 정리도 좋지만, 뒤에 붙인 집안 제사와 동네 제사의 경험담을 써주신 부분은 정말 좋네요. 운섭샘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전혀 다른 형식으로 한 세미나를 보니, 후기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착각하고 후기 올려주신 것 정말 고맙습니다!!

이형은님의 댓글

이형은 작성일

대중샘이 차례를 잘 못 안 덕에 하나의 수업으로 두 개의 후기를 읽는 복을 누리게 되었네요^^ 안 그랬으면 이 재미난 제사, 나무, 돼지 얘기를 어떻게 들었겠어요? 딱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전 이런 대중샘이 너~무 좋습니다^^!

이대중님의 댓글

이대중 작성일

죄송해유~ 제 차례가 아닌데 잘못보고 써버렸는데 올리기 직전에 밑에 운섭샘 후기를 보고 이상하다 생각을.. 수영샘 이걸로 어찌 후기 감면 한번 안될까남요?? ㅎㅎ

강적님의 댓글

강적 댓글의 댓글 작성일

ㅎㅎ 이 부분은 따로 심도 있게 얘기 나눠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