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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물질과 기억> 강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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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화 작성일22-06-17 10:43 조회43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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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강의에서는 드디어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베르그손은 <물질과 기억>을 쓴 이유에 대해 서론에서 밝혔는데 그것은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기억’이라는 예증을 통해서 해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르그손은 곧바로 ‘기억’ 이야기로 들어가지 않는다. ‘기억’을 설명하기 위해 천천히 순서를 밟는다. 우선 나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이미지’로 규정하는데서 논의를 시작하면서 행동을 중심으로 하는 신체-이미지, 물질에 대한 지각-이미지, 신체 속에 위치한 정념-이미지, 그리고 이미지들의 보존과 관련된 기억-이미지를 도출해낸다. 선생님은 기억의 이야기에 앞서 기억을 잠재성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의식적으로 호출해서 불러나오는 무언가로 기억을 오해하기 쉽지만 베르그손의 기억은 그런 것이 아니다.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역량 같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기억은 내가 개입된 잠재성이 아니다. 우주 전체가 가지고 있는 잠재성이다. 이론적으로 내가 우연히 이전까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언가와 마주쳤다면, 즉 지각이 되었다는 것은 우주의 잠재성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스스로를 전체 속에 뚝 떨어진 섬처럼 생각하지만 우주 안에서 독립적인 존재는 있을 수 없다. 모든 개체들, 생명체들은 모두 우주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잠재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잠재성은 바로 지속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문득 떠올랐던 생각은 ‘정념’이였다. 베르그손에 의하면 고통(정념)은 유기체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신경세포들에게 남아있는 무익한 과거의 운동적 경향이다. 즉 신경세포들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생존을 위해 독립적으로 노력한다는 의미다. 그의 말이 타당하다면 이제 내 신체 안에 있는 신경세포도 개별적 의식을 가진 외부 대상이 되어버린다. 베르그손의 주장대로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하등하게 취급되던 원시생물의 ‘기억’ 때문에 인간 정신의 기초가 마련되었다니……. 우주는 정말 잠재성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소좌가 세상을 내려다 보며 ‘네트워크는 방대’하다고 충만해하던 느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선생님은 주체가 사라지고 개체 단위의 경계가 사라진다고 해서 좋은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여기에는 주요한 난점이 있는데 만약에 잠재성으로 가득 찬 세상을 꼼꼼하게 계산 가능한 신적인 지성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이 지성은 각각의 개체들이 잠재성을 어떤 방식으로 현실화시킬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즉 이 세계는 필연만 있게 되는 것이고 자유의지가 옅어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개체적인 개성들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할 것인가? 물질세계에 대한 이해도 아니고 분석적이고 계산적인 것도 아닌 직관과 직접 접촉하는 무언가의 도약이 한 번 일어나 주어야 한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순수 기억과 순수 지각이라는 두 작용들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물질과 기억>의 진짜 핵심인 ‘기억’을 정군샘에게 다 배우지 못할 것 같아서 아쉽다. 그래도 이번 강독 수업은 내 인생에 있어서 잠재성이 현실화가 된 커다란 사건이었다. 후기를 통해 미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댓글목록

남궁진님의 댓글

남궁진 작성일

베르그손의 개념과 사유를 따라가려 애썼으나 아직도 긴가민가, 그의 언어가 입에 착 붙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러게요. 물질과 기억의 '기억'을 함께 공부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생깁니다. 공각기동대를 한 번 봐야겠다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박운섭님의 댓글

박운섭 작성일

세상이 어떻게 생겼나를 설명하겠다는 철학자들의 야망이 참 크게 느껴집니다. 후기에 오른 단어 목록만으로도 휘황찬란합니다. 설명을 어떻게 이해하는 지도 저마다 차이가 제법 있겠지요. 막판에는 도약까지 등장하네요. 묵직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