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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3주차 글쓰기 수업후기 – 두개의별 두개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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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경아 작성일15-03-14 18:41 조회3,12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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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 3주차 글쓰기 수업후기 – 목성 김경아


다산과 연암의 라이벌 평전1탄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 ]
다산과 연암의 글쓰기 스타일이 완연히 다르듯이 개인들도 각자의 스타일대로 글을 쓰게 된다.
혼백이 깃들고 본인의 습관, 삶의 행로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므로 글에서 자신을 숨길 수가 없게
된다.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을까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글쓰기를 두
려워하는 것은 잘못 쓰기 때문이라기보다 자신의 속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동양적 글쓰기 & 서양적 글쓰기
동양적 글쓰기는 하늘아래 창피함이 없는 드러내는 글쓰기이지만, 서양식 글쓰기는 숨길 대로 숨
긴 후 들쳐내는 트라우마와 상처를 극대화하는 스타일이다. 컴플렉스 이론, 서양예술의 파토스가
극대화된 현대미술, 현대음악은 인간이 불행해야 아름다움이 표현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경우를
보여주면 이해 불가한 경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영향으로 보통사람들도 자기를 투시할 때 주로
식욕, 성욕과 관련된 상처를 드러내는데 주력하여 자기의 상처를 전도망상적으로 보여주려고, 종
종 있지도 않은 것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글쓰기의 기본기
글쓰기의 기본기를 잘 익혀야 나를 잘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1. 투명하게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가 수행이다.
나를 통찰하면서 세상을 보는 '안밖'을 열어놓는 글쓰기는 자기를 구원하지만, 서양적 글쓰기처럼
'나'를 빼고 파워블로그 식으로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테크닉만 늘 뿐 자기의 상태를 모르고
쓰는 글이 된다.
2. 자기를 위한 글쓰기를 해야 구원이 된다.
있는 그대로 완전히 비워내는 글쓰기 즉 '자기 배려의 글쓰기'를 해야 나를 구원할 수 있다. 그렇
다고 불평불만을 토로해내는 옹알이는 자기 몸만 안 좋아지는 결과가 된다. 다산이나 연암이 아
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를 통찰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글을 썼기 때문에 어려운 조건에서
도 '자기구원'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들이 얻은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물질을 덜어내는 명예를
얻은 것이다.
연암의 '맏누님 박씨 묘지명'도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누이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자신의
슬픔을 위해 쓴 글로 지금도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글쓰기의 스타일
후대에 연암 북학파로 한 프레임으로 묶어놓은 이옥, 박제가, 이덕무 등도 각자 아주 다른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이런 식으로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보기 편한 대로
보려고 묶어버리는 몰개성화로 일종의 '폭력'과도 같은 것이다.
두 개의 별을 쓴 단초가 된 것은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연암과 다산의 대비되는 글쓰기 스타일이
다. 연암은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의 마음이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다 놓친 모습으로 화나고 부끄
러웠을 것이라며 자신이 사기를 읽으면서 느낀 마음의 공명을 표현했지만, 다산은 사기를 학습의
대상으로만 묘사한다.
연암은 법고창신 즉 옛 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글쓰기이다.새로운 것을 만들어내
는 것은 생명들이 필히 해야 할 일로 각자 몸의 리듬과 강밀도에 따라 해야 한다.이 리듬과 강밀
도는 '몸'에서 만들어지므로 내가 나를 잘 통찰하여 자기 몸을 살펴야 한다.
연암의 소품체도 고문을 배우고 익혀 자신의 스타일로 적용해서 나온 것으로, 연암이 사용했던 "
파란 생색"이란 말이 법고창신과 일맥상통한다.자신을 비우면 물결이 일고 파동이 치며 비로소 세
상의 변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새조(鳥) 자를 가지고 지은 글을 보면 지금 여기 이순간에 마음을
오롯이 함으로써 순간순간 포착할 수 글쓰기, 이것이 수행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합치는 연습
을할 수 있는 것은 공부 밖에는 없다.
'일야구도하기'에서 연암의 도(道)라 할 수 있는 명심(冥心)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명심이란 분별망
상의 불빛이 꺼진 "평정"의 상태로 매 순간 새롭게 집중하므로 다양한 글쓰기를 가능하게 한다.
연암과 다산의 '열녀 함양 박씨전'과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에서 연암은 여성의 욕망을 인정하는
'창신'의 글을 썼고 다산은 사목의 입장에서 묘사했을 뿐이다.
또한 두 개의 편지 글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며'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촉발과 계몽이
라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다산이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끊임없는 잔소리로 그 것이 과
연 아들들에게 감응을 주었을지는 ....그 잔소리가 자신을 위한 것이지 아들들을 위한 것으로 느껴
지지 않는다. 인간은 절대로 타인을 위해 살지 않는다. 누가 나를 위해 걱정하고 고생한다 하여
부채감을 갖지 말라,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일 뿐이다.
결국 수행의 핵심은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다. 글쓰기 스타일도 창신
해서 자기의 힘으로 리듬을 바꾸면서 일구어내야 한다. 스타일이 바뀌면서 개념이 요동치는 것이
바로 '파란생색(波瀾生色)' 이다.
다산의 백과사전식 글쓰기는 20세기에 인정을 받았으나 사실 다산 글자체는 한번도 실현되지 못
했고 실현될 수도 없는 이상이었다. 계몽의 파토스(격정)는 일률적으로 계몽해야 하므로 격정,숭고,
비장미의 거대담론으로 사람들을 바꾸려 한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의 일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
므로 감동이 없다. 연암의 미세한 세계묘사, 상황표현처럼 계몽적이지 않은 글에서는 '유머'가 있
고 감동이 있다.
이처럼 글쓰기에서는 세계인식, 미학적 태도, 대상과의 관계성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기본적인
리듬(사주)이 다름으로 차이가 생겨난다. 왜 글을 써야 하는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자
기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자기의 삶의 동선을 살피고 몸을 살펴 나의 능력, 내가 하고 싶은것이
무엇인지 자기에게만 집중하여 이기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두 개의 별 2탄을 출간하셔야 하는 곰샘의 한숨으로 수업 끝~

댓글목록

감이당님의 댓글

감이당 작성일

편집이 안되서 첨부파일로 올리신거 본문에 붙여넣기 했습니다~
그리고 경아샘~~ 독송과 의역학도 후기 올려주셔야죠^^ 기다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