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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수업후기 B조 안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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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화노인 작성일13-03-25 17:13 조회4,22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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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 신근영/ 북드라망
                                                                                  수업후기 정리- B조 안은숙
-조별 숙제 검사 및 씨앗문장 암송
-신근영 작가의 수업 진행으로 줄별 대표자 암송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융의 삶을 중심으로 수업 진행
작가는 라디오 사연 중 우울증을 앓고 있는 청취자의 사연을 듣다가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라디오에 사연을 시청하고... 이런 건 뭐지?
또 다큐 3일이라는 프로그램 중 대학가를 중심으로 도는 버스를 다큐로 찍은 것을 보면 24, 25세 여대생의 고민은 자기가 뭐를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모르는 것이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모르는 것.
이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크다(일명 닥터쇼핑)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있는 것보다 손님을 위해서 맞춰 주는 것 - 이것을 감정 노동이라 하는데 그러면 대부분 병이 크게 난다.
무통환자의 무시무시한 사례들(손톱 뽑기. 교통사고로 다리가 썩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일 등). 자기의 신체적인 감각과 외부적으로 인식되는 감각들이 괴리된다.
외부 세계에 대한 불안감은 자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경계나 폭력을 행하는 사람은 내면적으로 자아에 대한 자존감이 굉장히 낮다.
이런 문제가 해결 되어야 한다는 융의 생각은 자기와의 관계 맺기에 있다고 했다.
융은 어떻게 나와 만나는 자신을 찾았는가?
융은 1900년부터 의사 생활을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독일인이고 스위스에 이민하여 바젤이란 도시에서 살았다(대구 또는 안동의 분위기) 융의 직설적 성격으로 대학 교수와의 충돌이 있어 바젤에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스위스 쮜리히에 있는 국립병원에 지원서를 넣게 되었다. 지원자는 융 1명뿐. 이 국립병원은 의사와 환자들의 공동 치료로 유명했었다. 그러나 환자 개개인을 의사가 관리해야 했으므로 다른 의사들은 가기를 기피했다. 국립병원 정신과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국립병원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던 곳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조발성 치매라는 병에 많이 걸렸다. 조발성 치매는 무식한 자들이 걸리는 병이라 불렀으며 ‘바보병’이라고도 했다. 정신분열증.
프로이트는 주로 신경증 환자들을 보았다.
신경증 환자, 강박 신경증 환자는 세상에 나(자아) 밖에 없다.
외부적으로 자기 안인 것까지 들어오는 것을 굉장히 불안해하는 병이다.
융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4년후 융이 환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신화 속에서 찾게 되었다. 어떻게 바보병을 앓고 있고 글도 모르는 환자가 신화적인 내용들을 알게 되었을까? 여기서 융의 집단무의식이 나오게 된다.
개인무의식- 각각의, 태어난 이후의 무의식
집단무의식- 집합적인 무의식, 태어나기 전의 무의식(본능)
어떤 경험에 있어서 세상과 맺는 관계 기능이 있다. 그런 각각의 관계 기능들을 원형이라 한다.
관계 기능들이 수없이 많지만 사람마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원형들이 다르다.
왜 다르게 보이는가? 그것은 강도의 차이이다.
이 우주의 인구만큼의 원형이 내 안에 들어있다.
융은 집단무의식이 이미 공시적 통시적으로 우리에게 다 있고 나라고하는 것은 단일이 아니라 복수이다.- 나, 너가 아니라 우리인 것이다.
당시 국립병원에서는 병을 분류하고 그 병에 적절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일이었다.
프로이트의 1899년 ⌜꿈의 해석⌟을 보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신경증 문제들을 다루면서 어린이 성(성이론)과 무의식이라는 것이 우리 안에 실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했다.
융은 환자의 정신으로 들어 갈 수 있는 통로로 ⌜꿈의 해석⌟을 택했다.
1906년 프로이트에게 편지를 보냈다- 어떻게 의사로써 살 수 있을까?
융이 편지를 보냈을 때 프로이트는 유대인으로 자기의 이론들이 학계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융은 독일인이며 젊고 인정받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융을 받아 들였다. 융과 프로이트는 서로가 서로의 통로 같은 느낌이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실제 시키면서 두 번 이론이 크게 바뀐다.
첫 번째 이드는 그것, 거시기 내안에 있는 욕망, 충동(drive)
초자아
자아
이드
초자아는 도덕률 부분을 관장하는 마음이며
↓ 자아는 현실 원칙을 지켜야 한다. 현실 원칙은 밑에서 올라오는 욕망과 세상의 적절한 타협점이다.
이 구도 내에서는 계속 불안 할 수밖에 없다.
성욕(리비도)은 어렸을 때 어떻게 가족 안에서 해결하는가?
성욕을 잘 억압하여 무의식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드이며 성욕이 올라오면 병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 엄마, 아들이 있다고 하자.
3,4세 때에 남자아이는 엄마와 나의 구분이 생긴다 - 성기기
엄마라는 타자의 느낌을 알게 된다. 엄마가 항상 내 곁에 있으면 좋다.(에로스적 관계)
그러나 어느날 방해꾼 아버지가 나타난다. 나와 아버지는 엄마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려고 경쟁 관계에 돌입한다. 아들은 고민한다. 이때 아이는 여자 아이를 만난다. 나에게 돌아올 어떤 불이익을 성기의 문제로 생각하게 된다(거세불안증) - 남근기
남근기를 지나 소유권을 포기하고 아버지 밑이 내 위치임을 알고 엄마와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엄마에 대한 에로스적 욕망은 무의식으로 들어가 평생 엄마 닮은 여자를 찾는다. 근원적 욕망을 현실에서 해결 될 수 없는 것을 포기하고 예술로서의 승화를 가져온다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융은 이 구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성 이론이 아니라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어떤 것 이라고 보았다.
두 번째 오이디푸스의 해석은 모성성(모성원형)이다. 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인력이다. 모성원형 즉 모성 콤플랙스에서 들어나는 것은 ‘품는 것’ 품는다라는 느낌의 문제들이 오이디푸스에서 들어난다고 했다.
이것에 반대되는 원형은 부성 원형(척력)이다. 모성 원형이 극도로 발휘 됐을 때 어떤 원형도 그렇게 살길 원하지 않는다. 대극에 어떤 하나가 무너졌을 때 생명은 조정하여 반대되는 원형이 치고 올라온다. 이것을 누미노제라 한다.
의식과 무의식이 대극을 이룬다. 의식과 무의식은 우리 정신을 이루는 두 개의 큰 힘이다. 대극은 자석의 두 극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대극으로서 의식과 무의식은 이처럼 서로를 끌어 들인다.
보상과 보충은 다르다.
‘보충’은 지금 가진 것과 같거나 비슷한 것을 보태서 채워 넣는 것이다.
‘보상’은 지금의 것과 다른 것을 보탬으로써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를 만들어 낸다(정신적 보상성)
반드시 이 대극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역동적인 정신을 만들고 있다.
집단 무의식은 삶 충동이며 생명의 힘으로써의 리비도이다.
생명은 항상 반대되는 극으로 움직인다.
다른 원형들은 새로운 세계에 나아갈 때 나온다.
근원적 욕망을 생명이 한 번도 억압하지 않는다고 융은 생각했다.
이것이 융과 프로이트가 사회학에서 보는 극명한 차이이다.
1912년 ⌜리비도와 변환과 상징⌟ 책을 쓰고 프로이트와 사이가 나빠져 헤어졌다. 7년 동안 모든 삶이 프로이트로 조직 되어져 있었다. 일종의 프로이트가 융의 나침반이며 길이었다. 프로이트와 헤어지고 그 때부터 비로소 자기 고민을 하게 되었다.
융은 자기안의 의식의 흐름을 놓치게 된다.
직접적인 생존에 필요해서 나오는 의식은 규정성, 정향성, 일방성으로 구분된다.
규정성: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미세한 것을 버리고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이름표이다.
정향성: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누구의 기준에 맞추어서 분류표(과거의 분류표)에 집어넣는다.
일방성: 의식은 일반적으로 이 분류표를 깨지 않는다.
다른 원형들을 조절하기 위해 무의식이 올라온다.
융은 이때 자기 안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이것을 기록한 책이 병상북(레드북)이다.
융은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결심한다.
첫째 내가 그토록 마음에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내가 그 마음에 들어갔구나
둘째 자기가 자기를 치료하자
이렇게 자기 안에 문제들을 직면하게 된다.
현재의 여기에서 삶을 바꾸지 못하면 계속 문제는 일어난다.
융은 과거로의 환원이 아니라 오로지 현재의 이 문제에 집중 할 것을 말했다.
정화법을 집중적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융의 검은책은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그대로 베껴 쓴 책이다.
레드북은 내 식으로 소화해서 뱉어 내는 것을 말했다.
융은 글쓰기라는 자극이 자기 내면의 소리를 어떻게 형상화 시킬 것인가의 방식에서 글쓰기를 강조했다.
1차적인 작업은 내 안에 있는 세세한 감정들의 결들을 적는 것. 받아쓰기의 형식이다.
과연 무엇이 사소한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감정이 우리 몸을 움직이게 한다.
합리적 논리적이 이성의 몫이라면 구체적 삶을 산다면 감성의 문제가 들어와야 한다.
삶을 합당하게 살려면 감성과 이성이 같이 있어야 한다. 감성이 없으면 실제 윤리적 생활은 불가능하다.
레드북을 쓸 때는 자기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 나오는 것은 내 안에 체화된 것만 언어화 된다.
에세이라는 작업은 노력 없이 쓰면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를 알게 된다 - 형상화 작업, 자기를 바라보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냥 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논리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지적이해
논리적이란 나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질서를 지우는 것을 말한다.
지적이해는 나만의 지반을 확인하는 작업이자 새로운 나를 구성하는 작업이다.
융이 마지막에 프로이트와 헤어진 후 남김없이 놓고 와서 환자들을 대면했을 때 환자들은 자기의 치료법까지 말을 하더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환자들 스스로가 자기 분석을 하고 그 분석을 다른 사람과 함께 해 보게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치료 할 수 있다.
의사 아닌 의사 융은 자기가 갖고 있는 표상들을 놓아야지 새로운 것이 오는구나!를 느꼈다.
다음시간
-<나는 장자다 /왕멍 /들녘> :1,2부(제물론)까지 읽어오기
- 씨앗문장 쓰고 암송해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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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님의 댓글

생글 작성일

신근영샘의 강의는 콸콸 쏟아져내리는 폭포수 같았습니다. 맑고 시원한 물줄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듯하며 강의를 들었네요. 상쾌함!통쾌함!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가 저절로...하지만 저의 앎이 워낙 짧아 미처 다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제 스스로에게 아쉬웠네요. 융의 삶과 글을 접촉하게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강의를 듣는 다른 샘들의 암송과 질문도 환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샘들의 은혜가 참 큽니다. 실력으로 보답은 못해도 함께 공부하는 모든 샘들에게 감사한 마음은 한량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