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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랑나무 작성일19-08-06 22:11 조회1,341회 댓글0건

본문

대운(39)

(상관)

상관

일간

정관

식신

(편인)

겁재

편관

겁재

편재


    내가 '되어가는' 법

  

  나는 변화와 성장을 열망한다. 정화스님은 열망 또한 자신의 생명을 위한 생존기제이기에 기꺼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라는 것이 맞다고 하셨다. 이런 나의 생존기제는 내 일간인 甲木, 즉 봄의 기운으로 설명이 된다. 그렇다면 내 존재의 축인 甲木으로서의 욕망, 열망을 잘 다스려 잘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불 같은 뜨거움을 부드럽게 조율하기 

  나는 말하는 것을 듣는 것보다는 좋아한다. 또 말을 하면 왠지 설득력이 있다 라며 강의를 하면 좋겠다 라는 주변의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나는 말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서 흥분하기도 잘 하고, 상대방은 이것을 내가 화내는 걸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로 오해가 생기거나 관계가 틀어지면 대게 나는 상대방이 무지하거나 편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각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말이다. 불 같이 화려한 나의 식상기운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금은 차분함과 부드러움으로 단련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木기와 연결된 장부인 肝을 지나치게 써서 그로 인한 과열로 얼굴과 눈이 붉어지는 나의 병증도 같이 다스려 질 수 있을 것 같다. 


돈에 대한 터부를 버리고 돈의 달인 되기

  나는 재물을 터부 시 해왔다. 평소 돈을 돌처럼 한다며 관심 없어 했으며, 쫓지도 않았으며 돈을 만지고는 무조건 손을 닦곤 한다. 그리고 돈을 쫓지 않는 것에 대한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늘 나에게는 재물 보다 명예가 우위하다고 여기며 그런 선택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나는 가정 경제도 책임져야 하는 주부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과 수를 무척 좋아하는 庚金 일간인 아들에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가르쳐야 하는 엄마로서의 과제도 생겼다. 하지만, 나는 늘 불평등한 자본주의 사회 구조와 문제들에 대해서는 늘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을 뿐,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것인지, 그 안에서 나를 어떻게 설정하고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무지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구조 안에서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 생존을 위한 돈에 대한 바른 철학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인데 말이다. 이에 고미숙 선생님은 <돈의 달인> 특강에서 “돈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잘 사용하지 못하고 소유에 집착하는 욕망과 변태적 행위가 나쁜 것”이라 했다. 즉, “소유하되 쌓아두지 않고, 삶을 창조하고 순환하게 하는 것에 쓰며,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관계에 돈이 사용될 수 있도록 탐구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돈을 터부 시 하고, 불평등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살아왔던 나의 돈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자신에 대해 탐구하기

  “리더십을 닦고 싶다면 무엇보다 자기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신의 활동과 업적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동되는지, 요컨대 ‘자기배려’의 윤리에 대해서 말이다.” 라고 고미숙 선생님은 말하신다. 나는 대학 휴학시절 떠난 나홀로 유럽배낭여행에서 받은 충격으로 사회 선생님이라 그 전까지의 꿈을 단숨에 접고 국제적 리더가 싶다는 막연하지만 새로운 열망을 품게 되었고, 우연히 알게 된 국제회의 일을 시작으로 30대 후반에 결혼 전까지 국제업무 관련 여러 일들을 하면서 치열하게 생존했다. 젊어서 고생은 괜찮다고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런 나에게 사회생활에서 제일 힘든 것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일보다는 사람인 것 같다. 일은 배우고 하다보면 점차 쉬워지지만, 사람 즉 관계는 처음보다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게 했다. 대체로 처음엔 능력 있고 카리스마 넘쳐 보이는 상사도 점차 일과 돈만 쫓고 인간적으로 실망하고 배울게 없다고 느꼈다. 또 동료와도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처음보다 사소한 오해나 경쟁으로 벽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고, 내 방식대로 솔직하게 관계를 풀어나가려 했지만 그것이 그리 효과적인 방법은 못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업무 능력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이런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힘을 얻기 위해 공부가 더 하고 싶어졌고, 30대 중반에 유럽계 MBA 대학원에 도전했고, 졸업 후에는 학구적인 곳인 대학에서는 내가 좀 의미를 느끼며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했고, 모 대학의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슬프게도, 역시나 나는 그 전과 크게 다른 나를 느낄 수가 없었고, 나를 힘들게 하는 요인들도 거의 같았다. 결국 환경이 변했고 힘든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비슷한 문제로 괴로워했다. 그렇다면 나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능력도, 학위도, 네트워크도 아닌, 내 자신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나의 일에 대한 비전과 열망,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인간과 관계, 이런저런 내 생각들을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성찰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접하게 된 명리학을 통해 나의 존재를 들여다보니 스스로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 나는 비겁과다이며 겁재를 많이 끼고 있어 경쟁심이 강한 존재성을 띄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른 기운에 비해 강한, 관성 기운을 주로 쓰고 싶어 한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관성 기운은 金기운으로 일은 칼같이 확실하게 처리하고, 책임감 있게 해내지만, 반면에 관계에서는 좋고/싫음과 옳고/그름을 구분하는 성향으로 원만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갈등이 있을 때 마다, 내 스스로 나와 타인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고, 이해하고, 인내해 낼 수 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런 것이 제일 힘들었다. 그런 내 자신이 어느 정도는 내게 적은 인성 기운의 이유로 설명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본능적으로 나를 생하고 하고, 변화성장하게 할 수 있는 학문이나 공부, 그리고 내가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존재나 인연을 그렇게 갈망해 왔던 것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절실했던 인성의 기운이 향후 몇 년간 대운으로 들어왔다는 사실과,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과 같이 리듬을 타야 하는 것이 지혜임을 명리학을 통해 배웠다. ‘물결을 타면 흘러가라 하듯이’ 지금은 이 水기 가득한 인성 바다에서 유영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칼 같은 나의 관성 기운을 칼의 본성인 날카로움은 잃지 않되, 늘 꺼내 쓰지 말고 꼭 필요한 순간에 잘 쓰도록 해야겠다. 


두려움 없이 나의 길을 가기

  정화 스님은 인간이나 사물은 무엇이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감’이라 하셨다. 나에서 벗어나 계속 ‘내가 되어가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 지금까지 이런 나의 노력, 좌절, 그리고 성취의 시간들 모두, 내 스스로 내가 되어가고 싶어 노력한 시간들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스님은 “ 진정 내가 되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타인에게 원하는 마음 없이, 자신의 길을 내며 가라” 하신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 내 몸과 마음이 원하고 있는 이 몸과 우주에 대한 새로운 공부를 ‘두려움 없이’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인연을 즐기며’, 담담하게 간다면 그것이 ‘내가 되어가는 방법’인 것이다. 그래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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