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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늘벗 작성일19-08-07 13:53 조회1,4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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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글쓰기- 

                                                                                                                                 박**/목요대중지성/2019.8.7

     <박**의 사주-> 

대운

정재

본원

겁재

정인

편재

편관

정관

정인

정인

 

제목: 행복이란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인가

  환경을 탓하기만 하다가 환경을 수용하고 적응하느라 애썼던 날들. 이것이 성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복은 다른 것이었다. 행복을 향한 마음은 다시 나에게로 여행을 떠나게 했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게 했다.

-발상의 전환으로 내 자신을 찾다

  월간 겁재가 강한 인성의 힘을 받아서인지 어렸을 때부터 경쟁의식도 컸고 뭐든 일등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아무리 잘한다 해도 항상 1등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더구나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 덕에 엄마 혼자 4남매를 키워야 했던 열악한 환경에서의 학창시절은 나의 경쟁심과 인정욕망을 위한 뒷받침은커녕, 준비물, 도시락을 못 챙기기도 부지기수였고, 회비를 못 내서 교무실에 불려가기로는 아주 단골이었다. 무조건 1등이 되고 싶었던 강한 욕구와 정상적 학업의 환경도 못되었던 이 두 조건의 괴리감은 결국 스스로를 심한 자괴감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는 듯 우울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그토록 힘들고 우울한 이유가 강한 인정의 욕구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됐고 인정욕구가 과연 무엇이길래 한 사람을 이렇게 나락으로 빠트릴 수 있는가에 대해 묻고 생각하기를 반복 반복. 그리고 전혀 다른 생각 하나를 얻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이고 싶고, 그것은 인정을 받는 형태로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런 인정을 잘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의미있는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알아차림들이 정리가 되고나니, 어쩌면 난 준비물을 챙기지는 못해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꾸중을 듣는 일이 있더라도, 그리고 학업성적이 우수하지 못해 그럴듯한 자랑거리가 없어도...

어쩌면..어쩌면 참 의미있는 삶을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보였다. 그때까지 내가 이상적으로 꿈꿔왔던 기준들과는 너무나 상반된 것이었지만, 어짜피 나에게 주어진 현실과 능력으로서는 달리 뾰족한 수도 없었다. ‘그래.. 돈도 백도 재주도 없는 난데, 그렇다면 부자인 친구는 부자로서 인정해주고 백?있는 친구는 백있는 거 인정해주고 재주 좋은 친구는 그 재주를 인정해주자. 그리고 이왕 할 거 잘~ 하자.’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막상 관계속에서 하려고 드니 처음엔 인정은커녕 질투와 시기 열등감이 꼽배기로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경쟁상대였던 친구들을 인정해 주는 것은 가식적인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닌 솔직한 마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단 걸 알게 됐다. 그러니까 내가 갖고싶던 브랜드옷에 브랜드 용품을 가진 친구들에게는 차라리 부러운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기도 했고, 공부를 잘했던 친구에겐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비법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사람들이 저마다의 장점과 약점들이 있다는 걸 선명하게 느끼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장기는 무엇일지도 들여다보게 됐다. 세상의 잣대로는 별 것 아닐지 몰라도 나만의 장기를 살려 내 삶을 꾸려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친구들의 장점을 찾는 것 말고 나의 장점을 찾아보자. 그리고 나 스스로 내 장점을 인정해주자. 그래서 찾게 된 게 난 친구들을 재미있게 하거나 분위기 띄우는 걸 잘 했다. 개그맨 흉내도 잘 냈고, 선생님 흉내도 잘 내서 아이들을 곧잘 웃기곤 했다. 이전엔 사실 웃기는 애들은 천박?하다는 편견이 있었다. 마치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태도여야 있어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세상의 잣대에 미치지 못해 괴로워하는 삶은 살지 않기로 했기에, 아니 그럴 형편도 못됐기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밀기로 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잘 살아가기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이건, 타고난 재주가 부족해서이건 결론은 욕망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그 욕망의 기준도 나의 특성이 잘 반영된 것도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 난 다행이도 유머의 재주가 있었고 오락시간이거나 학교 행사 때 사회를 보면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곧잘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가방엔 여전히 준비물이 없었고, 도시락도 챙겨가지 못했다. 이제 별 수 없다. 얼굴에 철판 깔고 숟가락에 포크만 든 채 교실을 누비며 친구들 신세를 지는 수밖에. 이전에는 자존심 때문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미 난 개그우먼?으로서 친구들에게 얼굴이 다~ 팔린 터다. 그래서인지 저래서인지 도시락을 싸가지 못해 부끄러워하기보다 잘 살아남기 전략을 택했다. “얘들아~ 오늘도 이 언니가 너희들의 공양이 좀 필요하겠다. 일단 가장 영양가 있는 반찬이라고 자부하는 애들부터 손 좀 들어줄래? ^^ ” 물론 준비물이나 부교재를 준비하지 못했을 때도 친구들에게 신세를 졌다. 어찌보면 뻔뻔스럽다거나 성가시게 생각할 수도 있는 내 모습을 그래도 반감 없이 잘 받아주었던 친구들이 고마웠다. 생각해보면 평소에 재미있게 웃고 깔깔대는 촉매의 역할을 그럭저럭 잘 했던 덕분일 것이다. 조별 활동이나 반 대항 활동에서도 친구들은 내가 같은 팀이길 바랬고 또 학급을 대표하는 활동도 (뭐 성적에 반영되는 것은 전혀 아니었으나) 오락으로 승부를 보는 거라면 심신?을 바쳐 앞장섰던 덕에 친구들 모두가 신나게 놀았다.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등록금 미납으로 선생님께 불려갔다. 이전에는 고개 푹 숙이고 선생님의 채근을 일방적으로 듣고 돌아 나오며 눈물을 삼키곤 했는데, 그날은 선생님이 ‘** 너는 꿈이 뭐냐?’고 물으셨다.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별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그동안 내가 활동하는 걸 보니 연극영화과가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생각지 못한 선생님과의 긴긴 대화가 이어졌다. 매번 등록금을 미납하던 내 가정형편에 대해서도 채근이 아니라 애정담긴 관심으로 물어보셨고 그 결과 교감선생님께 등록금면제혜택을 볼 수 있게 건의를 하겠다고도 하셨다. 그러면서 가정이 어려운데도 그렇게 밝은 모습으로 생활하는 게 너무 대견하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는데, 그 때 함께 마주보며 눈물 흘렸던 담임선생님은 나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셔서 축하를 해주시는 긴 사제의 인연으로 남게 됐다. 그 후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은 시사월간지 기자였는데, 문제는 내가 컴퓨터 잼병인데다 단기 기자수업과 같은 인턴을 거치지 않고 시작된 것이라 기사를 작성해서 올릴 때마다 데스크에서 걸려 혼 줄이 나곤 했다. 정말 눈물이 쏙 빠지게 호통을 치셨는데 특히 다른 기자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게 무엇보다 싫었다. 그러다 어느날 사장님이 호출을 하셨다. 이번엔 또 얼마나 큰 걸 잘못했길래 사장님께서 직접 호출을 하시는 걸까. 그런데 사장님이 환하게 웃으시면서 ‘**씨 어떻게 했길래 우리 집사람이 그렇게 잘 봤지?’라고 하신다. 이유는 몇일 전 사모님이 방문을 하셨는데 내가 환하게 인사하고 맞이하면서 사장님 미팅중이신데 잠깐만 기다리시라며 잘 안내를 했다고 한다. 사실 난 그 때 사모님인지도 몰랐다. 그냥 우리회사 방문자 중에 한사람이려니 했고, 누가 됐든 우리회사를 방문한 사람이니 밝게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거였다. 그런데 사모님 왈, 요즘 누가 커피심부름도 싫어하는데 저렇게 먼저 인사하고 차도 타주고 친절하게 하는 사람이 어딨냐며. 여태껏 회사에 와도 박**씨 같은 사람이 한번도 없었다고 했단다. 그러니 우리회사의 얼굴이라고 사장님께 어떤 행사엘 가더라도 다른 기자 대신 꼭 박**를 데리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난 그 후 큰 행사에 선배들을 젖히고 취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사장님 덕을 톡톡히 봤다. 1등으로 인정받고 싶거나 간지 나는 모습이 아닌 주어진 상황에서 나의 장점을 활용해 최소한 나답게 살 수 있는 힘을 키운 건 지금까지 내 삶의 큰 재산이다. 여기서 얻은 건 나의 가치를 절대 비교를 통해 규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교는 정말 끝도 없는 열등감을 줄 뿐이었으니까. 때로는 개그로 때로는 인사성을 발휘해서 그리고 때로는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하며 살아왔다. 다행스러운 게 있다면 어린시절 생각했던 남부러울 능력이나 재력이 아니어도 그럭저럭 살만하다는 것이다.

 

-살기위한 관계가 아닌 행복하기 위한 관계를 만나고 싶다.

  어느덧 불혹의 나이가 훌쩍 넘고 보니, 나의 삶이란 것도 먹고사는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다 작년 초부터 일이 늘어 정신없이 몰두하다보니 결국 병이 생겼다. 모든 걸 놓고 쉬어야만 했다. 원래부터 허약체질인데 욕심을 과하게 냈던 탓이다. 그런데 막상 쉬면서 느낀 건 의외로 외롭다는 것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외로움의 화두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늘 사람들 속에서 북적대는 삶을 살았고 어딜 가도 인기가 있었으니 외로움은 남의 나라 얘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기 있는 삶이 동시에 정서적으로도 풍만한 안정감을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걸 함께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대부분이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이고, 크고 작은 동호회도 있으나 피상적인 구호들과 형식적인 웃음이 화려하게 몇 회 오고 갔던 것들은 나의 공허감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안좋은 사람들도 아니었는데... 이때 떠오른 단어는 감이당이었다. 벙커원에서 처음 고미숙선생님 강의를 듣고 배운 게 많았는데, 인문 의역학을 두루 공부할 수 있는 감이당이라는 공간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저 친목을 위한 모임도 아니고, 시내 세미나룸을 빌려서 1회사용료를 지불하는 식의 휘발성 공간도 아니다. 혼자서는 도전하기 힘든 동서양 고전들을 분야별로 두루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열려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매력적인 점은 이 곳 감이당은 점심 저녁식사를 학인들이 함께 만들어서 함께 먹는다는 것이다. 매일 한 공간에서! 항상 공부할 수 있는 커리큘럼이 준비 돼 있고, 매끼 식사까지 함께 모여 나눌 수 있는 공간. 이런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기회들이 주어질 것 같았고, 동시에 자연스럽게 타인의 생각과 정서를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표피적이고 상투적인 것이 아닌, 공부를 통해 부대끼고 성찰하면서 우러나오는 내면의 생각과 느낌들 말이다. 그동안 살면서 숱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었음에도 이제와 느끼는 이 외로움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어느덧 서서히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안의 진짜 나를 드러내고 싶었고 또 진짜를 드러낸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생각들은 기꺼이 병원에 누워있던 나를 일으켜 과감하게 1년짜리 프로그램인 대중지성에 참여할 용기를 주었다.

 

수용력을 잘못 쓰면 난 이런 것도 알아하는 우월감에 빠지기도 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망상의 바다에 머물기도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인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관성) 안에서 자기 한계를 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받아들인 지식을 지혜로 쓸 수 있다. 관계를 통해 통찰하는 힘, 이것이 인성이다. <박장금, 다르게살고싶다, 슬로비, 2018, P151> ”

 

  연월의 인성이 강하게 자리잡은 난 어쩌면 그래서 상대든 나의 아픔이든 인정을 잘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관계(관성)를 통한 통찰이어야 지혜로 승화된다는 문구가 가슴을 쳤다. 수용력이 좋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나의 아집을 굳히고 키워가는 담장이 되지 않게 하려면, 내 생각과 가치관을 세상에 열어 보이고 또 소통함으로서 흐르는 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이렇듯 세상과의 소통은 결국 사람과의 소통일 것이고 지금 감이당은 나에게 그런 통찰을 주는 관성(관계)으로서의 인연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배움을 통해 맺어가는 이 공동체에서, 공동체란 것이 단지 여러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창조하고 생산하는 힘의 모임이란 것을 배우고 체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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