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e.basic
Tg스쿨
양력 2019/8/19 월요일
음력 2019/7/19
사진방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2019.8.8 / 목성 3학기 / 3교시 한서 후업후기 명장(名將) 조충국
 글쓴이 : 김미옥 | 작성일 : 19-08-13 18:35
조회 : 24  
   2019년 8월 8일 한서 후기.hwp (94.0K) [1] DATE : 2019-08-13 18:35:21
2019년 8월 8일 / 목성 3학기 / 3교시 한서 6권 처음부터 270쪽 후기 / 김미옥 명장(名將) 조충국 : 무제, 소제, 선제 때 이민족(四夷)을 토벌하여 국방을 안정시켰다. 조충국의 자는 옹손이고 롱서군 상규현 사람이다. 뒤에 금성군 령거현으로 이사 하였다. 롱서군은 흉노 지역과 가까운 6군 중의 한 곳이다. 조충국은 처음에 기사였고 6군의 양가자(良家子; 귀양 갈 사유가 7가지가 없는 조건의 사람)로 기사(騎射)에 능해 우림군으로 뽑혔다. 사람이 침착하고 용기가 있고 지략이 뛰어났으며 병법을 익혔으며 사이(四夷)의 사정에 밝았다. 무제 때, 조충국은 부사마로 이사장군 이광리를 따라 흉노 정벌을 하였다. 적에게 완전히 포위되었을 때 장사 일 백여 명과 함께 포위를 뚫고 적진을 돌파했다. 조충국은 몸에 20여 군데 상처를 입었는데 이광리는 조충국을 불러 무제가 있는 행재소에 갔다. 무제는 조충국의 용기에 감탄하며 중랑을 제수하였고 거기장군의 장사로 승진하였다. 소제 때, 무도군의 저인(종족명)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조충국은 출정하여 저인들을 토벌하고 중랑장이 되었다. 군사를 거느리고 상곡군에 주둔했다가 돌아와 수형도위가 되었다. 흉노를 토벌하면서 서기왕(부족장 칭호)을 생포하여 후장군으로 발탁되었고 수형도위는 그대로 겸임하였다. 대장군 곽광과 함께 선제를 옹립하여 영평후가 되었다. 선제 때, 선제는 ‘선련에서 강족의 여러 족장 이백여 명이 모여 함께 원한을 풀고 인질을 교환하자는 맹세를 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에 대하여 조충국에게 물었다. 조충국이 답하기를, 강인을 제어하기가 쉬운 것은 종족별로 우두머리가 있어 그들끼리 자주 공격하여 세력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 30여 년간 서쪽 강족은 배반할 때마다 먼저 원한을 풀자고 약속하며 한과 대치하지만 5, 6년이 지나면 저절로 평정됩니다. 나라들이 흉노와 합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혹시 흉노에서 강족에게 사신을 다시 보낸다 하더라도 사음지를 따라 감택을 통과하여 장갱을 지나 궁수새를 거쳐 남쪽의 나라를 지나가야 하기에 선련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아마 강족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세력과의 연결도 모색할 것입니다. 이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 한 달 뒤쯤 강족의 낭하는 사신을 보내 흉노에서 군사를 빌려 부선국과 돈황군을 공격하여 한의 연결로를 끊으려 했다. 이때 조충국은 사자를 보내 변경의 병력을 미리 대비토록 하고 여러 강족에게 동맹을 맺지 않도록 권하면서 그 모의를 알아내야 한다고 했다. 의거안국을 파견하여 여러 강족을 시찰하며 선한 종족과 해로운 종족을 구별해야 한다고 건의 하였고, 의거안국이 강족에 가서 선련의 여러 우두머리 30여 명을 소집하여 그중 교활한 자를 골라 모두 참수하였다. 이때 조충국의 나이는 70세였는데 선제는 너무 늙었다 생각하여 어사대부 병길을 보내어 장수를 누구를 쓰면 좋을지 묻자 조충국은 “저보다 나은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충국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변방에서 四夷들을 지키며 선제에게 둔전주를 상서한다. 둔전주의 내용은 첫째, 보병의 9개 단위부대에 군리와 사졸이 1만 명으로 둔전을 해서 무장을 갖추고 농사를 지어 곡식을 생산하기에 위엄과 덕치를 병행할 수 있습니다. 둘째, 강족을 비옥한 땅으로 못 들어오게 하여 가난하게 하면 강족들이 서로를 배반하게 만듭니다. 셋째, 현지 주민과 둔전 병이 같이 일하여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이익이 있습니다. 넷째, 둔전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기병을 없애면 큰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섯째, 봄이 되면 갑사와 병졸을 시찰하며 하황에서 임강에 이르도록 곡식을 조운하여 강족에게 무위를 선양하여 대대로 적을 격파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한가한 철에는 산의 나무를 베어다가 역참을 정비하여 금성군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공격하게 되면 모험과 요행수를 기대해야지만, 군사를 출동시키지 않으면 배반한 적들은 추운 산간에 숨어 살며 추위와 질병과 동상의 재해를 입지만 둔전을 설치하면 안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 먼 곳까지 와서 죽거나 다칠 염려가 없습니다. 아홉 번째, 안으로 무력의 위엄을 잃지 않으면서 밖으로는 적이 빈틈을 노릴 수 없게 합니다. 열 번째, 황하 남안의 대견과 소견을 놀라게 하지 않아 그들이 일으키는 변란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열한 번째, 황협까지 통하는 도로의 교량을 수리하여 선수에 이를 수 있게 서역을 제압하며 천 리에 걸쳐 신의와 무위를 보여 편안하게 군사를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열두 번째, 대군을 유지하는 큰 비용과 요역을 줄이면서도 불의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선제는 조충국의 상서를 보고 조정의 신하들과 논의 하였고 상서한 내용에 대하여 후장군 조충국의 계획을 승인하였다. 그리고 조충국이 둔전하는 주변에 적의 침입을 걱정하며 둔전과 함께 피강 장군과 강노 장군에게 적을 공격하게 하였다. 강노 장군은 출전하여 4천여 명을 항복하게 하였고 피강 장군은 2천여 명을 죽였다. 중랑장 조양이 참수하거나 투항케 한 자가 역시 2천여 명이었고, 조충국에게 투항해온 자들은 5천 명이었다. 조서로 군대를 철수 시켰고 조충국은 그대로 남아 둔전하게 하였다. 조충국은 나이 86세에 죽었고 시호는 장후(張侯)이었다. 조충국의 공적을 기려 미앙궁 기린각에 초상이 있다고 한다. 중국은 땅이 큰 나라이다. 변방은 지형이나 기후도 척박하다고 한다. 이민족도 통일된 종족이 아니어서 여러 종족으로 그들끼리 협력하기도 하고 반목하기도 하면서 한나라에 대항하였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백성들이 피폐해질 것을 걱정하여 조충국은 농사지으며 적과 싸울 수 있는 둔전 설치를 제안하여 국방을 안정시켰다. 그의 일생을 다 바쳐 나라와 백성을 위해 성심을 다한 그의 삶이 정말 아름답게 생각된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맨앞이전다음맨뒤
다음글
목록 수정 삭제 글쓰기
감이당| 주소  서울시 중구 필동 3가 79-66 깨봉빌딩 2층   전화  070-4334-1790

copyright(c) 2012 gamidang.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