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 4학기 1주차 한서 수업후기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목성.png

목성 4학기 1주차 한서 수업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미옥 작성일19-10-20 17:51 조회2,023회 댓글1건

첨부파일

본문

2019년 10월 17일 / 목성 4학기 한서 /3교시 한서 8권 처음~p288쪽 / 김미옥

제목 : 청렴결백한 사람은 정치인이 되기 어렵다.

  정치를 할 때 저는 공정하고, 강직하고, 청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관계에 얽히거나 이해에서 이익을 본다면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정치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역사 속 정치 세계나 현대의 정치나 정치를 하게 되면 상황에 편승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정당화시키기도 하고, 이해관계에 편승하게도 되는 것이 정치적인 현실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요즘 한창 화제가 되는 조국 장관의 사퇴와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집회에 대한 정치적 이야기로 시작되었는데, 진심으로 고결한 사람이나 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정치를 못 한다는 길샘의 강의가 마음에 많이 와닿습니다.

 고결한 지식인 백이와 숙제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 고죽국의 왕자로 아버지가 죽은 뒤 서로 후계자 되기를 사양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토멸하여 주 왕조를 세우자, 두 사람은 무왕의 행위가 인의에 위배 되는 것이라 하여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거부하고 서우양산(수양산)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고사리를 먹고 살다가 굶어 죽어 그 행위가 고결한 지식인의 표상으로 이야기되고는 있으나 너무 청렴하여 정치는 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악한 일을 싫어한 포숙아
춘추 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젊어서 관중과 친하게 사귀었는데 집이 가난했던 관중을 도와주면서 막역지교가 되었습니다. 포숙아는 제 양공 때 둘째 왕자 소백의 사부가 되었고 제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공자 소백을 따라 거나라로 달아났습니다. 관중은 첫째 왕자 공자 규를 따라 노나라로 달아났는데, 양공이 피살되자 규와 소백이 군주의 자리를 다투었습니다. 관중이 소백의 귀로를 습격하여 소백의 허리띠를 맞추었습니다. 소백이 죽은 척하고 먼저 귀국하여 왕 위에 오르니 그가 제 나라의 환공 입니다. 환공은 포숙아를 재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사양했고 투옥되었던 관중을 천거하여 관중이 재상이 되었습니다. 제나라의 환공은 관중의 도움으로 패주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관중은 포숙아를 관직에 천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포숙아가 악을 싫어하고 강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직언으로 봉서를 올린 왕가
왕가는 성제와 애제 때 직언으로 상소문을 올린 사람입니다. 왕가는 성왕의 공덕은 인재를 등용하는 것에 있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위상이 업무 착오로 잡혔었지만 풍당의 말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위상의 죄를 사면하고 운중 태수에 임명하였습니다. 그리하자 위상의 명성을 알고 있는 흉노가 위상을 두려워하여 감히 한나라를 침략하지 못하였습니다. 경제는 죄수로 있던 한안국을 발탁하여 양의 내사로 삼자 양 왕이 허물을 짓지 않고 나라를 평안히 다스렸습니다. 선제는 장창이 경조윤이 되어 업무상 과오를 짓고 면직되게 되자 사자의 판결을 수락하지 않고 미루었다가 사면한 뒤 수십일 후에 다시 기주 지사에 입명하여 장창의 능력을 활용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문제, 경제, 선제가 위상과 한안국, 장창을 편애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재능과 기량이 국가에 유익했기 때문에 관료로 선택되었다는 왕가의 상서 내용입니다.

 시중이던 동현을 총애한 애제
애제는 부마도위인 동현에게 상림원에 관청 건물을 지어주고, 동현을 위해 지어준 저택은 대문을 열면 북궐로 이어지게 하였습니다. 동현의 모친이 병이 나자 장안주 관리를 보내 길가 던 사람들도 모두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음식을 하사해주었다고 합니다. 좋은 물건이 생기면 동현에게 보냈는데 종묘나 삼궁에서 쓰는 물건도 이에 이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서를 내려 동산을 없애고 그것을 동현에게 주어 균전제도를 무너뜨렸다고 합니다. 애제의 넘치는 동현에 대한 사랑은 정치의 도리와 질서를 어지럽혔고 정치를 바로 잡고자 했던 왕가의 상서는 애제를 현명한 군주로 이끌지 못했습니다. 왕가는 동현이 제후가 되지 못하도록 상서하였기에 역모로 몰린 양상을 왕가가 사면하도록 추천하자 애제는 이를 꼬투리 삼아 왕가에게 사약을 내립니다. 왕가는 사약을 거부했고 20여 일 동안 음식을 거부하여 피를 토하고 죽었습니다. 강직한 관료였던 왕가였지만 그때가 애제의 시대로 군주가 정도(正道)를 잃었으니 관료로서 정치적 이상을 펼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역사 속이든 현시대이든 정치는 선과 악 이 두 가지의 영역으로 정확히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따라 펼쳐지는 상황은 다양한데 저의 의식은 정치가 깨끗해야 하고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도 깨끗할 것이라는 생각에 머무릅니다. 강의 중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청렴한 사람이 정치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저는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댓글목록

이상훈님의 댓글

이상훈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