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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4학기 2주차 3교시(한서)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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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란이 작성일19-10-26 23:27 조회1,8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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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순리循吏와 혹리酷吏, 생생지도生生之道의 길

 요즘 정국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검찰 개혁 문제로 시끄러운지도 한참.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수많은 채널의 뉴스들, 신문, 인터넷, 유튜브까지 각양각색의 정보가 무섭게 쏟아지고 사람들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졌다. 이 험한 꼴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는 점점 길을 잃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이 답답함의 한가운데에서, 이번 시간 한서의 주요 부분이었던 순리전循吏傳과 혹리전酷吏傳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 존속한 이래 수많은 관리가 있었지만, 반고는 그중에서도 뚜렷하여 특별히 드러난 관리들을 순리와 혹리로 나누어 입전하였다. 미천한 생활을 하다가 황제에 오른 선제는 백성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했던 바 서민이 편히 농사지으며 슬퍼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것은 정사와 송사가 공정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이를 이룰 자는 아마 선량한 2천석일 것이다.” 라며 태수를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으로 생각했다. (반고, 진기환 역, 한서 8, 명문당, P.293.) 이런 선제의 기대에 부응한 선량한 관리들로 순리전에 수록된 사람들로는 문옹, 황패, 주읍, 소신신 등이 있다.

 

 순리전에 등장한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부지런하고 청렴 공정하고 가혹하지 않았다. 백성을 교화하는 데 자신을 아끼지 않았으며,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였고, 우량한 관리를 선발하고 교육하는 데 앞장섰다. 반고는 이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였다. “순리들의 임지 백성은 부유했고 그들이 전근하면 백성이 그리워했으며 살아서는 칭송을 받았고 죽어서는 제사를 받았으니, 이는 덕을 베풀고 겸양한 군자의 유풍에 거의 가까이 다가간 것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책, P.294.)

 

 혹리전에 등장한 인물들로는 질도, 영성, 조우, 의종, 왕온서, 함선, 엄연년, 윤상 등이 있는데, 이들은 법 적용이 매우 엄격하였으며, 그 밑의 관리들이나 백성 모두 이들을 두려워했다. 또한 남을 꺾어 누르고 올라서는 것을 좋아했고, 법을 잣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이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을 어기는 자들을 때려잡았으므로 그들이 가는 곳에는 도적도 사라지고, 백성은 공포로 교화되었다. 이들 대부분이 그 엄격함과 가혹함 때문에 형을 받아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을 하였고, 죽어서도 백성들의 한 맺힌 원망을 들었다.

 

 이렇게 보면 순리와 혹리는 단순하게 구분되는 것도 같다. 하지만 한서를 촘촘히 들여다보면 순리들의 모든 것이 선하고 완벽하지만은 않으며, 혹리들 역시 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순리전에 등장한 인물 황패는 태수일 때는 사소하고 번거로운 일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정성껏 공들여 추진하였고, 작은 일에도 철저히 사찰하였다. 그는 일처리가 매사 정확하였기에 모두 그를 신명하다고 칭송하였다. 하지만 황패가 승상이 되자 상황이 달라진다. 그는 승상이 되어서도 너무 세세한 일을 보고하는데 매달려 비웃음을 당하기도 하고, 이미 충분한 법조목을 더 세분화하려다 건의를 받기도 한다. 그는 태수에 맞는 그릇이었지 승상을 할 만한 인물은 못 되었지만 한이 건국된 이후로 백성을 잘 다스린 관리로는 제일로 뽑혔다고 한다. 반면 혹리전의 인물들은 비록 혹리라 불리지만 대부분 용기 있고 공정 청렴하였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법을 집행하면서 귀인이나 황실의 인척이라 하여 봐주지 않았고, 관리가 법으로 서로를 감시하는 견지법이 시작되었다. 도적이 있으면 신속하게 소탕하였으며 업무 성과가 뛰어나 칭송을 들었다.

 

 그렇다면 혹리와 순리를 나누는 진정한 기준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길샘은 공자의 인에 대해 말씀하셨다. “공자의 인은 하늘의 최고의 기운이다. 따라서 인을 사람을 살리는 기운으로 쓰게 되면 그것이 순리盾吏, 죽이는 기운으로 쓰게 되면 그것이 혹리酷吏가 될 것이다. 법은 통치의 도구일 뿐 법치法治는 인치人治로 향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문제는 결국 한나라 시대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순리전과 혹리전을 읽으며 우리시대 관리에게 우리가 진정으로 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의 끝이 서로를 살리는 생생지도生生之道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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