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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4학기 3주차 3교시(한서)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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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란이 작성일19-11-04 18:58 조회1,8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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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흉노, 흉노, 흉노

한서 읽기의 끝자락에서 만난 흉노전. 사실 흉노는 우리가 한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만났으면서도 가장 낯설고 이질적인 이름일지 모른다. 흉노는 전국 시대 秦에 맞서 다섯 나라가 합종연횡책을 펼치던 기원전 318년 최초로 등장한 이래 꾸준히 세력을 키워 고조(유방)가 한을 세웠을 때는 이미 막강한 묵독 선우의 치세하에 있었다. 이번 시간에 우리는 영원한 한나라의 맞수이자 한과 함께 한 시대를 호령했던 흉노와 만났다.

 

흉노,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흉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먼저 사마천의 사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사마천은 흉노를 열전에 따로 분류하여 기술하였다. 반고 역시 한서에 사마천의 흉노 열전의 대부분을 차용했으며, 무제 이후 부터 왕망에 이르는 부분을 덧붙여 흉노전을 완성했다. 사마천은 흉노의 조상에 대한 이야기부터 흉노의 특징에 대해 매우 객관적이며 세밀하게 기술했는데, 특히 정착민이었던 한족들과는다름을 매우 객관적이면서 세밀하게 묘사했다.

 

 그들은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녀서 성곽이나 일정한 주거지가 없고 밭 가는 일도 하지 않았으나, 각자 땅만은 나누어 가졌다. 문자나 책이 없으며 말로 약속을 했다. 어린아이도 양을 타고 활시위를 당겨 새나 쥐를 쏠 줄 알고, 좀 더 자라면 여우나 토끼를 쏘아 식량으로 삼았다… (중략) 그들의 풍속은 한가할 때는 가축을 따라다니며 새나 짐승을 사냥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위급할 때는 모두가 싸움에 참여하여 침략하고 공격하는데 이것이 그들의 천성이다. … (싸움이) 유리하면 앞으로 나아가고 불리하면 뒤로 물러서며 달아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 않았다. …"

(사마천, 김원중 역, 사기열전2, 민음사, 329.)

 

 흉노는 강력한 유목민으로 한나라가 존속한 이래 언제나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럼에도 사마천이흉노의 거친 결과 행동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데에, 길진숙 선생은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숙적 흉노와 한의 길고 긴 대결

 

 한나라의 외교 정책은 대부분 흉노에 위한, 흉노에 의한 정치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고조에서 경제에 이르기까지, 흉노에서는 묵돌, 노상, 군신 선우에 이르는 강력한 군사력과 카리스마라면 빠지지 않는 선우들이 등극했다. 한나라 역시 반격을 꿈꾸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매번 흉노에게 조공을 바치며 굴욕적인 화친 정책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 때의 화친이란, 흉노의 크고 작은 침입에 시달리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무제가 즉위하며 상황은 역전된다. 무제 즉위 무렵 튼실한 국고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대를 길러 흉노를 치기로 결심한다. 이 후 40여년간 흉노에서 일곱명의 선우들이 즉위하는 동안 길고 긴 흉노와의 전쟁을 벌인다. 위청, 곽거병, 이광리, 공손오 등 많은 장수들이 활약하며 한나라의 국토를 동서남북으로 늘려주었고, 흉노의 세력도 많이 약화되었지만 흉노는 굴복하지 않았다. 여전히 전과 같은 화친을 요구하였으며 길고 긴 전쟁 끝에 남은 것은 텅 빈 국고와 빈곤한 백성들이었다.

 

 소제부터 원제에 이르는 시기는 흉노에 있어서도 정치적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는 시기였다. 흉노는 이 시기 자연적인 재해에 시달려 피폐하여 고통을 겪었으며, 질지고도 선우와 호한야 선우가 서 흉노와 동 흉노로 나누어 권력 다툼을 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하였다. 한에서는 이때를 기회로 흉노와의 외교에서 주도권을 손에 넣는다. 흉노 선우가 입조하고, 살아남기 위해 한의 신하되기를 자청하여 한에서는 모두 기뻐하지만, 남는 것은 국고가 휘청거릴 정도의 하사품과 허울 뿐인 명예이고, 왕망에 이르러서는 잘못된 정책으로 말미암아 이마저도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흉노에 대한 오해, 그리고 이해

 

 비단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유목민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흔히 오랑캐라고 일컬어지는 그들은 정주민보다 열등하고 미개하다는 인식. 그러나 사마천의 흉노열전, 반고의 흉노전을 읽으며 다시금 나와 다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반고는 한서에서 줄곧 흉노에 대한 화친론, 정복론 양쪽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가 흉노에 대해 기술한 일부분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들은 외부이기에 안으로 불러들일 수 없으며, 멀리에 두고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며, 중국의 정치와 교화를 그들에게 베풀 수도 없고 중국의 역법을 그들에게 적용할 수 없기에 내부하면 조심하며 길들이고 떠난다면 대비하며 지켜야 한다.” (반고, 진기환 역, 한서 9, 명문당, 2017,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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