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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 4학기 5주차 베르그손 전반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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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진 작성일21-11-20 17:04 조회6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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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샘 강의 전반부 정리입니다.)

 

우리의 공부는 인간이 뭐지?’라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몸과 마음은 어디서 온 거지?’가 철학의 문제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내 신체와 정신을 내가 장악할 수 없기 때문에 질문이 생겨난다. 내가 라고 생각하는 게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이 아니다. 내가 의 주인이 아니다. 물질과 정신은 다른 차원이지만 어느 하나가 없이는 다른 하나도 성립할 수 없다.

 

낱낱의 것들을 개체라고 한다. 그 낱낱의 것들은 어디서 올까? 스피노자에게 모든 개체는 이미 복합체다. 하나로 이루어진 개체는 없다.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물질과 물질이 결합할 때 물질들도 마구잡이로 결합하지 않는다. 에너지들이 결합할 때, 정보가 들어가 있다. 물질에 이미 정보가 내재돼 있다. 그 정보에 따라 일정한 방식으로 결합한다. 에너지 안에 정보적인 차원을 간직하고 있다.

 

내 몸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물질들이 있다. 그 물질에게는 는 의식이 없다. 정보와 에너지의 결합이 일 뿐이다. 어떤 몸의 일부분을 가지고 그것을 라고 지시할 수 없다. 더 기본적인 요소로 설명해도 마찬가지다. 요소들이 결합한 결과일 뿐이지, 요소들 어느 것도 는 아니다. 그 요소들이 끊임없이 결합하고 해체되는 과정만 있다. 몸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꿈에 등장하는 일까? 현실과 꿈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현실도 꿈이라는 게 불교의 논리다. 현실이라는 것도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 불과하다. 모든 꿈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꿈이라는 걸 알 수 없듯 현실에서도 깨어나야 한다. 진짜라고 믿는 이 세계가 가짜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보라는 것이다.

 

베르그손은 물질을 에너지로 본다. 베르그손을 정신주의자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면, 베르그손은 정신적 삶이 실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를 는 응축하고 있다. 모든 개체는 그가 태어난 이후로 응축한 모든 역사와, 그가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을 다 응축하고 있다. 출생 이전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진화 속에서 가져온 생명의 역사, 동물성이 인간에게 함축돼 있다.

 

인간이 뭔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도 인간의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각인된 마음이다. 인간의 욕망, 의지, 행위는 과거의 시간 전체와 더불어서 있다. 우주의 지속 속에 우리는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의 몸, ‘의 정신으로 독특한 개체화가 이루어질까? 이것이 개체화의 원리다.

 

인간의 정신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걸 계속 출현시키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본 게 유식이다. 말나식과 전6식은 자아에 의해 오염돼 있다. 자아에 의해 주관과 객관이 동시에 출현한다. 하지만 실제로 주관과 객관이 있는 게 아니다. 없는데 있는 것처럼 만들어지는 것뿐이다. 꿈이고 가짜다. 그걸 만드는 게 아뢰야식이다. 우리가 인식할 때 종자가 만들어지고, 그 종자들의 운동이 의식을 만들어낸다. 오염된 채로 종자가 만들어지고 오염된 채로 다시 현행한다. 이런 오염을 반복하는 게 윤회다. 이걸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근원적인 식, 이것이 정보다. 우리 이전에 정보가 있다. 정보의 차원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개체화된다. 식을 전환하는 것, 즉 전식이 필요하다. 근거, 의지처를 바꾸는 것이다. 오염식을 몰아내야 한다. 가짜임을 공부해야 한다. 오염된 종자가 청정한 종자로 바뀔 때까지. 그러면 7식과 8식이 구분이 없는 상태가 된다.

 

중요한 건 메커니즘이다. 우리는 이 세계를 오해하고 있다. 오해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이 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지점까지 사유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감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사유해야 한다. 이 세계가 우리의 관념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세계를 자기의 틀에 맞추려고 하는 건 유아적인 인식이다. 자기의 생각이 실재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경험 세계를 부정하진 않으면서, 그 경험 세계가 우리의 관념에 따라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걸 아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을 통해 인식을 도출해내는 게 경험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의 존재 원리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불교는 경험 세계를 벗어나지 않지만, 그 경험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의 발생 조건을 사유한다. 경험이 발생하는 조건을 사유하는 게 초월적 경험론이다. 경험에 기반해서 경험이 발생하는 조건을 사유한 이가 들뢰즈다.

 

베르그손은 지각이란 신체와 또 다른 신체들, 물질과 물질들이 작용하고 반작용하는 세계에서의 범주화라고 말한다. 인간이 어떤 유불리를 식별할 때 기억이 개입된다. 인간 문명의 역사, 문명의 기억이 인간에게 내재돼 있다. 우리의 모든 행위와 지각 속에는 기억들이 이미 들어와 있다. 그런데 인간의 정신적 삶이라는 건 생존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생존, 유용성과 무관한 주의 깊은 식별이라는 게 있다. 응시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의식의 차원이 있다. 그게 인간의 사유 활동이다. 신체에 종속되지 않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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