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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에세이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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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랑소 작성일17-07-08 07:19 조회2,4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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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경
 우리 조 4명은 다 ‘왜 두 캐릭터를 비교했는지 설득이 안 된다.’는 길샘의 코멘트로 시작 되었다. 나는 소세키의 ‘자기본위’를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와 「고사신편」의 ‘백이숙제’를 비교하여 문제를 풀고자 하였다. 「고사신편」에서 ‘자기본위’와 잘 어울리는 인물은 ‘묵자’이다. 주제가 선명하지 않으면 인물선정도 흔들린다. 1차 텍스트를 철저하게 독파하지 못해 생기는 것들이다. 그러니 의도와 달리 글이 갈之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앞부분에서 루쉰과 소세키에 너무 힘을 쏟아 끝맺음을 할 수도 없었다. 
 발표할 때 모골이 송연해졌는데 그 느낌도 더위에 녹았는지 오래가질 않는다. 샘의 주옥같은 멘트는 ☞ 1.작품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할 것. 2.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질 것. 3. 글을 쓴다는 것은 소화한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정혜윤

1.샹린댁과 소스케의 비교는 좋았다.
2.자기의지의 문제라고 결론을 급하게 내렸다.
3.샹린댁의 문제는 단지 개인만의 문제일까? 스스로 해방이 가능했을까?
  아큐에서는 자기해방을 해야한다 했지만 축복의 샹린댁의 상황에서는 과연 자기해방이 가능한지 고민해봐야 했었다. 그런.부분을 짚어주지 않았다. 샹린댁은 자기해방을 위해 도망쳤지    만 주변굴레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민중불행에서 더 불행해졌다. 지식인의 불행보다 민    중의 불행은 더 처절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자리에서 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저항이 가능할까 극한의 상황에서 해방을 얘기하는게 루쉰의 고민이었다. 과연 샹린댁은 극복할 수 잇었을까. 그리고 지식인인 ‘나’는 비겁함을 보여준다. 자기의지만의 문제인    지 아닌지를 따져봐야 한다. 외부적 윤리라는 도덕이라는 것이 한 인간을 얼마나 옭아매는지를 루쉰이 고민했다면, 소스케는 자기만의 도덕윤리로서 자기를 단죄하고 있다. 과연 이것으로부터 해방하려면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4.인물 자체의 비교분석은 신성하고 좋았다.
5.소스케에게 해방은 뭘까. 샹린댁에게 해방은 뭘까. 이것이 결론에서 드러나면 재미있는 비교 가 될 거 같다.
6.비교한 이유가 왜 루쉰과 소세키를 비교해야하는가를 이 인물을 통해 비교하면 재미있을 거 같다
7.마무리가 아쉽지만 시도는 좋았다.


이유진

주제가 ‘인물 대 인물’인데 작품을 분석하려고 한 것 같다. 제목이 문 앞에 선 두 남자이다. 그러면 ‘행복한 가정’의 ‘작가’와 ‘문’의 ‘소스케’가 문 앞에 있다고 생각한 거라면 이 인물에 집중했어야 했다. 그런데 인물을 하지 않고 작품으로 가서 문제가 퍼져버렸다.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결론을 못 내렸다. 글의 힘이 떨어졌다. 행복한 가정에서는 행복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자기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그걸 묻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문’은 뭘까 라는 질문이 있는 거다. 이 사람의 심리나 지향을 하나도 따지지 않았다. 소스케도 마찬가지다. 소스케 앞에 있는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고 어떤 식으로 행동을 취하고 있는가. 그런 가운데 문을 열었는가가 중요하다. 
단순하게 써야 할 것만 쓰면 되는데 다른 문제를 덧붙였다. 글의 초점이 없다보니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 갈지자로 써서 글을 못 알아듣겠다. 잘 전달하는 글이 되도록 점검을 해야 한다.

소스케와 쥐안성을 비교하다가 잘 안돼서 짧은 ‘행복한 가정’으로 급하게 바꿨다. 급하게 읽어서 그런지 보이는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문제였다. 주제에 집중해서 어렵고 힘들더라고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파고들었어야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임영희

 행복한 가정 작품을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작가가 돈을 벌기 위해 작품을 써야하는 상황이다. 투고할 잡지사의 전형대로 쓰려는데 잘 안되고... 자꾸 작가를 가로막는 것은 그 작가의 현실이다. 작가가 추구하는 것과 글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 현실과 너무나 괴리가 있는 것이다. 이 작가는 이 거리가 조절이 안되서 끝내 작품을 쓸 수 없다. 행복한 가정은 어디에도 없다. 만들어진 유토피아다. 그렇다면 행복한 가정은 어떻게 만들어야하는가? A라는 배추더미 위에서 만들어야한다. 그 위에서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마른장작과 배추더미와 꽥꽥 우는 아이와... 이러한 일상 속에서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 작품은 이것을 질문하는 거다. 자신이 정말 이러한 일상에서 행복한 것인가? 아니면 일상을 떠난 또 다른 세상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일상은 팽개치고 또 다른 행복한 장소를 향해 달려가는 당신에게 남편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그것과 타협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 문제의 장에 섰을 때 어디에서 오는 갈등인지가 보일 것이다. 
 자신이 추구해야할 사람으로 히로타 선생을 보고 있는 것인가? 내가 달려가고 있는 것 같지만 이상과 현실에서 괴리감을 느끼고... 그런데 그 곳이 정말 내가 달려가야할 곳이라면 히로타 선생처럼 중심은 잡고 있어야한다. 주변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내가 중심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음을 여기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인물 분석은 아닌 것 같다. 인물 대 인물을 놓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로 충실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리고 자신을 제 3자로 쓰는 사람들은 화기가 많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재미있는 분이긴 하다. 자기를 다르게 드러내고 싶어한다. 그런데 정돈이 안된다. 글에 촛점이 없다. 자신의 문제인데 자기가 빠져버렸다. 이런 식의 3인칭을 에세이 글에서 쓰는 것은 내 문제를 간절하게 뚫고 나가려는 생각은 없고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주목을 받을까에 집중해있다. 그 마음이 더 클 수도 있다. 어쩌면 글에서 이야기하는 고민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런 부분에서 자신을 한번 봐라. 진짜 문제라면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진짜 진지하게, 간절하게! 접근해라. 그리고 정말 사람들에게 시선을 모으고 싶다면 작품을 정말 재미있게 읽고 그 작품을 자신의 말로 재미있게 설명하려는 그 기운, 활력이 느껴지는 글을 써라. 용신이 금이라면 작품을 꼼꼼하게, 치밀하게 따지고 분석해라. 입구에서만 따지고 마무리 짓지 못했다. 금 기운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사람이 너무 뒷끝이 없다. 너무 뒷끝이 없어서 문제만 만들고 자신은 책임도 안지고 빠지면 안된다. 시작했으면 글의 마무리를 꼭 해라. 마무리를 해야 마디를 넘는다. 남보다 글을 5번은 더 읽어라. 


이소민

롄수와 히로타 선생을 같다는 전제 위에서 시작했다. 중국이라는 상황, 일본이라는 상황은 다르다.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찾고 분석해야한다. 롄수가 처해있는 조건들. 히로타 선생이 처해있는 조건을 작품 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조건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의 조건과 또 그 현실에 대한 반응은 다른데, 너무 같은 차원에서 이야기해려 뭔가를 얘기할 것 같으면서 밋밋해져버렸다.
  ‘문제 의식’이 일어나지 않았다!! 미세하게 좋은 것들은, 잔잔하게 찾아내는 것들은 있지만, 글의 흐름을 잡는 게 문제다. 문제의식을 따져가서 결론까지 이르는 과정이 허술하다. 보수 공사가 엄청난 글이다. 잘 보완해서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에세이 코멘트가 끝나고 '문제의식'은 어떻게 잡는거냐고 여쭤봤더니...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제발 다짜고짜 좀 들어가지 좀 마!" 아.. 식상녀인 제가 일단 시작하고 보는걸 어찌 아시고..ㅠㅠ
 히로타 선생만이라도 깊게 보고 다시 쓰고싶다는 생각은 드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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