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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단지 작성일14-04-15 20:01 조회2,8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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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5. 감이당 수요대중지성 1학년1학기 기말에세이 4조 이 경숙

 

 

글 쓰는 나

 

 

참 좋은 시절

 

 

연이틀 실이 바늘에 들어가지 않아 낑낑대거나 자동차가 도로 중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꿈을 꾼다. 기말에세이의 중압감이 잠자는 내내 나를 괴롭힌다. 예전 같으면 진작에 훌륭한 변명거리를 만들어 포기해 버렸을 텐데 도망치지 않는다. 공부하고부터 바뀐 가장 큰 삶의 변화다. 책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보는 기적 같은 일들이 이젠 일상이 되었다. `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네 나중은 미약하리라`. 앎이 삶이기 전의 내 생활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이러했다. 이것이 타고난 나의 몸의 리듬이었다는 걸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고, 이 리듬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공부라는 것도 하나씩 달라지는 나의 삶을 통해 배워간다.

몇 년 전 우연히 EBS 도올선생의 중용강의를 듣게 되었다. 아마 마음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이때부터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관련된 책을 읽고 관련된 인문학 강좌를 열심히 들었다. 나의 앎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강좌를 듣다보니 자연스레 모임이 생기고 모임에는 제도권에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만나면서 자연스레 술자리가 이어지고 그러면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썰전이 오고갔다. 대화의 요지는 내가 얼마만큼 지적수준이 높으냐 아니면 현실정치에 얼마나 관심이 많느냐 주로 이런 내용이었다. 점점 싫증이 났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나는 내가 대단한 무엇을 하는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동네 아줌마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고상함을 지닌 양 오만방자하기 그지없었다.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질 정도로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도올 선생의 강의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면, 곰샘의 강의는 공부가 결국은 내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깨달음은 도둑처럼 왔다. 어느 날 밤 여느 때처럼 석관에 누워 잠을 청하던 양명은 갑자기 어떤 자각에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양명은 오래전 자신이 품었던 의문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을 느꼈 다. 양명의 깨달음은 지금 이곳에서 성인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자, 오래전 그가 걸려 넘어졌던 격물설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의 삶의 길을 다른 데서 찾는 성인은 없었다. 요컨대 격물은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삶의 길이 다른 성인에게 있는 것 이 아니라 지금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었다. 이치는 나의 사물에 있지 않고 이치를 찾고자 하는 내게 있는 것이었다.`

전습록,앎은 삶이다. P48

위 문구가 딱 그날의 기분이었다. 그 날의 진동은 지금의 감이당 수요대중지성 4조의 나로 이어져오고 있다.

 

`-1-

 

엄마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다. 나는 괜찮은데 주위에서 엄마 없는 불쌍한 아이라고 동정하면서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던 주위 분들도 있었다. 그 분들의 순수함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들이 정말 싫었었다. 난 정말 괜찮았다. 아니 괜찮았던 것 같았다. 그 당시 동네에 그런 친구들도 더러 더러 있었고 공부 못하는 것 빼고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잘 놀고. 물론 학교만 가면 그 몹쓸놈의 엄마 없는 낙인이 나를 불쌍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생활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예민한 성격이 드러나거나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집중하지 않을 때, 불리한 입장이 되었을 때, 내가 리더가 되어야 하는데 그 자리를 놓쳤을 때 몸서리치게 괴로워했다. 엄마의 부재가 이런 쪼잔한 나를 그럴싸한 변명으로 포장해주었다. 나는 힘들게 살았으니까 나의 짜증은 당연한거라고.. 나의 아픔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정 받는 것을 죽는 것보다 싫어했으면서 동정을 해주지 않는 세상에 한껏 불만을 품었던 아이러니. 그러면서 보여 지는 나에게 더 집중하게 되고 그럴수록 더 큰 공허함이 생기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 반복되었다. 그저 자본이 주는 혜택을 많이 누리는 것으로 보상받으려했다. 유행은 내 목숨과 같았고 옷장에 쌓이는 옷이며 가방은 나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말해주었다. 이것을 윤회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윤회를 벗어나려고 공부하는 거라고 강조하신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짜증을 부리며 치맛자락 붙들고 늘어지는 여섯 살의 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과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는 결국엔 지금의 나라는 것을 그래서 결국은 지금 이 순간 잘 살아야하는 것과 매 순간 노력하지 않으면 내 안에 갇혀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삼 년 아는 공부하면 칠년 모르는 공부하라` 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는 척 그만하고 당당히 거칠게 삶으로서 공부하자. 삶이 없는 공부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 가족이 나로 인해 힘들어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 싶다.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니깐 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릴 수 없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을 분별하는 분별망상에서 일어난 것이다. 관계를 매끄럽게 해 나갈 수 없는 것은 나의 문제이지 공부를 하지 않는 타인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왜 공부를 하는 않느냐는 값싼 동정 따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나답게 사는 것이다. 미적유혹의 상태가 되어 궁금하게 만들면 된다. 개콘의 한 코너에서 김 지선이 한 말이 있다. `내 몸이 가난을 기억해요` 저런 철학적인 말을 하다니 놀랐다. 정신줄을 놓을 때마다 내 몸은 예전의 생활습관을 기억하고 돌아가려 한다. 그래서 매순간 공부하고 공부가 삶이고 내 몸이 되어야하는 이유이다.

소제목을 `참 좋은 시절`이라고 붙였다. 이유는 요즘처럼 담백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편하다.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는 사람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매 순간 잘 사는 것이 곧 수행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일상을 사는 마흔의 백수주부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신다. 모든 건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오십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살짝 기대도 된다. 한 순간에 나의 몸을 바꿀 수는 없는 걸 안다. 어제도 주차 문제로 모르는 사람과 한 바탕 난리를 피웠다. 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지만 돌아오는 길에 운전대를 잡고 한바탕 웃었다. 수행한다더니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고..

 

 

-2-

 

 

나에게만은 오지 않을 것 같은 마흔이다.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늘어지는 살을 보며 한탄도 해보지만 그것으로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살짝 의학의 도움을 받을까 싶다가도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세월 따라 변해가는 것.

지금 잘 살자 라고 생각하니 생활습관들이 하나 둘씩 바뀌었다. 지루했던 일상을 새롭게 보게 되고, 하찮게 여겨지던 집 안 일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런 집안일들을 말끔하게 해내는 내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집안 살림의 달인은 아닐까 의심도 해본다. 책보고 외우고 하다보니 자잘한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신기하게도 스트레스의 주범이었던 뽀루지도 하나 둘씩 없어졌다. 혹 얼굴에 트러블이 심하다면 암송할 것을 적극 권한다. 짬날 때 동네 주변을 걷다보면 우리 동네에 이런 것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아파트 주변에 찔레꽃이 한창이다. 특히 주말에 일상이었던 쇼핑이 뜸해졌다. 신상보다는 새 책이 오는 날을 더 손꼽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엄마는 요즘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큰 딸이 묻는다. 딱히 할 말도 없다. 아니 할 말은 많지만 연암의 말대로 이젠 아이와 함께 리듬과 박자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재미있게 하는 나를 보면 언젠가 궁금해져서 물어 볼 것이고 그때 비로소 도반으로 거듭나는 날이 올 것이다. 생각만 해도 신난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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