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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루쉰 읽기(근염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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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남 작성일18-05-31 20:27 조회1,760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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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시간에 우리는 루쉰의 동지, 친구들, 제자들과 루쉰이 주고 받은 서신을 읽었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루쉰의 박학다식함과, 장르를 넘나드는 고서와 외국서적을 읽은 독서력에

감탄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을 너머선 책읽기가 루쉰을 만든 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1. 루쉰의 관계맺기

선생님은 "루쉰은 한번 관계를 맺으면 정성을 다한다. 그러나 희망을 갖진 않는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거는 순간 그것은 한 순간에 절망이 되기도 하니까."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저번 편지부터 이번 시간의 편지까지 매번 청년들에게 배신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루쉰이 애잔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덧붙여 설명 해주셨습니다.

루쉰이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이 어둠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둠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내야 하지 않을까?

2. 계몽에 대하여.

일반적인 계몽주의자들은 " 나는 계몽 되었으니, 내가 너희들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알려줄께" 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루쉰의 계몽은 자연스럽다. 번역과정에서 보면, '스스로가

읽어보고 그 책이 재미있으니 다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라는 순순한 즐거움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그래서 루쉰의 계몽이 자기의 노선으로, 꾸준히 , 끈기있게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꾀꼬리는 스스로 노래 부르고 싶어 노래 부른 것이지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노래를 들려주려고

부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노라는 떠난후 어떻게 되었는가? 중에서

 자기 즐거움만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즐거움을 즐기는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자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자기 깨달음 위에서 '스스로는 과정을 가고 있는 중간물이고,

 구습을 안고 희생(몰락)하겠다.'라는 루쉰의 자기 혁명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p.s: 루쉰과 자기 즐거움이란 단어는 한번도 연결해서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웬지 즐거움이란 단어는 루쉰과 어울리지 않고, 불경스럽다는 생각까지 했었는데요.

       어떠세요? 여러분 생각은?



댓글목록

한성준님의 댓글

한성준 작성일

저도 루쉰이 사람들과 청년들과 관계맺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매번 배신당하면서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루쉰의 태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오켜니님의 댓글

오켜니 작성일

쉬광핑의 편지 중에서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증오하고 미워해서 그야말로 함께 같은 땅에서 숨쉬는 것도 싫어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끓는 물과 타는 불에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다가도,,,원인은 당신이 지나치게 민감하고 지나치게 열정적이여서 그래요'
한번 관계를 맺으면 대충은 없고 몰입했던 루쉰,
그런 그였기에 도출할 수 있던 결론인 것 같습니다.
'희망이나 기대없이 관계맺기'

김은순,초원님의 댓글

김은순,초원 작성일

저도 루쉰의 관계 맺기에 대한 근영 샘 강의 부분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 기대, 희망이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 희망과 절망은 같은 이름'
' 청년들을 사랑한 루쉰. 매번의 실험과 매번의 실패를 겪지만, 그 적나라한 절망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끝까지 살아내는 것, 이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법'
' 꾀꼬리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스스로 노래를 부른 것이지 사람들을 기쁘게 하거나 유익히게 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 부분을 기억 하렵니다. 어떤 기대나 희망 없이 나의 사랑을 지켜 내면서 다만 그들과 잘 살아나가는 것.
 ^^ 이 글을 쓰는 지금 살짝 기쁘기도 하네요. 루쉰 선생님! 당신은 정말......

울랄라님의 댓글

울랄라 작성일

글 읽을때 필요한 것은 들을 귀다.글로 읽지 마라.
말은 구조를 넘어선다.그래서 말은 그림 같다.음악 같다-이제사 그림을 좀 이해 할수 있을 것 같음^^

임경원님의 댓글

임경원 작성일

루쉰은 당시의 혁명문학에 대한 개인적인 정의를 내린다.
"꾀꼬리는 스스로 노래 부르고 싶어 노래 부른 것이지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노래를 들려주려고
부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꾀꼬리처럼 혁명을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혁명문학이지, 따로 혁명문학가가 혁명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에는 루쉰도 꾀꼬리처럼 노래를 부르듯이 글을 썼을 것 같다. 즐겁게 노래하면 시와 소설, 슬프게 노래하면 잡감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중국인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노래를 들려주려고 쓴게 아니고.

이은아님의 댓글

이은아 작성일

저도 루쉰과 자기 즐거움의 관계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그 무엇이든 즐겨야 그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근영쌤의 말씀을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쳤네요.
루쉰이 그 수많은 번역과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그것이 즐거웠기에 가능 했을 것같아요.
아무리 중국 민중을 자각시키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라지만,
본인 자체가 즐겁지 않았다면 치열하게 그리 오래 글을 쓸 수 없었을 것같네요.

루쉰은 글쓰기와 읽기등공부를 즐기는 사람이었나봅니다.
안그랬으면 적막하던 시절 고문베끼기를 했겠어요?
주색잡기를 즐겼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