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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혁명문학논쟁 창조사, 태양사 작품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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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옹 작성일18-06-03 11:01 조회1,62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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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비판 창조사 월간지 창간호 1928년 1월 15일 
[예술과 사회생활]  (펑나이차오 1901-1983. 문학평론가, 후기 창조사 구성원)
루쉰이란 이 늙은이는 늘 어둠침침한 술집 한 구석에 앉아서 흐뭇하게 취한눈으로 창밖의 인생을 내다본다. 세상 사람들이 칭찬하는 그의 장점이라면 다만 원숙한 수완뿐이다. 하지만 그는 이따금 흘러간 옛날을 못 잊어서 몰락한 봉건 정서를 추모한다. 결국 그가 반영하는 것은 사회변혁기의 낙오자의 비애뿐이며, 무료하기 짝이 없게 자기의 동생을 따라서 인도주의적인 미사여구를 몇 마디 할 뿐이다. 이것은 도피주의다. 
그러나 톨스토이처럼 추접스러운 설교자가 되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톨스토이는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착취를 조금도 거리낌없이 비판하고, 정부의 폭력, 행정의 희극적인 가면을 찢어 버리고, 국부의 증대, 빈곤의 증대, 노동대중의 고통 사이의 모순을 폭로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럽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추접스러운 일- 종교의 설교자가 되었다.
2, 문화비판 2호 1928년 2월
[어떻게 혁명문학을 건설할 것인가] (리추리 1900-1994. 문예평론가 창조사 후기 구성원)
우리는 사회의 일부 상식적인 선동가들이 틀림없이 우리를 비웃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들은 말끝마다 혁명을 부르짖는데 어째서 직접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문학을 주무르고 있는가 하고 그들은 말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문학의 작가는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계급 출신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프롤레타리아 계급 출신이라고 해서 꼭 프롤레타리아 계급 문학을 써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문학은 그 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방관적, 표현적인 태도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계급적 의식에서 나온 일종의 투쟁문학이다. 
나는 간런군에게 묻고 싶다. 루쉰은 도대체 제 몇 계급이며 그가 쓴 작품은 또 제 몇 계급의 문학인가?
간런군은 중국 신문예의 미래와 그 자신에 대하여 그야말로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작가라면 그가 제1 제2,...제100, 제1000 계급이든지 상관없이 누구나 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문학운동에 참가할 수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그들의 동기를 심사해야 한다. 즉 그가 문학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 아니면 혁명을 위하여 문학을 하는가 를 보아야 한다.
유산자가 모든 예술을 자기의 지배 도구로 이용하는 한, 문학은 당연히 무산자의 중요한 전쟁터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작가들은 문학을 위하여 혁명을 할 것이 아니라, 혁명을 위하여 문학을 해야 하며, 우리의 작품은 예술의 무기로부터 무기의 예술에 이르러야 한다.
3. 창조월간 1928년 2월호
[문학에서 혁명으로] (청팡우 1897-1984. 문학 평론가, 창조사 주요 구성원)
문학 혁명의 현 단계에 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면 베이징의 부분적인 특수 현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위쓰]를 중심으로 한 저우쭤런 일파의 장난이다. 그들의 표어는 '취미'이다.
그들이 긍지로 삼는 것은 한가, 한가, 세번 째도 한가 이며, 그들은 한가한 부르주아계급 혹은 북속에서 잠자고 있는 프티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고 있다. 그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이미 이렇게 여러 해를 살아 왔다.
만일 베이징의 오염되고 혼탁한 공기를 10만 냥의 연기 없는 화약으로 폭파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영구히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4. 문화비판 1928년 4월호
[중국의 돈키호테 난무를 보라]  (리추리, 창조사)
역시 아마도 문예를 다루는 사람은 민감한 모양이다. 우리의 돈(Don) 루쉰은 어디에서 보았는지 모르겠으나, 어떤 간행물에서 **는 일종의 예술적인 말인데, 이 말이 어찌된 셈인지 마치 도끼로 이 돈키호테의 기억 중추를 쪼개놓아 버렸다는 내용을 본 듯 하다. 무기의 예술도 곧 돈 루쉰의 취한 눈 속에서 몽롱한 적으로 변해 버렸다. 
5. 태양월간 1928년 3월호
[죽어 버린 아Q시대]  (첸싱춘, 태양사)
어떤 나라의 문학을 막론하고 진정한 시대적 작가의 저작은 시대를 돌아보지 않은 것이 없으며 시대를 대표하지 않은 것이 없다. 시대를 초월한 정신, 그것이야말로 시대적 작가의 유일한 생명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루쉰은 결국 이 시대의 표현자가 아니다. 그의 저작에 내포된 사상 역시 10년 동안의 중국 문예사조를 대표하기에는 부족하다. 루쉰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지 못하였다.
6. 전선 1928년 4월호 창간호
[중국 현재의 문학계를 말한다] (판쯔넨 1893-1972. 뤄서우, 장수이 출신 철학자)
루쉰의 그 글은 아주 실례지만, 태도가 매우 글러먹었다. 삼한집 p. 386 참조
7. 무궤열차 1928년 9월25일 반월간지
[혁명과 지식계급] (펑쉐펑, 중국 공산당 선전부)
우리는 루쉰의 언행에서 혁명을 헐뜯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혁명문학운동을 많이 조소했으며, 그는 결코 혁명문학운동 자체를 조소한 것은 아니다. 추종자들의 언동을 조소했다. 그가 혁명을 헐뜯고 혁명을 중상했다고 꼭 말해야 되겠는가? 이것이 혁명에 대해 유리하다는 것인가?
[그간의 혁명문학 논쟁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혁명문학논쟁은 사실상 끝이 난다.]
댓글목록

한정미님의 댓글

한정미 작성일

잘 볼께요^^

이은아님의 댓글

이은아 작성일

정리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