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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06 수성 2학기 5주차 삼한집 전반부 후기
 글쓴이 : 한수리 | 작성일 : 18-06-08 14:27
조회 : 135  
이번 주는 문탁샘이 삼한집에 관한 강의를 해주셨어요.

먼저 연표정리와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 되었습니다.

루쉰을 읽다 보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자연스럽게 연표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이 해준 연표를 백날 봐서는 그게 자기 것이 되지 않기 때문에 꼭 자기 손으로 직접해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또 이제 슬슬 글을 쓸 때가 다가오는데 저희는 매번 막바지에 책을 보고 에세이를 쓰려고 하니까 매번 똑같은 글을 쓰게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평소에 읽고 메모하고, 쪽글을 쓰고 필사를 하고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막바지에는 그렇게 모아놓은 것들을 재배열해가면서 써야지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어요. 저희도 얼마 안 남았지만 지금부터라도 파이팅 해봐요! ㅎㅎ

이번 주 강의의 핵심은 ‘혁명문학논쟁’이었어요.

삼한집에서 루쉰은 계속 싸웁니다. 그런데 누구와 싸우는지 왜 싸우는지 정리가 잘 안 되서 읽기가 어렵더라구요.

혁명문학논쟁은 루쉰이 상하이에 오면서 시작 됩니다.
그는 상하이에 와서 창조사와 태양사의 젊은 청년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러 오지만 오히려 그들은 루쉰이 오자마자 공격을 퍼붓습니다. 

그들의 변화는 장제스의 쿠테타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한때 혁명은 국민당과 함께 갔지만 장제스의 쿠테타로 인해 청년들은 배신을 당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과격해지고 조급해 집니다.
그것이 그들과 루쉰의 차이였습니다.
루쉰은 그가 참호전으로 비유한 것처럼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때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더 이상 기다리고 참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다리라고 참으라고 하는 루쉰은 혁명의 방해자로 여겨지게 됩니다. 
청년들 중 창조사 무리는 일본의 극좌파인 후쿠모토 가즈오의 사상에 매료됩니다.
그의 사상은 극좌파답게 관념적이고 조급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야기 합니다 “혁명의 때가 되었다. 혁명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지식인들이 기회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 혁명의 때임을 읽지 못해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지식인들을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창조사 청년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다리라고만 하는 루쉰입니다. 
거기다 루쉰은 창조사 무리들의 무기인 혁명문학을 부정하기까지 하니 얼마나 미워보였을 까요. 
창조사는 그렇게 정세를 읽지 못하는 루쉰을 취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루쉰이 아니지요. 그는 받은 말을 그대로 돌려주면서 오히려 취해서 정신이 몽롱한 것은 너희들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그러면서 싸움은 더욱 과격해집니다.

창조사 문인들과 루쉰의 가장 극명한 차이는 바로 문학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루신에게 문학은 개인이 모기에 물린 것처럼 절실 한 것을 쓰는 것입니다. 더우면 덥다는 걸, 화나면 화난다는 걸 표현하는 것이 문학입니다. 하지만 혁명문학을 이야기하는 자들에게 문학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계급의 문제로 전환해내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은 사회의 상부구조라는 점, 혁명은 프롤레타리아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 문학은 개별적 자아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의지를 표현해야 한다는 점. 한마디로 문학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루쉰, 길없는 대지』, 「7장_혁명은 어디에 있을까」, 이희경, 184쪽”

즉 노동자가 작업반장과 싸움을 하면 그것은 개인적인 싸움이 아니라 자본가의 착취로 보고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계급간의 싸움으로 전환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루쉰과 혁명문학을 논하는 자들간의 1차전이 끝나게 됩니다.

다음주 2차전은 또 어떻게 싸울지 기대가 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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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오인영   2018-06-13 00: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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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루 종일 북미회담의 뉴스 밖에 없네요.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정세에 어떤 시선으로 뉴스에 임해야 할것인가.
과연 통일이 된다면 어떤 희망이 생길까?
처음으로 "빨갱이"란 단어가 사라진 선거전 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여년전 루쉰의 삼한집과  지금 TV속 뉴스를 왔다갔다 보고있습니다. 시대를 읽는 서릿발같은 통찰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 현재를 위해 깨끗한 일면의 거울이 되고, 미래를 위해 일종의 기록으로 남기는것"
울랄라   2018-06-12 22:08:42
답변  
문제 많은 세상에서 괴로움을 호소하고,슬픔을 말하고 ,분노하며  진실된 자기의 감정을 쓰는 것이 문학이다.
말을 글로 쓰면 문학이다.-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쓰는 것이 글쓰기라는데 배우기만 바쁘고 복습하고 사유하지 못하니 괜히 불안합니다.ㅠㅠ
임영희   2018-06-12 09: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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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신에게 문학은 개인이 모기에 물린 것처럼 절실 한 것을 쓰는 것입니다. 더우면 덥다는 걸, 화나면 화난다는 걸 표현하는 것이 문학입니다.'

내가 모기에 물린 것처럼 내 몸이 겪어내는 절실한 것들을 쓰는 것이 문학이라는데 자꾸만 정인군자처럼 '예술', '문학', '인생'에는 뭔가 그것과는 다른 대단한 것이 있을거라 희망을 생각하게 되네요. 가볍다면 가벼운 것일 수 있는데 왜 자꾸 무겁게만 생각하게 되는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최영숙   2018-06-09 15:06:24
답변 삭제  
성준샘의 후기를 보며 다시 한번 지난 시간의 내용을 정리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면 언제나 행복할 것"이라는 파울로 코엘료의 글귀를 보며 루쉰을 생각해봅니다.
한 순간도 현재에 집중하지 않았던 적이 없는 그는 참으로 대단하단 생각이 그의 글을 읽을 수록 듭니다.
 당시의 폭력과 암흑 속에서도 자신의 사소한 일상을 놓치지 않고 온 힘을 다하여 진심어린 글을 썼으며, 수 많은 칭찬과 비판 속에서도 낱낱이 자신을 해부하며 쉽고 안락한 길을 택하기를 마다했으며, 당시의 혁명문학가(문예가)들에게 그들의 허위의식을 일깨움으로써 진정한 혁명이란 일상에서의 자신의 혁명이어야 하고, 그들이 혁명인임을 당당히 말한 루쉰!

담임샘의 말씀처럼 "지금 내가 루쉰을 만나고 있다는 원초적 흔적같은 느낌을 갖"고 또다시 필사노트를 들어야 할까 봐요.ㅎㅎ
이은아   2018-06-09 05:38:36
답변  
중요한 건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걸음을 내딛는 것뿐이다. 역사적 실천의 원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행방을 '향해'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 그 자리를 해방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 - 이보다 더 혁명적인 실천은 없다!

- 나의 운명사용설명서 p.98-99

내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군요.
레옹   2018-06-08 19:09:05
답변  
루쉰은 자신의 '어두침침한 술집 한 구석에 앉아서 흐뭇하게 취한 눈'속에서 창조사파의 몽롱한 눈을 보았다.
취한 눈 속의 몽롱을.
취한 건 루쉰이지만, 몽롱한 건 그들이다.
몽롱이란 혁명의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는 걸 말한다.
루쉰은 자신의 눈동자 속에 있는 몽롱한 그들을 본다. 취함 속의 취함을, 대단하다!
이렇게 시대를 꿰뚫는 통찰을. 루쉰의 글을 보면서 감탄한다.
참호전에 숨어서 때를 기다리다가 투창과 비수를 든다.
한정미   2018-06-08 15: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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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대한 태도

언어는 내면을 표현하는 기호입니다. -먼곳에서 온 편지, 쉬광핑의 말-
자기 진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진실한 말, 진실한 소리만이 사람들과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 나갈 수 있습니다. -삼한집, 소리 없는 중국-

진심의 말과 진실한 태도는 자기에게도 타인에게도 "살아있는 말"이 되는 것이겠지요.
조영남   2018-06-08 15: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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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은  본연의 문학은 절실하고, 불편한 것들을
진실하게 이야기 하는것이라 생각한 것 같아요. 이런 문학은 시대를 반영할 순 있어도
‘내가 시대를 앞서가게 해 줄께’라고 선동하고, 가르칠 순 없는 것 같아요.
루쉰이 그 부분을 촌스럽고, 엉성하다면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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