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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2학기 도덕의 계보학 1강 후기
 글쓴이 : stella | 작성일 : 19-05-15 01:20
조회 : 250  

니체는 낯설어서 어려운 것이지 그 길이 익숙해지면 쉽게 읽힌다.


도덕과 계보는 모순적인 것이다. 도덕의 보편적 행동원리는 비시간적인 준칙이다. 즉 시간과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준칙이다. 계보학은 시간의 흐름을 다루도록 되어있다. 비시간적인 원리를 시간적인 것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역사가 없는 것에 역사를 주겠다는 의미이다. 시간을 초월해서 우리의 일상에서 이루어진 것을 보겠다는 것이다.  

도덕은 자기인식에 관련 되어 있다. 도덕은 행위의 준칙. 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행위하는가를 바라보자! 행위가 자기 자신이다. ‘원래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계보학이다. 기원에 대한 비판. 지금의 우리는 기원으로부터 나오고 대부분의 역사는 지금을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과거의 씨앗이 있고 지금이라는 것은 그 씨앗이 커서 나온 열매다라고 하지만 니체에게 삶이란 불연속적인 것이며 변화이고 생성이라는 것이다. 목적론은 지금의 열매를 위해 그때의 씨앗이 있었다. 그것은 원래라는 말을 가지고 있다. ‘원래는 지금을 정당화하고 공고화한다. 새로운 시공간을 열어주려면 단절, 불연속적인 시간이 존재해야한다. 생성으로서의 삶을 복원하고 불연속성을 복원! 계보학의 방식은 원래라는 말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것이다

 

누가 진리를 말하는가? 불확실한 사람들이 확실한 것을 원한다. 어떤 욕망(마음장, 신체성)이 진리를 말하는가? 누가 책임을 묻는가? 책임질 사람이 필요한 사람, 잘못 돌아가는 것에 대해 내가 아닌 누군가가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다. 변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 가치의 가치를 묻는다는 것은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가를 찾는 것이다

도덕은 행위이고 행위는 바로 나를 말해주는 것. 행위는 힘과 연관되어 있다. 모든 존재의 근원에는 힘의 의지가 있다. 우리는 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즉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의미이다. 관계는 합리적인 것이 아닌 힘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침입해 들어가고 영향력의 관계, 폭력적인 관계이다. 나이스한 관계는 계약관계이다.

타자를 지배하는 방식은 약자의 방식이다. 타자를 지배함으로써 우월함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반면 강자의 방식은 자신을 고양시킴으로써 주인이 된다. 약자는 자신을 고양시킬 힘이 없는 자들을 찾아가서 주인 노릇을 하거나 약자들이 많은 곳을 찾아가서 연민과 동정을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느낀다. 또한 상대를 끌어 내리는 방식, 힘을 빼는 방식으로 상대를 약자로 만들어 강자가 되려하고 계속 불쌍한 척해서 연민을 불러 일으켜 못가게 한다 

지치게 하는 것, 피로하게 하는 것이 노동의 중심가치가 되었다. 노동으로부터 여가(자기배려)를 만들어 내는 것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이 귀족이다. 자본주의에서 노예를 만드는 방식이다. 아무도 자기 배려의 시간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노예를 만드는 것.  


영향력을 미치는 것에서 하수는 계속 때린다 하지만 이것은 힘이 들고 반란의 여지가 있다. 중수는 기쁨을 주는 방식이다. 탁월함은 우위에 선다는 것인데 우위는 고귀함을 말한다. 존재적 독특성, 특이성이 있다. 즉 자기 스타일이 있다.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 있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다. 반면 구별 불가능한 평범한 사람을 평민이라 한다. 평민은 자본주의에서 원하는 방식이다. 평민의 시대 민주주의는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될 것을 요구하고 존재적 왜소함으로 이끄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재적인 독특함을 가지고 태어난다. 생성은 우주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 동일 한 것이 없다. 유일무이성이 생성의 존재 이유이다. 인간만이 이것을 의식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능동적으로 이용해서 삶을 살아내고 인간만이 자기인식을 한다. 탁월함은 엘리트 우월주의가 아닌 불교에서 말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것이다. 존재의 기반, 자신의 주인, 자기 고양, 자기 도야, 자기 배려를 말하는 것이다. 존재의 독특성 즉 거리의 파토스다. 거리란 차이를 말한다

강자들(귀족들)은 자신의 고귀함을 고양시키고 여서 좋다는 자기긍정(좋음)을 하고 약자들(평민)은 비천하고 평평한 평편함(나쁨)이라 칭한다. 지위가 존재적으로 독특하면 상품이 필요하지 않다. 자본주의는 거리의 파토스를 원하지만 상품으로 거리를 만들어 상품에 지배되게 만든다. 산업 자본주의는 구별 불가능한 평민의 시대를 원한다.

고귀한 자는 정직한 자, 진실한 자이며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가를 아는 내 좌표를 그대로 직시하는 힘이다. 이 모양 이 꼴을 그대로 용기있게 바라볼 수 있는 자가 강자이며 강자는 증오의 감정이 아닌 불쌍한 감정을 갖는다. 평민은 거짓말하는 자,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이며 자신을 똑바로 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비천한 것이 다른이 때문이다 라고 하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이에 대해 원한 감정을 갖는다.  

실재로 행위하지 않는 무력감에서 태어난 증오는 정신적인 복수 행위를 한다.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은 약자의 가치가 중심이 되는 것이고 불어로 르 상티망이라는 원한 감정. 어느 때부터인가 모든 이가 원한 감정에 휩싸여 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서로가 미워하는 시대가 근대화가 된 시대이다. 자본주의 시대. 약자들의 싸움의 방식은 흡혈귀와 같이 상대의 피를 빨아먹는 방식이다. 니체는 이것을 피해 도망가야 한다고 한다


니체는 자기의 책을 들어줄 귀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책이 영향을 미치기를 바랬고 작동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랬다


다른 것들을 계속 부정하고 미워해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 것이 약자의 방식이다. 원한 감정이 생겨야 파시즘이 가능해진다. 다른 이를 부정하는 증오전쟁이 파시즘이다. 원한 감정은 외부적 자극을 통해서만 힘을 쓰고 활동한다. 스스로는 움직일 힘이 없다. 그러므로 노예도덕인 것이다.

다름을 느낄 때 강자는 저들에 대한 무관심, 불행함이라는 감정으로 대하지만 약자는 증오의 감정으로 대한다. 강자는 행위하는 활동 자체가 행복이 되는 것이고 약자들 노예들의 방식은 안도, 평화 등 쉬고 싶다라는 수동적인 방식이다. 자신이 주인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은 피로를 일으킨다. 자신이 반응적인 방식, 노예의 위치에서는 소모되는 것이므로 피로하다. 우리가 활동의 주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후회와 반성은 성찰과 다른 것으로 행위의 면죄부로 쓰는 것이다. 후회와 반성을 하고 똑같은 행위를 계속 반복한다. 강자는 그로부터 그냥 다른 행위를 한다. 내가 길을 만들려면 나 자신을 직시하고 있어야 하고 나의 욕망과 나약함을 분리하여야 한다. 약자는 영리하게 계산하지만 강자는 몸을 쓰고 신체를 바꾸고 신체를 통해서 통과한다.  


대립은 강자와 약자 사이에 있다. 선악은 약자의 가치이며 강자의 가치는 좋음과 나쁨이다. 강자와 약자의 대립은 선악과 좋음 나쁨의 대립이다. 니체는 선악을 극복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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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후박   2019-05-16 12:51:47
답변  
강의 들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2학기 듣는 동안 계속 강의록 들여다 봐야 한개라도 건질 듯해요 ^^
요기윤   2019-05-15 21:34:21
답변 삭제  
강의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니체, 핵심 강의를 꼼꼼히 정리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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