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0일 에세이발표2 및 낭송 후기 > 수요 감이당 대중지성

수요 감이당 대중지성

홈 > Tg스쿨 > 수요 감이당 대중지성

서브배너_수성.png

7월10일 에세이발표2 및 낭송 후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체인지마인드 작성일19-07-11 20:33 조회1,484회 댓글0건

본문




에세이발표 및 낭송 현장 스케치 사진 감상하세요


KakaoTalk_20190710_113727119.jpg

심사위원.jpg


1조개인낭송.jpg

2조낭송.jpg

개인낭송 우승.jpg

옥현낭송.jpg
송승미.jpg
일본낭송.jpg

정수낭송.jpg

현장3.jpg

현장5.jpg

현장스케치.jpg

현장스케치2.jpg


2019.07.10.

에세이 발표 2

글의 맥락 위에서 질문하고, 이 글이 어떻게 하면 좀 더 같이 나눌 수 있을까?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토론을 배우는 자리이다. 에세이 토론 시간을 겪다보면 부분부분 궁금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런 부분들의 구체적 내용들이 맥락상 필요하다고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더 세세한 질문은 토론장의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최옥현, 홍혜정 : 비슷해 보이는 질문들이 사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다른 질문일 수 있다.

옥현 : 앞부분에 문제 제기가 안 된 상태에서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다.

병의 원인을 찾는 질문과 병이라는 것은 삶에게 어떻게 작동하는가? 병의 가치는 뭐지?를 묻는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질문이다.

그런데 결론으로 가면 무질서의 도가니 속에서 병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다루면서 끝맺어서 내 병의 원인과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질문 두 가지를 분리해서 글을 썼으면 좋았겠다. 즉 도입부에서 정확하게 질문을 하고 갔으면 이런 혼돈이 없었을 것이다.

글의 중간에 행위하지 않았다라고 쓴 곳에서도 실제로 계속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왜 행위하지 않았음으로 표현했는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 없다. 그 부분에 공백이 있다.

그래서 질문은 내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갈지,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명확히 해야 한다.

질문이 명확하지 않으면 글이 산만해진다. 그래서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혜정 : 두 가지 문제가 혼재되어 있다.

공익과 공정성이라는 두 가지 질문이 한꺼번에 묶였다. 나의 힘에의 의지 위에서 이 두 가지를 본 것이다. 초점은 이 안에 들어있는 내가 행하고 있는 힘에의 의지인데 글 상으로는 공리나 공정성까지 혼재되어 있다보니 공리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공정성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것보다는 그런 것 뒤에서 내 힘에의 의지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겠다고 하는 건지가 거의 비슷한 강도로 연결되어 있어서 글은 힘 있고, 재미있고 좋은데, 여기에서 질문을 앞부분에서 공리로 했는데 이 문제가 나중에 공정성으로 가고, 공정성의 문제로부터 내 힘에의 의지로 문제가 옆으로 이동해 버려서 하나로 딱 집중되지 못했다라는 아쉬움이 있다.

질문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이것만 잡히면 글을 쓰는 것은 반 이상된 것이다. 질문을 잡는 과정에서 내가 니체와 만난 지점, 내 경험이 다 들어가게 되어있다. 질문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잡는다는 지점을 꼭 염두에 두자.

질문을 문제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문제를 풀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를 찾게 된다. 전문가란 각 각의 전문가적 방식으로 문제화 시킬 수 있는 방식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삶에 대해 기본적으로 독립한다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질문을 문제화시키는 행위이다. 이것이 공부하는 에세이를 쓰는 것의 1번이다. 내가 책을 읽고 갖게 된 뭔지 모르지만 이 물음표를 이 니체의 도움을 받아 니체화 시키는 것, 이것을 맨 처음에 가장 힘들여서 해야한다.

 

옥현샘과 은실샘의 글의 유사점 : 비문이 많다.

은실 : 오탈자도 있고 비문이 많다.

기초작업을 거쳐서 갈 때와 기초작업 없이 가는 것은 다르다.

앞에 은유적이고 애매모호하게 문제화시키는 것을 은폐화, 합리화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유치하지만 명확하게 질문을 던지고 시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오탈자나 비문도 마찬가지다. 문장하나를 구성할 때 주어와 동사가 맞아야하고, 본문과 본문의 연결도 반드시 체크해야한다. 그래서 문장을 짧게 가져가면서 연습을 해야한다.

비문 없이 완벽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때, 그 위에 자유자재로 문장의 흐름들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질문이 재미있다. 일성과 통합하여서 형벌문제는 처음으로 다룬 것이다.

가해 학생은 왜 원한 감정을 갖는가?”, “형벌이 가해학생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가?”, “그를 새로운 행위로 이끌 수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는데 글에서 보여준 예 하나로 구체적으로 풀었으면 방향을 잡기가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니체는 모든 것은 개념적으로 말하면 가언명령이라고 한다.

가언명령이란 건건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반화시키기 이전에 매번의 흐름과 맥락을 읽어내는 힘, 그것에 가장 적중하는 힘이 중요. 그것을 위해 보편적인 것이 필요한 것이다. 보편적인 것 자체가 정답일 수 없다. 그렇다면 샘에게 구체적인 사안 위에서 가해 학생과 원한 감정의 관계, 죄책감의 문제들을 다루었으면, 그런 것들로부터 보편적으로 우리에게 형벌이라는 문제들이 어떻게 가야하는가라고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구체적인 얘기가 나왔을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쉽게 일반화를 시키면서 길을 잃은 것 같다.

그럼에도 가해자는 죄책감을 느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질문을 하고 방향성을 어떻게 잡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결국 죄책감을 통해 도덕적 감정을 키워야하고 그것이 행위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것, 즉 죄책감을 통해 도덕적 해답은 니체적 해답을 아니다.

읽기 훈련이 필요하다. 사람과의 소통에 기본이다. 내가 쓴 글을 소리도, 띄어 읽기도 연습해야 한다.

 

영희 : 질문도 글도 생각이 정리가 잘 안 된 것 같다. 작은 생각 하나라도 야무지게 정리하지 못하고 머릿속에 고민이 떠돌 듯이 글을 써왔다.

나 왜이러지?라는 느낌만 있지 하나라도 내 힘으로 매듭을 지은 경험이 없다면 자신감이 없다. 일상도 비슷할 것 같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리는 계속 아픈데 뭐하나 딱 정리된 것은 없는. 글쓰기를 많이 해야 한다.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내용으로 앞에서부터 순서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가서 매듭을 짓는 훈련을 해야 한다. 열고, 풀고, 맺는다는 기본을 글 한 편을 쓸 때마다 잊지 말고 계속 훈련해야 한다. 너무 복잡하게 문제들을 건드리지 말고, 딱 한 가지의 기본기를 계속 훈련해서 그것에 자신감이 생기면 다른 것도 자신감도 생긴다. 내용도 너무 추상적이고 문장연결도 안 된다.

 

지숙 : 갑자기 한 것을 언어화시켜야 한다.

처음 전개에서 망각과 커다란 건강을 구체적으로 풀어야한다. 구체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급 마무리된 느낌, 그냥 순식간에 난 깨달았어. 이렇게 얘기하는 것으로는 진정 자기 것이 되었다고 얘기할 수 없다. 사람들과 소통 가능한 언어가 되어야 진정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에고에 갇혀 부정적인 방식의 권력에의 의지가 발동하게 된다. 그것이 강자적인 것으로 가려면 기본적으로 소통가능한 언어가 되어야 한다. 그 지점이 없는데, 그 지점은

그런 것들은 계속 부당하고, 사회에 도움이 안돼라고 계속 말하는 그 언표 뒤에 어떤 마음을 숨기고 있었는지를 들여다봐야 그것이 자의식으로 갇혀버리지 않는다.

내가 숨기고 있었던 것들을 봐야 비로소 망각이 가능하다. 그런데 보지 못한 상태에서 무의미하지’, ‘무가치하지라고 말해버리니 망각한다고 하는 것이 그냥 체념한다든지,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므로 무시한다는 냉소적인 방식으로 가 버린다. 나의 맨 처음의 분노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를 끝까지 봤어야 한다. 그다음에 어떤 것이 가치있는 것인지 내가 싸워야할 일과 싸우지 말아야 할 일을, 잊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있을 때 이 망각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데 그 중간 과정, 내가 가졌던 분노의 정체가 무엇인지가 없다. 그래서 이 글이 앞과 결론만 있는데, 이 결론의 나는 이미 넘어갔어라는 방식은 다시 내 의식안에 갇힐 위험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래 :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고 들었다. 전형적인 것을 보여준다. 이상 속에 지키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을 건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데, 그것을 딱 건드렸을 때 마음이 어디로 튀어나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그것이 바로 원한 감정이다. 분노. 그 이상 속에서 내가 또 한 번 대면해야 할 내 모습이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속에서 분노까지 간 것이다.

그 이상이라는 속에서 내가 어떻게 내 자신을 회피하고 있었는지는 본 것 같다. 그런데 이상의 내용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한 번 더 가야하는 벽이 정확히 보인다. 전형적인 과정이다.

이 글은 차분히 갈 수 있는 길을 갔는데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남아있다.

 

니체의 어려움은 다른 관점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에세이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또 다른 관점으로 이행이 어려웠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어려운 개념들을 이해하느라고 에세이적으로는 글들이 기본적으로 형태를 갖추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뒷마무리가 좀 아쉬웠다.

 

조별낭송및 개인낭송

1조 조별낭송 : 재미있는 형벌 꽁트를 넣어서 니체의 씨앗문제를 암송, 긴 씨앗문장을 암기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특히 최영숙샘과 이정수샘연기가 돋보였습니다.

     2조 조별방송 : 각멤버들의 에세이 내용을 가지고 낭송을 기획한 아이디어가 좋았고 특히 자신들의 문제들을 승화시키고 웃음코드화 하여 청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네요. ^^ <- 조별낭송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개별낭송

최영숙샘, 최옥현샘이 개별낭송 우승하셨습니다.

모두 2학기 수고하셨습니다.

재충전하시고 3학기에 건강한 모습으로  봬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