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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4학기 고미숙 선생님 강의 3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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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설성희 작성일19-11-02 18:17 조회1,82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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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2019.10.30.

 

 

자찬묘비명을 쓸 것인지...내가 사라질 때 나에 대한 묘비명을 쓸것인가?와 나와 관계 맺은 이가 사라졌을 때의 이별을 애도하는 것은 다를 듯하다. 연결될 수도 있고. 그러나 그 때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는, 가장 중시하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화장이든 매장이든 변화되는 것이고 순환하는 것이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우리처럼 다른 것의 원조가 되니 별개의 것이 아닌 변주되는 것일 뿐이다. 나와 남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나, 죽음을 미화 시키는 것이 과연 애도인지, 인위적인 조작의 느낌도 있다.

 

묘비명을 쓴다는 것은 죽음을 체험하는 것으로 생사의 허상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사유 시 망상을 덜어내자. 안암은 깔끔한 서술로 죽음을 담백하게 서술하고 있다. 애도하되 슬퍼하되 비탄에 빠지지 않는다! 정서적인 논평이 없다. 반면 서양은 정도 넘는게 기본인 듯 평범에 대한 일상이 없다. 비탄에 빠져야 정화되는 듯 비극이 된다. 주역의 효사를 창안한 주나라 문왕은 동양의 기술법을 보여주는데 원한 사무치는 것 없다. 죽음은 단지 다른 존재로 전이되는 것일 뿐이다. 결정하는 조건 사라지면, 감정 사라진다. 기독교 중심 사유에서는 자아가 없다는 개념을 두려워 한다. 그러므로 비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

 

연암은 맏누님을 사별하고에서 애도사의 힘을 보여준다. 누나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묘사함으로서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작별을 한다. 과잉도 없이 청명한 슬픔을 보여준다. 또한 형수님을 보내면서는 감정이 비탄에 빠지지 않으면서 인간적인 친밀한 관계 유지 및 여성과의 공감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이들 글의 구조를 보고, 내 자신의 글의 구도에 참고해 보시라! 또한 벗 홍대용의 죽음에서는 그 본인의 마음을 헤아려서 절강성 친구들에게 비보를 전했다.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을지를 헤아린 것이다. 과학기술자 정석치의 죽음에도 슬프다는 말 없이도 자기가 조율해 내는 그리움, 아쉬움, 상실감 등의 마음을 그린다. 그러나 결코 연암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지 않았다. 어이없는 죽음에도 자기 삶의 무게를 지고 나아간다.

 

이상으로 묘비명 글들을 꼼꼼히 살피고 따져보시면서 자기만의 묘비명을 준비해 보세요.

 

강의를 들으며 살아있음과 죽는다는 것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느낍니다. 지금 이대로의 삶의 연장선이거나 다른 상태로의 변화일 뿐인데, 나 중심으로 내 삶에 의미를 잔뜩 부여했을 때에는 종말이나 끝이라는 생각에서 두렵거나 아쉼거나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떤 글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하면서 2019수성의 고미숙 선생님의 모든 강의가 끝났네요. 선생님은 본인 묘비명을 써 놓으셨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 간 모든 강의에 감사드려요.

댓글목록

eunsilk님의 댓글

eunsilk 작성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