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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1학기 알베르 까뮈 『페스트』 5부 발제 이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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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윤계사 작성일21-03-09 14:26 조회1,6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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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1학기 알베르 까뮈 페스트5부 발제 /2021.03.10 / 이서윤

 

 

내 아들의 이름은 필리프입니다

 

 

 페스트의 살벌한 숙살지기(肅殺地氣)에 오랑의 모두가 몹시 아팠다. 행정적 절차로서의 죽음과 추상적인 죽음만 접하는 시민들은 차라리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간혹 거짓이 진실보다 친절할 때가 있으며 우린 그것이 배려임을 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자 페스트는 그 나른한 기대감에 악착같이 들러붙었다.

싸움 속의 싸움, 페스트가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랑의 모두는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신념과 싸우고 있었다.

 페스트 상황에선 그 누구도 이방인일 수 없다는 랑베르의 각성은, 결국 사랑을 지켜냈다. 끝끝내 비겁한 이방인으로 행동했다면 스스로 자신을 경멸하다 사랑도 잃지 않았을까.

 정확한 언어를 찾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던 그랑은, 정작 페스트 상황에선 정확히 행동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담담하고 성실했던 그랑의 연대는 어떤 문장보다 위대했다.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고 싶다.

 페스트가 곧 인생임을 직시했던 해소병 노인은, 페스트와 무관했던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힘으로 어떤 경지에 이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콩 냄비 끌어안고 천년만년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연대하지 않는 성인은 다만 추상적인 풍경일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다. 그 고독과 대면하는 방식이 극단적인 공포라면 누구든 제2의 코타르가 될 수 있다. 페스트 상황만이 희망이고 평범한 일상이 절망인 삶은, 타인의 불행을 먹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들의 발병으로 수용소에 격리되었던 오통씨는, 눈에 부드러운 빛이 깃들었다. 경직된 신념으로 비호감 꼰대였던 이 남자의 패배는, 사실 안타깝다. 미미했지만 나름의 성장이 있었고 그래서 오통씨는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은 것이라 여겨진다. 다음 생이 기대되는 예심판사이다.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어 성인이 되고 싶었던 타루는, 길을 찾기 위해 길에서 만난 모두와 연대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상황을 직시하는 것, 두려움에 맞서는 것 모두 수양으로 도달하는 영역이라 여긴다. 타루가 구도자로 느껴진 건 고뇌하며 평화를 찾고자 하는 인간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시선은 저 높이 원대한 곳을 향하되 일상은 한 걸음부터걸었던(고미숙 선생님의 말) 타루를 참 많이 사랑했다. 책은 덮었지만 타루의 레퀴엠이 계속 들리는 듯하다.

 리유는 전생에 덕업을 많이 쌓았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불교에서 가르치는 화엄의 경지라 알고 있다. 리유의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리유와 타루의 곁을 지켰다. 그 누구보다 종교적이었던 그녀의 조용한 힘을 존경한다.

 

 현실은 늘 씁쓸하다. 의사는 치료에 전념하지 않고 명성만을 쫓거나 돈을 벌려고 했고, 공무원들은 상황을 통제하고 수습하기보다 비난과 책임에서 자유롭기 위해 현실을 외면했다. 언론은 본연의 업무와 역할을 고민하지 않고 재난 관련 이슈에만 전념했으며, 사기꾼들은 페스트를 이용해 목돈을 거머쥘 궁리에 혈안이 되었다. 종교인들은 재난과 죽음을 인질로 더욱 열렬하게 신()을 팔아 세를 확장했다. 그렇게 자기들의 신을 스스로 모욕했다. 어리석은 판단으로 페스트와 협업했던 이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시민들의 각성과 연대는 위대했다, 21세기 코로나 시대에 분명한 이정표가 되어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어리석은 이들과 평범한 시민들 모두이다. 가지 말아야 할 길과 가야만 하는 길이 너무나 선명하다. 고통 속에서 묵묵히 걸었던 사람들의 간절함은, 시공간을 넘어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죽고 나서야 아비에게로 가 꽃이 되었던, 필리프의 명복을 빈다. 성직자가 신께 의탁하지 않고 의사의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고뇌했던, 파눌루 신부의 명복을 빈다. 페스트를 읽는 내내 나도 많이 아팠다. 이들 모두를 제대로 배웅하고 내가 받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첫 장을 다시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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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丑年 辛卯月 丁巳日 경칩

발제자 코멘트입니다 (Zoom 출석이라 지면으로 대신합니다)

 

페스트의 캐릭터 전부가 저에겐 질문이었습니다. 내 안의 비겁함과 나약함을 대면하고 좀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누구도 타자화하지 말고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라는 숙제를 받은 기분입니다. 오행을 매끄럽게 문학작품에 녹여낼 수 있는 까뮈를, 감이당 학우로 만났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성 1학기는, 사주명리로 사유하고 고미숙 선생님의 구체적인 글쓰기 이론으로 무장한 다음, 세미나를 통해 나의 액면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걸, 발제문을 쓰면서 깨달았답니다. 의식의 흐름 상, 감이당은 참 좋은 곳입니다:)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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