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 2학기 에세이 후기 (2015년7월8일 우주와 마음-<여덟마리새끼돼지>) > 수요 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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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 2학기 에세이 후기 (2015년7월8일 우주와 마음-<여덟마리새끼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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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화동 작성일15-07-13 19:47 조회3,904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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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수성 2학기 <우주와 마음>(스티븐제이굴드<여덟마리 새끼돼지>)에세이 후기 /2015-07-08(수) 



3조 이단과 잉여에 대한 새로운 시선 (손민 박수자 김현화 최계숙)


질문)

  • 굴드의 잉여, 이단을 뭐라고 보는지? 잉여, 이단의 케이스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 (잉여, 이단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건 공부 안해도 우리가 아는 것 아닌가?
  • ‘나’를 주어로 쓰고 있는데 그게 가능한지? ‘우리’로 고쳐야하는 것 아닌지...
  • 처음부터 마음을 열고 조원들끼리 이야기를 했기에 가능했다. 그 사람 입장에서 써보는 것이 되더라. 
  • (다른 사람입장에서) 저런 부분도 있겠구나. 잉여에 대해 토론하며 생각. 잘못하면 자랑질이 될 것 같아 안쓴 것도 있다. 


  • 그 자랑질이 없는게 아쉽다. 오히려 넣고 그걸 분석해주었으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느낌만 글에 있는 건 아닌지...
  • 어떤 일에 대해 왜 지금까지 감정이 올라오는걸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이단을 진화론과 어떻게 연결하는건지 궁금하다.  본질주의에서 이단이라는 구분이 기존 시각이라면 그런 시각 자체가 안 바뀐 건 아닌지. 바뀌었다먄 위의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는 글을 썼을 것 같다. 
  • 깜짝 놀라며 봐야된다’가 나도 꽂혔다. 6년 동안 내가 한 행동도 내가 그 사람들을 이단 취급한 것일 수 있겠구나. “나도 그 사람들을 무시했구나.” 그냥 그들이 날 이단취급한다고 생각했는데.  
  • 마지막에 사주 이야기를 넣은 이유는? 어떤 의미인가?

- 원래 내용은 더 긴데 짤려서 맥락이 안보일 수 있겠다. 밴드글쓰기를 하는 이유, 굴드가 300편의 글을 쓴 이유 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각자들이 개체군에서 진화하는 것.

  • 이단, 잉여랑 어떻게 연결되는가?
  • 보통 우리는 표준, 평균에 얽매여 있다. 예를 들어, 굴드가 암 진단으로 8개월을 못 살 확률이 50%라고 한 부분. 서로 반면교사가 된다. 알맹이 짤린 껍데기 실린 기분도 있다. 굴드책 안읽어도 된다. 
  • 에세이 스타일. 자기 것이 잘려나간다. 버리기가 아깝고 스타일도 싣음. 결론은 아니다.?


  • 7쪽을 보면 뭔가 찜찜함이 있다고 썼다. 굴드에 대해 배워할 건 뭔지 모르겠다는 부분. 그걸 읽으니 그럼 내가 지금까지 읽은 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찜찜함은 뭔지?
  • 내 내부 욕망의 과잉이 있었다. 내 스스로 잉여일 수도 있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양성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를 합리화했다.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아 생각하게 되었고 굴드에는 뭔가가 더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찜찜함이다. 개인적인, 전체와 개인의 글이 섞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근영샘 

  • 기본적으로 얘네들을 사랑하게 되었나요? 왜 멋지냐는 것이다. 이단과 잉여라는 것 말고 걔네가 자기 삶에서 왜 멋진지를 얘기해주세요. 
  • 이걸 쓰면서 이걸로 충분히 됐다고 생각했는데 논의가 깊이 않았다는 지적인 듯하다. 굴드가 한심하고 속물적 생각이라면서 한 이야기를 읽고 ‘아, 그래 나도 이게 멋지게 생각돼’라고는 안나왔다. 굴드는 왜 멋있다고 하지? 수수께기, 비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단, 잉여라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는 생각되는데... 
  • 기존 생각에서 더 나가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크게 두 가지가 걸린다. 이단, 잉여가 중요하지 않고 그걸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단, 잉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의학을 공부할 때 한의학에서 몸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이런 게 공부다. 공부를 해서 자기만의 언어를 갖는 것. ‘몸’ 그것과 능동적으로 관계맺을 수 있다는 것. 
  • 최고의 문제는 이단, 잉여를 모르겠는데 계속 진행이 된다는 것. 밴드조원이 서로 ‘맞어. 우린 서로 공유하고 있어’라고 하지만 막상 말 꺼내 보고 그럼 성분이 다르다. 어떻게 사람이, 가족이 그럴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건 심정적으로 말하는 것이데 서로 다르게 보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이단과 잉여를 인정해야돼’는 공유가 되었는데 이단, 잉여를 각자 뭐라고 생각하는지? 우리들에게 ‘얘네 멋지지 않니?’ 하고 강요하고 있다. 손자나 아이 사진 보여주면서 귀엽지 않냐고 할 때 우리가 영혼없이 대꾸하게 되듯이. 여러분에게 진짜 그 두 존재가 설득이 되었나?   
  • 이단, 영여 개념 정리를 먼저 하고, 두 개에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할 수 있다. ‘다세포 생물계에 중요한 진화적 역사’를 갖는다 말고(이건 너무 피상적이다), 여러분의 삶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2학년이라면. 내가 쓰는 언어를 정리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개념정리까지가 동의가 되면, 그 뒤의 개인사들도 새롭게 읽힐 수 있을 듯하다. 
  • 두 번째 문제는 굴드에 대한 책을 읽고 쓰면서 굴드에 대한 것이 없다. 우리 아들이 너무 이쁘면 막 보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 이 조에는 굴드가 너무 좋아서 미치겠다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다 내 얘기하기 바쁘다. 글 자체가 배신이다. 다른 사람(자기가 아닌 사람. 굴드)의 이야기에는 별 애정이 안보인다. 글 자체가 주제를 배신하고 있다. 이단과 잉여를 주루로 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듯 하다. 이런 것은 자주 하는 실수인데, 내용과 하려는 이야기가 다르다. 
  • 굴드는 모든 변종을 다 보호하는데 찬성하지는 않았다. 잡다하고 산만한 글이 되지 않으려면 그게 이단과 잉여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잡아야한다. 여러분이 거기 앉아서 제 뒤통수를 볼 수 있나요? 못 봐요. 모든 걸 다 보겠다는 객관적 시선이야말로 문제다 .굴드를 통해 모든 진실을 보여주겠다는 식은 굴드 답지 않은 것이다. 첫 프로포절에서부터 이야기했다. 8장 분량 중에 굴드의 이야기가 너무 적다. 자기 마음장의 비율이 드러난 게 아닌가. 애정도 각자 삶에 대한 애정이 너무 깊다. (그러한 자기 삶에서) 잠깐 떠난 보려는 것이 아니었나? 여러분 안의 이단, 잉여에 집중할 수 있나?
  • 편견을 버린다는 말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까 ‘찜찜함’이라는 부분에서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굴드가 이렇게 말했잖아.’로는 안된다. ‘이단과 잉여란 이런 거구나.’만 제대로 해도 의미있는 일이다. 텍스트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보인다. 


1조 한계와의 새로운 만남 - 굴드를 통해 한계와 대면하기

(엄미애, 이미영, 이혜진 최윤순 한정혜)


질문)

  • 새로운 환경에서만 ‘한계’가 생겨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예를 들어서, 매일 접하는 환경인 가족 안에서도 매일 한계에 부딪치는 데.
  • 한계와의 새로운 만남이 제목인데 뭉친 특성 부분이 결론인건가? 
  • 한계를 내적 조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결론이라 할 수 있다. 
  • 한계를 내적 조건으로 보는 건 알겠다. 그런데 사람냄새가 너무 안난다. 과학책 정리한 것 같은 느낌. 우리 삶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근영샘 

  • 여러분에게 (글을 쓸) 시간이 더 있다고 생각하고 정리해보자. 
  • 선택지가 앞에 있는데 그 그중에서 선택한 게 아니라, 몸집이 커진 것인데 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개인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는 각각의 종들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그건 한계냐, 선택이냐? ‘내적 조건이 가능성인가?’라는 질문과 ‘내적 조건 안에 다양한 풀pool이 있다’는 다른 이야기이다. 한계는 limit이다. 경계는 boundary이다. 무제약, 무규정의 상태가 규정이 된 것. 그 매듭이 한계이다. 예를 들어, 수정란. 그게 무규정이라면 수정란이 될 수 없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뭉쳐놓는다고 글이 되지는 않는다. 규정이 되어야만 매듭이 생기고 여기까지가 머리, 여기는 다리 이렇게 매듭을 지을 수 있다. 그게 한계이다. 그것에 의해 identity도 생긴다. 기타줄을 예로 들면, 그냥은 소리가 안난다. 그런데 매듭(코드)을 잡아주면 소리가 난다. 그게 limit이다. 매듭이 있으면 구분이 된다. 중심과 주변부의 문제를 전제한다는 게 ‘경계boundary’이다. 
  • 경계와 한계는 이렇게 포인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쓰인다. 어떤 단어를 쓴다는 것은 그 단어가 품은 전체 영토를 들고 오는 것과 같다. 무제약을 제약하는 것이 한계이다. 경계는 중심과 주변, 이단, 잉여의 문제를 담고 있다. 
  • 이 조는 내적 조건으로 정의하고 출발하려 했다. 그런데 하다말았다. 그 이유가 뭘까? 더 밀고 나갔어야 했다. 더 가야할 지점에서 멈추었다. 각자 맡은 부분에서 앞의 내용은 응축하고 문단의 뒤에 있는 마지막 부분을 더 밀고 나갔어야 한다. 서로 눈치를 본 것 같다. 누구든 한 명이 치고 나갔어야 한다. 소심하게 안전빵으로 가고 있다. 
  • 발제가 발췌와 다른 이유는 적극적으로 내용을 구성한다는 지점이다. 여러분이 쓴 글들이 왜 설명처럼 보이는가? 내 관점이 안 정리되고 안 드러나서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익티오사우루스를 잘 정리하면 윤리나 나올거야 생각한 거다. 그런데 내가 윤리적 측면을 만들어가는 거랑 익티오사우루스를 해석하는 측면이 같이 가야 한다. 적극적으로. 잘 정리하는 것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문단 마지막에 ‘내적 조건은 독특함을 낳는 가능성이다.’라고 썼다. 그렇다면 글을 구성할 때부터 얼마나 독특해졌는가의 측면으로 가져가서 썼어야 한다. 선조의 감각적 편견을 가졌다는 부분도 ‘다양한 융통성을 가진 큰 틀’이라는 측면에 맞춰 썼어야 한다. 스토리를 바꿔내야 한다. 
  • 전체적으로도 글들이 적극적으로 구성이 안되었다. 목차가 병렬적이다. 내적 조건에서 어떻게 전후, 좌우 매듭이 지어지는 지, 그런 지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스토리가 된다. 글이 전체도 그렇고, 부분도 그렇다.(매듭이 안지어지고 스토리가 없다.) 
  • 문제의식을 놓친 듯하다. 진화에서 내부조건이 뭔지? 다른 세계관을 만나고 싶다면 지금 세계관은 뭔데? 1쪽 처음 5줄의 내용에 대해 대답이 스스로 되었나? 무한경쟁은 무한개조를 원하는데 이 문제의식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 
  • 익티오사우르스가 어떻게 보여지는 것. 어떤 식으로 변형된 건지? 그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 내가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하나의 팩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그 스토리를 안에서 함께 생각해내지 못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문제의식을 놓치고 소극적이 되었다. 적극적으로 스토리를 구성해야한다. 



6조 미래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김봉선, 박일호, 양미화, 임길례)


질문)

  • 제목도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고 2쪽 대멸종. 달라진 규칙 모형에서 쓴 말들이 달라진 규칙 모형을 잘 이해못하고 하는 말 같다. 
  • 문제제기가 어떤 부분인지 잘 모르겠다. 
  • 진화는 진보가 아닌 것에 포커스가 있다. 


근영샘

‘달라진 규칙 모형’, ‘우연’ 이 표현이 반복해서 쓰이고 있는데, 어떻게 구분하여 쓰고 있는건지?


질문)

  • 인류도 멸종한다고 했고. 5쪽 중간에 새로운 인과법칙을 이야기하고 있고 5쪽에 버티면 보상받는다고도 한다.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6쪽 밑에서 5째줄에는 그저 자원획득에 유리하다고 하는 데.. 어떻게 맥락을 잡아야할지 모르겠다. 
  • ‘달라진 규칙 모형’이 뭔가요?
  • 쐐기의 반대말이다. 

근영샘 : 그 반대쪽이라는 게 뭘까요? 이 조는 positive한 글이, 정의가 안나온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럼 진화는 뭐지? positive한 방식으로 “○○다.”하고 정의를 내린다면?

  • ‘필연적 우연’이라고 본다. 휴면포자를 가진 규조류의 예도 이겨냈다에 포커스를 맞춰 썼다.
  •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달라진 규칙모형’처럼 느껴진다. 

- 이겨낼 수 있었던 것, ‘발현’된 것.  

  • 새로운 환경에서 발현에 초점을 두었다. 
  • 우연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그런 표현으로 쓰고 있는 건가?

근영샘 : 지금 쓰는 ‘우연’이라는 말이 ‘내가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긴다.’, ‘여름 다음에 봄이 온다.’가 우연인 건 아니죠. ‘미래가 불확실하다’가 우연은 아니다. accident이다(?) 예기치 않은 사건. 굴드의 우연은 개념적으로 다르다. 이전과 다른 규칙이 온 것이 ‘우연’은 아니지 않나? ‘우연’은 굴드가 심플하게 정의해준게 있는데... 이것들을 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나? 

  • 네. 같다고 생각했어요. 

근영샘 : ‘합리적인 예측 불가능성’ 목적론적이 아닌... 희진샘이 질문한 문제의식이 그것였나요? 

- 4쪽 밑에서 3번째 줄. ‘달라진 규칙’ 안에서의 생존조건. 


근영샘 : 문제의식은 공유된 거예요? 

  • 21, 22 에세이가 좋아서 한 건데...

근영샘 : 다른 반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조의 목적은 “규칙이 바뀐대. 어떻게 적응하며 살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게 아닌가? 충분히 죽을 수 있다. 대멸종이니까. 그 조는 여기보다 더 심하게 드러났다. 불안한 미래. 어떻게 대비하지? 안전한 투자방법이 없구나. 규칙이 바뀐대. 이미 마음이 그런 식의 전제가 되어 있으니까 답도 마뜩지 않게 나온다. 처음에 문제의식을 던지고 시작한게 아니라서 그렇다. 문제의식은 문패와 같다. 

- 맨 앞에 안쓴 건 우연이고. 어떤 대응을 해야하나 하다가 공동체가 답으로 나왔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애. 했다. 마뜩치가 않았다. 시선을 바꾸는 것에 의미가 있을 듯하다.

근영샘 : 착각이다. 질문이 ‘달라진 규칙 모형’에 있는 거예요, ‘생존조건’이 포인트인 거에요? 

  • 생존조건에 있는 것 같다. 

근영샘 : 어떻게 하면 적응할까. 적응기제. 그러면 ‘적응’ 이전의 적응기제에 대해 굴드를 배우기 전에 어떻게 생각했나? 어떤 시공간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달라진 규칙’ 이것에 대해 쓰면 규칙이 바뀐다는 것. 숙명처럼 다가오는 어떤 것. 법칙이라는 측면. 대립되는 면으로 놓고 고민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생존조건’을 놓고 본다면 대립은 양측면은 무엇인가?

  • 예전에 대부분 인과관계로 사유했다. 그런데 굳이 인과관계가 없을 수도 있구나. 

근영샘 : 어떤 인과인가? 

  • 예를 들면, A가 B를 가져온다면 반드시 B가 된다고 생각. 그런데 대멸종에서는 꼭 그게 아닌 우연도 많더라. 

근영샘 : 이전에 알던 생존조건은 뭔가? 

  • 경쟁. 투쟁. 타인 제거. 그래야 내가 정점에 선다. 굴드 책을 읽오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고 생존규칙이 달라질 수도 있구나 생각. 내 몸이 아프더라. 계속 예전을 추구했는데 계속 내 몸이 아팠다. 내가 애써도 되지 않는, 예측할 수 없는 것.  
  • 우리의 시간은 생로병사인데 왜 진화를 배워야할까?(공동주택 길냥이 중성화 수술 관련 단상 이야기) 제가 설득하지 못했다.

근영샘 : 독특성과 전문성이 같진 않다. 그리고 여기에 와서 우리는 합의가 안됐어 하는 경우가 있는데. ‘설득을 당하는 것도 능력!’이다. 내가 어디서 생각을 덜 하고 있고, 저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생각하는구나.하고 아는 것. 거기에 그 마음을 얹지를 못한다. 그 시선에 가서 설 수 있는 것. 스스로 실험해보아라. 그게 밴드글쓰기다. 그러면 진다고 생각한다. 저도 그렇다. 그렇게 마음을 얹는 것이 마치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런데 내 뒤에서야 내 뒤통수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앞에서 뒷모습이 아름다운지 알 수 없다. 뒤로 가서 보는 게 능력이다. 


근영샘 : (조원들 이야기 들어보고) 질문의 지점이 다초점이다. 우연에서 달라진 규칙으로 다시 대멸종으로. 연결 안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디에 포커스가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생존조건을 하려고 해도 ‘달라진 규칙’을 더 깊게 했어요. 마음이 급한 조들이 주로 21, 22번 에세이를 많이 쓴다. 그래서 타이어를 샌드롤 어떻게 바꾸라는거야 한다. (웃음)

어떻게 해야지 이전에 perspecitve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관점이 도출된다. 걸어서 보는게 다르고 서서 보는 게 다르듯이. 자꾸 급하게 가는데 ‘달라진 규칙’을 충분히 이해하면... 예를 들어, 우리 인생에서 10대, 30대, 50대의 여자로서 삶의 규칙이 달라져야하지 않나? 근데 ‘난 여자로서 끝났어.“하는 건 이건 달라진 규칙으로 이야기하는게 아니지 않나? 단순히 예전 인과가 지금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들. 시간에 있어서 달라진 규칙만 이야기해도 나중에 이야기할 게 많다. 초점을 못 맞춘 것이다. 그러다 남은 건 그래서 어떻게 하지?만 남게 된 것! 


  • 내가 지금 뭘 질문하고 있지? 확인한 후, 여러분이 하는 것보다 한 번 더 좁혀야한다. ‘달라진 규칙 아래에서의 생존조건은?’이 질문이라면 한 번 더!  ‘달라진’에 초점이 있나, ‘생존’에 있나? 이렇게 자기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이걸로 충분하다. 한 번 더 좁혀보자. 내가 한 번 더 질문하고 문제를 좁히면서 습관적으로 빠지던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 질문을 놓치면 글이 산으로 간다. 두리뭉실해지면서 좋은게 좋은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뒤의 윤리도 좋은 말 모음이 되어버리고 맥빠진 글이 된다. 우연과 달라진 규칙은 다르다. 내적 힘과 내적 힘의 길항작용으로 제 3의 길이 열리는 것이 우연이다.
  •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있다. 굴드의 말을 표절하듯이 쓰고 있다. 굴드의 말이 거의 그대로 본문에 인용없이 쓰이고 있다. 이런 글은 여러분 글이 아니다. 충분히 소화되어 쓰인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마음이 급한 게 드러난다. 달라진 규칙이 뭐지? 우리 작은 일생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 걸까? 예를 들어, 우리는 성장하는 걸까? 규칙이 같아야 성장하는 건데 규칙이 달라지니... 한 번 더 쓰면 뭔가 나올 듯. 아 이제 됐다 할 때 한 번 더. 그리고 미래란 안 정해진 거지, 우연은 아니다. 



5조 ‘우연’으로 만나는 세상 *장원* 

(김희진, 채영님, 이소영, 정기재)


질문)

  • 저희 조랑 비슷한 지점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건가? 어떻게 도움이 될까?
  • 이 조에서는 내적 한계를 뭘로 보는 건지? 
  • 내적 한계는 구조적 한계 부분으로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익티오 / 귀뼈) 
  • 생명의 구조적 한계로 봤다. 


  • ‘긴장’이 새 길을 여는데 작용하는 지점은 뭘까? 
  • 이단과 잉여(최적적응이란 부분)에서 우연이 발생. 우연은 잉여적 요소가 가진 불완전성에서 발생하지 않을까? 약간 산만해지지만 언급해놓고 싶었다. 

근영샘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우연 때문에 최적적응이 안된다. 그 불완전성 떄문에 새로운 우연의 길이 생긴다. 

  • 중복성, 잉여는 우연에 들어간다. ‘우연’이라는 진화적 힘을 중심에 놓는다. 그것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목차 4번과 5번에 혼란이 있다. 외부, 내부의 정묘한 긴장을 쓰고 싶었던 거죠?
  • ‘우연’ 용어의 혼동이 뒤에 나온다. 우연의 정묘한 긴장이 체현된 결과가 중복, 잉여다. 내적 구조의 우연을 쓸 수 있지만, 자연의 우연성은 달라진 규칙 부분까지 들어오면 글이 정신없어진다. 4번에서 5번으로 넘어가기가 힘들다. 이 긴장을 통해 우년은 어떻게 우리에게 드러나느냐. 우리를 웃게 만드는 힘은 기쁨인데 웃음을 보는 거지 기쁨을 볼 수는 없다. 우연은 어떻게 드러나나? 


  • 4쪽 밑에서 4째줄에 ‘뜻밖의 순간’을 말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 내가 공부한다고 원하는데 가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남자와 원하지 않는 시기에 아이를 낳고... 뜻밖에서 아이가 공부를 안하고...  (웃음)


근영샘 

그런데 내 뜻대로 하는게 자유냐? 그건 자유가 아니다. 그건 숙명이다. 내가 가지고 온 사유체계, 몸의 관성대로 가는게 자유냐? 새 숙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국가나 사유처럼 나도 내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 불완전한 적응. 중복으로 체현. 나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나에서 벗어나기. “뜻밖의 순간” 그게 자유다. 진정한 자유란 그 법칙, 내 법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걸 또 내 의지대로 벗어나는 것. ‘뜻밖의 순간’이 내 자유라는 지점. 진화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두 힘이 충돌해야 한다. 두 힘의 분투여야 한다. 벗어나려면 부딪쳐야 한다. ‘사건의 순간’ 내 생각대로 되는 것?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게 자유다. 내 법칙에서 벗어나기. 다른 힘과 부딪치는 것을 통해. 그것 밖에는 없다. ‘달라진 규칙’으로 나를 이끄는 것. 존재. 분투. 우연. 두 힘의 마주침.에 포인트가 있다. 정말 ‘타자’를 만나야 다른 길로 갈 수 있다. 


  • 어디로 진입해 들어가 어디를 탐사할지 잘 붙잡고 있는 글이다. 따라가기, 읽기 쉽다. 4분이 길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포인트가 내적 한계가 무엇이다, 이런 게 아니라 둘의 충돌, 긴장관계에 속에 두고 있기 때문에 내적 한계, 외적 한계가 뭔지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안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1조와) 똑같은 글이 아니다. 이 집요함. 이렇게 써야 한다. 그런데 4번으로 넘어갈 때 좀 꼬였다. 마지막 일상윤리가 정리되면 어떨까? 자유로도 연결될 것이다. 내적 한계쪽으로 포인트가 옮겨가면서 우연으로 가서 불완전한 신체-중복성으로 정리하면 될 듯. 마지막 자유 문제까지도 정리해보면 좋겠다. 



4조 굴드의 ‘진실성’에서 ‘진화’를 배우다 

(심남희, 이경숙, 이소민, 장현숙)


진실성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


근영샘 : 4분의 이야기가 다 같다고? 누구 걸로 손들어주실 거예요? 다시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정리해서. 대구 경기장. 이 이야기가 너무 애매하다. 예를 들어, 부채가 있다. 조선시대 부채. 이게 박물관에 있다. 이게 굴드의 진실성이냐?

  • 일상 사용의 용도를 잃으니까 진실하지 않다. 
  • 예전 부채니까. 용도가 변경된 건 아니지 않나?

근영샘 : 대구 운동장. 새로운 건 새로운 환경을 구성해야 하는 건 아닌가요? 대구 운동장이 박물관이 되면 진실성은 잃겠지만 없어지는 건 환경이 되는, 환경을 구성하는 게 되나? 

  • 용도의 진실성으로부터 공동체가 탄생한다. 그게 굴드가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사물, 장소를 다루려다 ‘진품’이라는 단어를 쓰려다가 헷갈려버린 듯. 용도로만 썼으면 좋을 듯. 

근영샘 : 진품을 박물관에 두려는데 거꾸로 질문해야한다. 어떤 것이 진품인가? 그 말을 끌고 용법 자체를 바꾸길 기대했지만 진품에 끄달려가 쓰임을 당하셨어. 다하셨어. 


근영샘 : 5쪽 문단 왜 바꾸셨어요? 

  • 앞은 공동체 이야기이고, 뒤는 메뉴이야기라 구분된다고 생각했다. 

근영샘 : 연결 안된다고 생각한 건가요?

  • 다른 예라고 생각했다. 
  • 저희는 (특정 문장을) 누가 썼는지 몰라요. 써와서 연결하고 연결해놓은 것을 보고 고치고 했다. 물론 대구 운동장은 확실히 안다. (웃음.)

근영샘 : 확실히 동의 되신 거냐? 대구운동장

  • 다양성에서 또다른 종이 탄생한다.
  • 똑같은 메뉴였지만 단골에 따른 다양한 메뉴가 생길거니까 새로운 메뉴, 다양한 종의 탄새이다. 

근영샘 : 새로운 메뉴로 안 올라온 거잖아요? 손님 몰래 버터 빼주는 것이지. 예를 들어, 핵심은 메뉴의 변종이 탄생할 때 공동체이기에 생기는 것.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다시 공동체가 아니라 공급자, 수급자의 관계로 되는 건 아닐까요?

  • 단골에 맞춘 메뉴. 지역적 특색에 맞는 것 개발되니까. 

근영샘 : 공동체가 없다면 가능한 일인지. 이게 두 개가 따로 되는 종분화냐? 공동체가 되는 것과 새로운 메뉴라는 종분화는 다르다. 따로 된다고 하는데 같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근원적인 현상이 드러나게 되는 표면적 현상이 있다. (웃음,기쁨 예처럼)

  • 공동체성이 드러나는 게 버터를 빼주는 것에서 드러난다. 근데 왜 그게 연결이 안됐을까? 그걸 생각해보셔야한다. 얘기가 모아지지 않아서. 끈질기게 쫓아가 보는 것은 이글의 중요한 지점이지만 그걸 보아야한다. 짜르고 응축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수, 금 기운 부족? 잘 쫓아갔는데 진실성이 뭐지? 하면 헷갈려한다. 해결해야할 지점에 빈 칸. 
  • 환경구성. 일상성. 공동체성. 단도리.. 환경에 대한 입장이 흔들린다. 진실성 7쪽은 앞 내용 끼우려고 하면 이상해진다. 앞에서 환경을 그렇게 정의 안했는데 환경과 어떻게 관계맺을까 이러면 이상해진다. 나와 환경, 환경 구성을 어떻게 할까? 거기서 일상성, 공동체성이 나온다. 식구라는게 원래 그렇다. 그리고 구성이 안되니까 이념으로 뭉치고 그러는 거다. 드문드문 나오고 찐하게 나오는 데고 있고 그러는데 그걸 정리해야한다. 그걸 진화적 측면으로 가져와야 한다. 힘있게!
  • 일단 환경 자체는 일상적인, 지속적인 시간, 공간을 공유하는냐. 개체가 맺는 관계. 그렇게 환경을 같이하는 공동체가 탄생. 여러 군데에서 탄생하며 다양해진다.
  • 나라는 생명체가 환경과 구성하는 맥락이 다양하다. 가족. 감이당 등. 그게 일상성과의 관계가 이 공동체, 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더라. 우리 관계는 이미 공동체. 다양한 공동체로 구성된 삶이더라. 내 일상의 일부를 함께 구성하고 있다. 시간을 오래했을 떄 생겨난 공동체. 

근영샘 : 시간이 지나면 그냥 공동체가 되나? 다양해지나? 

  • 맥락. 시간이 오래 지나면 맥락이 생겨날 확률이 있다. 
  • 시간을 오래 한다고 맥락을 꼭 공유하는 것도 아니긴 하다. 환경을 구성해야 한다.

근영샘 : 시간이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강도intensity도 있다. 

환경, 일상, 다양성, 공동체를 각각 어떻게 정리했는지?

  • 내가 어디에 가서 있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어딘가에 가서 사물, 환경,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 오래 알고 지내는 이들이 있다. 거의 매일 보고, 이야기를 하고 일상을 같이 하고. 시간의 강도도 쌓이고. 한 명 한 명하고 공동체 같다. 그들이 다양하다. 

근영샘 : 4가지 문제를 연결. 그럼 일상의 다양성.

  • 나를 둘러싼 일상이 많다. 이 모임, 저 모임이 있는데 있는 것, 없어지는 것이 있다. 시간이 길지 않아도 진실한 모임이 있고,... 이런 다양성. 


근영샘 :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안 찝찝하세요? 마무리를 하셔야 깔끔할 듯. 하실 수 있을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가장 큰 숙제는 지금 말한 환경, 다양성, 공동체, 일상성을 진실성으로 정리하는 것. 환경에 대해 왔다갓다하고 있는 것에 주의하면서. 

7쪽 진실성도 약간 달라질 거고, 3-4쪽 단일한 종 거기서부터 살짝 고치고, ‘따뜻함’을 종분화랑 연결시 ‘분투’랑 연결되고 환경을 구성하는 분투도 있다로! 

분투=경쟁으로 보는 구도를 끊어내고 진품을 박물관과 끊어내기. 

살펴보니 종안의 경쟁 거의 없더라. 종안은 협력관계가 우월하다. 그게 종분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협력하는 애씀도 있다. 분투는 애쓰는 것인데 애쓰는 방식 중에 경쟁도 있고. 협력도 있을 수 있는 것. Strugle for existence. 옛마을 공동체의 한 방식. 경쟁구도가 이미지의 표상이 되어버렸다. 월요일까지 정리해보아라. 



2조 예측불가능성의 독창성

(김무웅 김현숙 김보희 안지애) 


질문)

  • 예측불가능성의 독창성. 제목과 내용과의 관계?
  • 21, 22번 에세이. 프로포절 후 코멘트 듣고 풀어가는데... 방향이 처음 잡은 거랑 왔다갔다 하면서 결국 ‘독특성’으로 잡았다. 

근영샘 : 관목형은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바로 연결했네요. 변화방식이 예측불가능한거죠.

  • 럭비공 튀듯이 튄다. 
  • 사다리형은 목적적이고 단계를 밟는다. 

근영샘 : 관목형과 예측불가능성을 어떻게 연결한건지?

-가지가 나온다는 게 어디서 나올지 모른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관목은 툭툭 나오고. 

근영샘 : 우리 무지에 의한 예측불가능성과 원초적 예측불가능성을 구별해야한다. 

  • 환경이 변하고 예측 불가능하니까. 

근영샘 : 인간의 몸이 (환경처럼) 변해도 일반화시켜서 한의학을 하지않나. 환경은 끊임없이 변해. 이런 건 나이브한 말이다. 1학년 첫 학기때 쓰는 글이죠. 


  • 이후 계속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근영샘 이야기만 정리해보겠다. 

근영샘 

  • 얘기가 뭉개진다. 은근슬쩍 다른 데로 넘어간다. 질문에 딱 대답을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무마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 단순히 모른다면 과학은 왜 하나? 예측불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한계 문제가 아니다. 신이 와도 모르는 것.원래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직 모른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 여러분이 그걸 생각하며 했느냐? 그 차이? 그리고 이 자리에서 안 풀렸던 것을 도움을 청하든지 아니면 그걸 글로 쓰든지 해야한다. 
  • 다양하게 변이하기 때문에 예측불가능하다. 이렇게 여러분이 이해하신 거냐? 그렇다면 ‘다양성’이라고 써도 되는건가? 그냥 A는 A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다음을 모른다. 그 이유는? 그 이후는? 이런 것을 고민해야한다. 우린 어떻게 할 것인지. 
  • 예측불가능성. 진보. 독창성이 같은 이야기인가? 왜 같으냐? 같다고 놓고 출발하는 게 문제다. 진보는 예측가능하고, 관목은 예측불가능하고. 예측불가능한 것은 독창적이고. 이렇게 그냥 연결하고 있다. 그런 건 신념이다. 이유를 짚어서 설득해야 한다.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처음부터 계속 동일한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프로포절 때부터. 오늘 제목을 보고 해결하신 줄 알았다. 해결없이 와서 우기고 있다. 예측불가능한 발전! 이 제목을 가져왔으면 해결을 해왔어야한다. 각자 어디까지 해결됐는지 얘기해보자.
  • 문제가 모여지지 않았다. 우연에 대해 개체변이가 중요한 것 같다 하면서 방향 어긋났다. 그러다 예측불가능성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코멘트 받고 엉켰다. 맞지 않은 걸 버리지 못하고 독창성과 연결헀다. 
  • 잘못을 묻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해결된 지점, 안된 지점을 아는 것. 보통 나의 한계와 조건을 알기 힘들다. 보통 이런 질문에 반성문을 쓰거나 반박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걸 알아야 그래야 다음에 이 지점을 출발점 삼아 시작할 수 있다. 
  • 답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을 새롭게 얻는 것. 그게 공부다. 인문학적 공부가 다른 건, 질문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질문을 던졌어야 한다. 내가 당연시 여기는 전제들을 넘어선 느낌이 없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질문해라. 내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제를 “이건 이거야.”라고 해놓고 출발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걸 풀어내야 한다.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걸 풀어내야 한다. 
  • ‘온 시기, 온 규모에 걸쳐서’라는 부분은 더 생각해야할 부분이다. 종분화가 독창적인가? 문제의식 자체가 예측불가능성은 독창성으로 연결시켜버리는 데 어디서 연결되는지 모르겠다. (스스로가) 해결 안되는 데 해결된 것처럼 쓰는 건 좋지 않다. 이런게 디펜스(방어)를 하게 한다.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이 조는 비겁인가? 뭔가를 계속 막으려는. 땜질. 그런 느낌이 센 글이다. 모르는 건 부끄럽지 않다. 모르는 걸 감출 때 부끄럽다. 
  • 그래야 다음 스텝으로 나아간다. 


  • 에세이는 새로운 시작이다. 다음 학기에 가져갈 숙제다.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져주는 것이다. 에세이날이 끝났다가 아니라 어떤 숙제를 안고 가야 하는 거다. 내용도 그렇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어떻게 풀지 숙제를 안고 가는 거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들~ 다음 스텝을 향하여!>

댓글목록

김보희님의 댓글

김보희 작성일

와우~~~ 거의 초인적인 후기네요.^^ 다음 학기 숙제로 고이 가져갈게요~~

파랑소님의 댓글

파랑소 작성일

으헉 선생님 이토록 꼼꼼한 후기를. 감사합니다. ;-) 그때 그 현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ㅎㅎㅎ 선생님 덕분에 마무리 잘 하고 갑니당~

구름을벗어난달님의 댓글

구름을벗어난달 작성일

세상에 이렇게 자세한 후기를!! 후기가 한 편의 에세이네요~ 캄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