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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2주차 7.27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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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경아 작성일16-07-29 22:46 조회2,4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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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역학 : 채운샘 / 파시즘의 대중심리 (빌헬름 라이히) 2번째 시간 (서문~7장)

-프로이트의 개인심리 VS 라이히의 대중심리

라이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인류 보편성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어떤 모계사회에서는 친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아버지라는 호칭 자체도 없는 사회에서는 친부에 대한 증오와 같은 양가감정이 없다. 그리고 오이디푸스도 친모가 엄마인줄 모른 채 관계를 가졌는데 이것이 어떻게 근친상간의 욕망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인칭/서열이 없는 사회에서 자유로운 성생활은 질투, 소유욕이 없고, 억압, 신경증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국가/종교가 관리하지 않아도 성은 “자연스러운” 논리에 의해 조절되며 아무렇게나 관계가 발생하지 않는다. 라이히는 성에너지를 인위적인 방법으로 억압하지 않을 것을 주장한다.


- 1장 물질적 힘으로서의 이데올로기

맑스주의자들은 이데올로기는 허구이며, 가난하고 억압받는 대중들이 국가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계급의식이 부족해서 교육을 더 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라이히는 대중이 무지해서가 아니라 대중의 욕망이 부르조아의 욕망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봤다. 이데올로기는 허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대중을 추동하는 물질적 힘이라는 것이다. 가부장적 가족주의로 인해 순종적이 아이들이 만들어지고, 그런 아이들은 국가원수에 자신의 욕망을 투시하여 그들을 지지하게 된다.


"사회심리학은 전혀 반대되는 관점에서 문제를 파악한다. 즉 설명되어야 할 것은 배고픈 사람들이 도둑질을 했다거나 착취당한 노동자가 파업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들 중 대다수는 왜 도둑질을 하지 않는가? 또 착취당하고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왜 파업을 하지 않는가라는 사실이다. (55쪽)"


 배고픔이나 억압도 견디게 하는 더 큰 힘, 그 도덕적 층위, 이데올로기이다. 자신의 존재조건이 위험에 빠지는데, 자신을 불행하게하고 억압하는데 인내하고 욕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중의 성격구조(욕망, 무의식,이데올로기)는 생체-심리학적 분석이 필요한 이유이다.


- 라이히 문제제기 이후 그리고 지금

푸코는 ‘일반적’ 성이 억압되었다기보다는 사회마다 실천/담론으로서의 특정 성이 출현한다고 했다. 가족을 통해 성을 관리하며 개인/신체를 길들이는 근대권력에 주목했다. 보편적 도덕관념으로 성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은 자신의 몸, 욕망에 대한 각자의 윤리이다.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문제로 접근해야한다. 가족을 이루어도 성을 독점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가족중심주의, 극우 민족주의가 더 견고해지는 지금도 분석조건은 달라졌으나 문제제기는 유효하다.


2. 독송수업 – 절기서당 : 여름

입하(立夏) – 양력 5월5일 전후, 사월(巳月), 중천건괘, 집중하는 마음

소만(小滿) - 양력 5월21일 전후, 사월(巳月), 보릿고개, 시련이자 성숙을 위한 통과의레

망종(芒種) - 양력 6월5일 전후, 오월(午月), 열정과 실천의 때, 양기충천

하지(夏至) - 양력 6월21일 전후, 오월(午月), 천풍구괘(아래음효,5개양효), 음기보전노력

소서(小暑) - 양력 7월7일 전후, 미월(未月), 천산둔괘(물러나야 형통하고 이롭다), 금화교역, 버티기!

대서(大暑) - 양력 7월23일 전후, 미월(未月), 長夏, 무겁고 습한 시기. 정면돌파


3. 글쓰기 수업 : 야생의 사고(레비 스트로스) / 채운샘


- 야생의 사고, 신화적 사고, 대칭적 사고

존 케이지의 ‘4분33초’라는 실연주 없는 퍼포먼스와 금강경의 ‘A卽非A, 名A’ (A는 A가 아니다, 이름하여 A라한다)을 통해 대칭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 A는 불변의 동일성을 유지는 하여 A가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면서 A가 유지되는 것, 그것을 A라 부르는 것이다. A는 ‘A가 아닌’ 것을 포함한다. 나라고 하는 것이 나로 개체로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전체 질서의 변용과 연관 속에서 존재한다(스피노자).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我/非我를 깨지 않고 해결하려하면 불가능하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감정, 지식, 신체들조차도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 유지된다.

문화(비대칭성)/자연(대칭성) 사이에는 억압이 작동하여 변용을 일으킨다. 비대칭적 사고는 나는 나이고 너는 너로 구분하는 것이고, 대칭적 사고는 심층 무의식에 존재하는 我/非我 구분이 없는 사유이다. 대칭성의 세계에서는 문화/자연 사이에 틈이 있어 신화, 의례를 통해 자연의 대칭성이 자연스럽게 문화로 넘나들어 억압을 해소하면서 일상으로 흘러들었다. 삶/죽음, 사람/동물, 남/여 사이를 넘나드는 대칭적 사고는 위계를 일시적으로 만들어 국가를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 마을 공동체처럼 我/非我 를 넘어서는 경험을 할 수 없다. 과연 야생의 사고가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고민해볼 지점이다. 혁명이 국가를 전복하는 혁명 말고 없는 것인지, 자본주의에 포획되지 않는 관계란 어떤 것인지.


- 1장 구체의 과학

브리꼴라쥬(손재주,손기술)는 신화적 사고 방식을 설명한다. 명확한 개체성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재료) 속에서 시작하므로 시작/끝을 갖는 목적성이 없다. 각 사회마다 주어진 재료가 다름에도 +/-로 각 속성을 정리해보면 기본적인 논리구조들은 동일하다. 사회마다 우열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문명/역사/발전 개념은 서양사회 자기들만의 기준이고, 오히려 신화적 사고는 구체적 현실을 기호와 상징을 통해 기호화하는 고도의 사고이다. 구조/사건, 대칭성/비대칭성 사유는 선/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사유된다는 것이 중요하다.(76쪽,82쪽)


-9장 역사와 변증법

사르트르는 ‘변증법적 이성비판’에서 이성은 스스로 발전한다는 주장은 문명/미개 이분법적 사고이다. 레비는 이성의 발전을 부정하며, 사회마다 사고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 반박했다. 그 시대, 그 장소의 구체성이 결여된 역사의식은 관념일 뿐, 사르트르에게 역사가 신화가 되어버리는 모순이 발생한다. 문명인의 필요성에 의해 역사를 만들어냈지만(건국신화,제국주의) 야생의 사고에서는 역사라는 것이 불필요해서 만들어내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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