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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3주차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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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른나무1918 작성일16-08-09 21:59 조회2,9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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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역학 수업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채운샘 강의 

18세기 초 까지도 범죄에 대한 처벌은 범죄 그 자체에 대한 처벌이었다. 도둑질을 하면 손목을 자르거나 중대한 범죄면 공개적으로 거형에 처하는 등 신체에 직접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처벌하였다. 19세기가 되자 범죄는 감옥에 가두고, 교정하고, 정상화 시키는 방향으로 바뀐다. 푸코가 말하는 규율권력이 작동한 것이다. 범죄를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는 여자가 아이를 죽이는 범죄는 누구에게도 이득이 없다. 아이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는 여자도 이득이 없다. 범죄 자체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본능을 실체로서 조직하면 설명이 가능하다. 범죄자들에게는 범죄자의 내면성(범죄성)이 있고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은 범죄성이 있다. 여기에는 정신분석이 사법기관과 손을 잡고 법정에서 인간의 내면성을 해석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거의 사라질 뻔한 정신분석의 부활이 자리 잡고 있다.

라이히의 문제의식은 인간은 왜 자기를 억압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까라는 질문이다. 프로이트도 같은 질문은 한다. 인간은 왜 자기를 괴롭히는 기억을 잊지 않는 것일까? 프로이트가 죽음충동으로 설명하는 것과 달리 라이히는 욕망을 사회적인 것으로 보았다. 아이가 아버지를 만나지만 그 아버지는 노동자인 아버지요, 관료인 아버지요, 고문관인 아버지이다. 아이의 아버지이기 전에 사회적 권력관계를 내면화한 존재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국가를 배제하고 마르크스는 가족을 배제한다. 파시즘은 국가와 가족을 결합한다. ‘카리스마 있는 아버지’ ‘독일이란 어머니등 사회적인 것에 사적인 이름을 넣으면 사람들은 움직인다. 아이는 아버지를 내면화 하면서 사회의 위계질서도 내면화 하고 작업장에서 아버지에게 복종하듯 상사와 자본가에게 복종한다. 독일 국민은 히틀러 한사람에게 사기 당한게 아니라 자기 욕망을 따른 것이다. 어머니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아버지로 치환되는 선동가에게 복종한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일과 사생활은 욕망이 층위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라이히는 프로이트의 리비도보다 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에너지로서 성 에너지의 펼쳐짐이 가족과 국가라고 보았다. 라이히의 혁명성은 여기에 있다. 욕망은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것과 맞닿아 있다! 라이히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가 만든 영토를 부수고 인간을 새롭게 만들었다. 우리의 존재는 사회적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노동자로 태어나는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노동자이고 아버지로 태어나는게 아니라 관계 안에서 아버지인 것이다. 이러니 정신분석에서도 파면(?) 당하고 공산당에서도 쫓겨난다. 노동자의 계급성을 부정하고 아버지를 부정하는 신성모독을 당시 정신분석과 공산당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달리 말하면 라이히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아버지의 질서를 힘들어 하면서도 떠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2. 독송수업(절기서당 중에서 가을/ 조용남, 이성남샘)

-중년, 인생의 후반기를 다시 열다!

가을은 발산의 방식의 아니라 수렴의 방식으로 벡터를 내부로 돌려야 하는 금화교역(金火交易)으로 불리는 시기이다. 화의 기운은 저절로 없어지는게 아니라 금의 기운에 밀려 사그라든다. 가을은 사람에게는 중년의 시기이다. 자아가 외부와 관계를 맺고 이에 적응을 해 가는데 형성되는 행동양식을 페르소나라고 할 때 중년기에는 이 페르소나와의 동일시에서 벗어나는 욕망에 시달리게 된다. 직업이나 직장에서 관계와 가족간에 관계가 변하게 되면 그에 맞게 자아는 새로운 장에 접하게 된다. 퇴직이나 해고, 이혼이나 사별 같은 큰 사건 뿐만 아니라 조직의 시스템이 예전과 달라지고 자녀들이 독립을 하게 되는 자잘한 상황도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새로운 장은 새로운 만남이고 새로운 관계이다. 이전부터 계속 되었던 관계도 새롭게 정립되는 것이다. 구운몽의 양소유가 처첩들과의 관계를 도반의 관계로 새롭게 만든 것도 그에 해당된다.

 

가을의 절기들 -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추(立秋) - 양력 87일 전후, 申月

초후(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다)/중후(이슬이 진하게 내린다)/말후(쓰르라미가 운다)

처서(處暑) - 양력 823일 전후, 申月

초후(매가 새를 많이 잡았다 늘어놓는다)/중후(천지가 쓸쓸하다)/ 말후(논벼가 익는다)

백로(白鷺) - 양력 97일 전후, 酉月

초후(기러기 떼가 날아온다)/중후(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간다)/말후(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

추분(秋分) - 양력 923일 전후, 酉月

초후(우뢰소리가 비로소 걷히게 된다)/중후(동면하려는 벌레가 구멍창을 막는다)/말후(땅위의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

한로(寒露) - 양력 108일 전후, 辰月

초후(기러기는 초대받은 듯 모여드다)/중후(참새가 줄어들고 조개가 나돈다)/말후(국화 가 노랗게 핀다)

상강(霜降) - 양력 1023일 전후, 辰月

초후(승냥이가 산짐승을 잡는다)/중후(초목의 잎이 누렇게 ᄄᅠᆯ어진다)/말후(동면하는 벌 레가 모두 땅으로 숨는다)

 

3. 글쓰기 수업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1장 교환된 증여와 답례의 의무, 2장 증여체계의 발전) 채운샘 강의

증여론의 부제목은 태고사회에서의 교환의 형태와 이유로 번역 되었다. 본문에서는 태고사회를 원시사회로 번역한다. 현대사회와 원시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 중 하나가 증여이다. 그것은 현대사회에서도 원시사회가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것이 잠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모스는 증여를 경제적인 것으로만 제한하지 않았다. ‘준다라는 행위를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로 제한한 것을 거부하고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여러 차원을 함축하고 있는 기초개념으로 증여를 제시한다.

여기에는 모스의 문제의식이 있다. 사유재산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부를 축적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반대로 부를 축적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자본주의는 모든 가치를 화폐화 한다. 자동차 몇 대를 팔면 영화 한편이 내는 수익과 같아지는지 우리는 바로 알 수 있다. 원시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물물교환이 있다. 단지 이런 물물교환은 현재와 달리 사용가치에 대한 교환이지 교환가치에 두지 않는다. 원시사회는 이 물물교환과 증여가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 전적으로 증여가 물물교환 상위에 있다. 증여는 사용가치와도 상관없다. 모스는 단순한 물물교환에서 현재의 복잡한 교환체계로 발전 했다는 관념을 거부한다. 주고받음은 복잡한 사회적 사실이 담겨 있고 모든 사회는 그 나름대로 복잡한 사회인 것이다. 증여가 보여주는 사회적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적 삶의 모든 차원이 있다(법률, 정치, 문화등) 둘째, 증여는 집단을 표현하는 정체성이 있다. 그렇게 때문에 증여는 자발적 의무개념을 담고 있다. 자발적 의무로 주고 받고 되돌려줄 의무가 순환체계를 이루어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다. 거기에는 단순한 이타성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투쟁이 있다. 선물을 줌으로 우위에 서고 받은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을 줌으로 다시 관계를 역전 시키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물은 언제나 사용가치를 뛰어 넘어 주는 사람의 인격(?)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런 선물을 거절하거나 초대를 거절하면 관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전쟁이 시작된다.

모스는 가격으로 모든 가치를 환산하는 자본주의 공리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제시한다. 포틀래치와 같이 자신의 부를 경쟁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증여의 끝장을 보여주는 것이 권위를 더 크게 만드는 사회는 확실히 소유를 만고의 진리로 알고 있는 사회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크다. 과연 소유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인지 소유로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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