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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8주차 수업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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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난 작성일16-09-12 00:49 조회2,5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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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써야 한다는 걸 깜빡 잊고 있다가 이제야 기억을 더듬어가며 씁니다 ㅠㅠ 


1교시. 융의 [원형과 무의식] ..... 근영샘 


지난 시간 막바지에 상징으로서 모성원형과 부성원형을 이야기하면서 프로이트가 아버지-아들의 관계에 집중했던 데 비해, 융은 오히려 어머니-딸 관계에 더 관심을 보였다는 점을 지적했었습니다. 모성원형은 결합시키는 힘, 흡수하는 힘,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 소유욕과 상통한다고 했습니다. 모성성의 비대는 겉으로는 자녀와 주변에 대한 희생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종종 가차없는 권력의지로 전환된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모성적 권력의지 하에서 성장한 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먼저 에로스가 과도하게 증가하는 경우입니다. 에로스는 모성원형이 성적으로 드러난 것일 텐데요, 이 경우에는 품어내는 힘으로서의 모성원형이 소실되어 오직 에로스만을 추구할 뿐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모성본능을 거부하고 파괴하려 하지요.

두 번째는 어머니와의 동체성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이 딸들은 자기의 인격을 어머니에게 완전히 투사하여 어머니에게 의존하고 숭배하고 복종하고 충성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존과 충성은 어머니의 딸에 대한 의존과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에서 둘의 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딸은 자기의 모성본능과 더불어 에로스마저 완전히 상실하는데 이러한 완전한 무력함이 오히려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지요. --;;

세 번째는 어머니에 대한 저항입니다. 부정적 모성 콤플렉스의 전형으로, 여성적인 것과 모성을 무조건 부정하지요. 이 딸들의 모토는 무슨 일을 해도 엄마와 같아지는 것은 안돼입니다. 그러나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말해주듯 이런 생각은 여전히 어머니에게 강하게 종속돼 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들은 어머니에게 저항하는 데 에너지가 집중돼 있어 막상 자기의 삶을 구성하는 데는 몹시 서투릅니다.       


융은 프로이드와 7년간 마치 아버지-아들과 유사한 관계 속에서 학문적 교류를 합니다. 그러나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을 계기로 프로이드와 완전히 결별하고 자기의 길을 가지요. 프로이드는 모순 없는 자아를 지향하며 충동을 현실적 대상에 묶어두는 것을 치료의 목표로 합니다. 융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융에게는 표상 아래 숨겨진 원형을 탐색함으로써 근본적인 욕망과 충동의 지점을 알아내어 이를 삶에서 재배치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가 됩니다.

, 프로이드가 자아(Ich)실현을 목표로 했다면 융은 자기(Selbst)실현을 목표로 합니다. 존재는 애초에 모순적인 것이며 대극의 관계에 있는 의식과 무의식이 둘 다 있어야 활동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지난 시간을 잠깐 상기하자면, 프로이드에게 불쾌란 자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흥분 혹은 긴장의 상태인 반면, 융에게 불쾌는 바로 이 대극의 멈춤이라고 했습니다. 융에게 자아의 변신이란 무의식과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 그렇다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말들 -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그리고 자기(Selbst)를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는 무의식의 여러 층위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아의 변화에 따라 이루어지는 무의식에 대한 태도를 일컫는 것이기도 합니다. , 자아의 눈에 비치는 무의식의 여러 모습들인 거죠.


먼저,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신화적 상징으로는 물, 어둠 등이 될 수 있겠지요. 자아()의 측면에서 볼 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열등한 인격, 자아가 내 것이라고 인지하거나 인정하지 못했던 측면입니다. 그렇기에 그림자를 보는 것은 두렵고 불쾌한 일로 다가옵니다. 자신의 절망감과 무능력을 상기시키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자아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은 타자(내안의 타자/집단무의식)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결국 불쾌하고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이것(그림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문제 해결의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입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내 안에 있는 대극적 성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회적 인격(페르소나)로 살아가지만 내 안의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로 인해 나의 페르소나가 해왔던 성역할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남성 또는 남성적 역할 속에 이성과 합리를 바탕으로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아니마의 작동을 보게 될 텐데, 이는 흔히 자기 기분을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표출됩니다. 여성 또는 여성 역할로 감정과 비합리를 바탕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모성적 성격의 원칙과 고집을 내세우는 아니무스의 출현을 보게 될 겁니다.

나의 대극에 있는 존재를 목격하면서 나의 보잘 것 없음에 대비되는 무의식에 대한 신성시가 이루어집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노인(, 현자)과 어린이의 이미지입니다. 무의식에 대한 신성시가 지나치면, 즉 어린이가 신/현자에게 완전히 흡수돼 버리면 자아를 상실하고 현실적 삶을 상실하게 됩니다. 흔히 정신분열이라고 하는 것이 이 경우입니다.

신화나 동화에 나오는 버려짐’ ‘버림받음의 테마가 중요한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주인공(어린이)은 자립하여 성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고는 성인이 될 수 없지요, 따라서 온전한 성인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버림받는 것, 버려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건인 것입니다.

 

융은 환자 자신이 자기에 대해 기록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환자가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하는 것, 또 철저히 버림받게 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고 보았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자기 윤리를 구성할 수 있다면 그는 의사를 떠날 때가 된 겁니다. 고통은 언제나 삶에 내재하는 것이되, 삶이 고통 앞에 주도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삶과 고통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 될 테지요.

무언가 짜증스럽고 동일한 일들이 일상에서 반복되고 있다면 그것은 떠나야 할 순간이 왔다는,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랍니다. 무의식이 내게 주는 가장 큰 힘은 나를 떠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새로운 길을 열도록 추동하는 것이니까요.

 

 

2교시. 별자리 서당

 

가을 별자리인 서백호의 묘,,,삼과 겨울 별자리인 남주작의 정,,,,,,진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각 방위를 대표하는 7개의 별자리 외에도 그것들을 둘러싼 크고 작은 별들은 인간사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우물을 나타내는 별도 있고 하늘의 변소도 있고 심지어 오줌방울 별도 있다는 군요. 별들에 관한 숱한 서사들은 별 자체가 아닌, 별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서사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3교시.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문탁샘

 

먼저 밴드별 에세이 진행상황에 대한 점검이 있었습니다. 짧게 하시겠다 해서 정말 짧은 점검인 줄 알고 적지 않고 듣다 보니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ㅜㅜ

어쨌든 샘께서는 에세이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에세이를 대하는 우리 모두 마음에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이번 학기에 배운 네 가지 텍스트는 모두 당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나왔다. 그들은 그 문제의식 속에서 선행 텍스트를 새롭게 읽었고 거기서 새로운 생각과 글들이 나왔다. 매번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독해다. 그것이 사유다. 생각을 밀고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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