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대중지성 5주차 2교시 조별 토론 후기 (3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감로 작성일19-03-25 12:53 조회1,166회 댓글0건본문
3월 19일 화성 대중지성 2교시
계몽의 시대 3조 토론 후기
제출자: 이진아
이번 시간에는 <계몽의 시대> 4장 -근대적 ‘앎’의 배치와‘국수’에서 각자 발췌하고 필사해 온 텍스트를 공유한 뒤 함께 토론했다.
토론 중 다루었던 내용 중 몇가지를 요약해 보면:
1. 근대교육의 분절화가 생산 및 경제분야의 분업화, 전문화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것. 이러한 분업/분절된 학문지식과 우울증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함. (분절-전체로부터 떨어짐-우울감 유발)
2. 앎에서 신체성이 증발된 것이 근대교육의 특징이다. 또한 그 주요한 배경으로 지식이 언어의 영역에서만 다뤄지게 되었던 점이 이야기 됨. 근대 이전의 신체성 (지행합일)과 지금 우리시대의 신체성이 다름. - 이러한 신체성에 대한 이해는 니체의 철학과도 상통하는 지점이다.
- 근대교육에서 수학의 특권화: 근대 이전엔 술이 학으로격상되었고 통계수치로 뒷받침 되어 검증될 수 있는 지식에 권위를 부여하고 인정하게 됨.
- 근대지식은 효용성, 실용적 이익의 유무로 가치를 매기고, 어떤 국적(국경)을 가진 개인의 소유물 (사적 소유)이되었다.
- 근대에 들어오면서 당시 신채호를 비롯한 근대조선의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이 한문을 중국의 것이라고 배격함으로써, 오랜 세월 우리 문화의 중요한 자산이었던 한문이폐기되어 버린 것은 어리석은 자기부정이자 자기 파괴였고 분서갱유에 맞먹는 오류로 볼 수 있다.
- 한문이 우리 문화의 자산으로서 조선의 문장력이 탁월하였기에 청나라를 창건한 누루하치가 한반도를 접수하려 했을 때에 조차도, 한반도는 중화에 흡수되지 않았던 한반도의 특이성도 이야기 됨. (협상테이블에서도 글로 협상이 이루어질 때에도 조선측 협상가들의 뛰어난 문장력으로 청나라의 대표들마저 감복시켰던 사례 등.)
-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일부 연예인들의 비도덕성: 과거시대에는 도덕이 곧 지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간주했고 이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의 인식의 DNA에 각인되어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격/도덕에 대한기대감으로 투영되지만 실제는 오늘날 돈, 지위, 명성이곧 권력이 된 것일 뿐이다.
- 흥미있는 토론 후, 2교시 말미 즈음, 나는 근대지식의 사적소유에 관련해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사실은 계급사회에서 문자 등의 지식을 사적소유했던 점을 문제제기 했다. 그런데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격한 반론과 열띤 논쟁을 일으켰고~~~^^;; (나, 공공의 적?) 결국은 주어진 시간제한과 문제제기 타이밍이 시의적절하지 않았음 등을 감안, 해당 이슈를 글로 조리있게 정리하기로 하고, 우리의 2교시 토론은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조원들의 투지가득한 상기된 얼굴에서 우리 모두가 토론을 즐겼다고 믿어의심치 않으리....
@ 추신: 제기했던 문제는 ‘지식의 사적 소유는 비단 근대에만 한정되었던 것은 아니며, 반상이 엄연했던 계급사회인 18c 조선의 사대부들도 지식의 사적 소유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계몽의 시대> 197쪽에서 곰샘께서 ‘특정계급에 한정되었던 지식’이라고 언급하셨는데, ‘사적소유물로서의’ 근대 지식의 특성은 ‘국경’이라는 표상이 씌워졌다는 점, ‘실용적/경제적 이익’으로 환산가능한 가치이길 기대되고 요구된다는 점에서 특정 계급에 ‘한정소유’되었던 지식과는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누구든 배울 수 있다는 ‘자유’의 속내에 누구든 배워야 한다는 ‘강제와 구속’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었다”해도, ‘앎의 민주주의’는 매우 가치롭게 다가왔기 때문에 토론시간에 문제제기를 했던 것 같다. 반상과 계급질서라는 시대적 사회적 조건과 한계를 전제로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 또한 몹시 애정하는 18c 백수지성들에게 ‘앎의 민주주의’까지 기대했던 건 욕심이 과했던 걸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