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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소논문 5주차-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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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서진 작성일19-11-11 21:40 조회8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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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우상

한동안 서로 마음을 나누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무척 좋아했고 따르던 친구였는데 인생의 롤 모델로 삼고 싶을 만큼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그 친구에게 실망스러운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던 그 친구의 모든 면이 어느 순간 그렇게 허술해 보일 수가 없었다. 마치 그 친구가 일부러 나를 속이기라도 한 듯이 난 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만든 틀에 그를 끼워 맞췄고 이제 아니다 싶으니 그를 매도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간관계에서 극단적인 면이 꽤 있다. 20년 넘게 절친이었던 친구와는 순간 욱하는 마음에 절교를 선언했고, 친정엄마와는 한동안 연락을 끊은 적도 있었다. 모두 전날까지만 해도 별 탈 없이 연락을 주고받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사건까지. 나는 그 이후로 꽤 긴 후폭풍에 시달렸다. 그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는 죄책감에 잠 못 이룬 날도 많았고, 더 세게 내 분노를 표현하지 못해 분한 마음도 있었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나도 잘 따랐던 사람들인데, 나는 이들에게 피해의식이 있다. 그들이 나를 마음대로 조종하고 억압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이런 식으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다소 폭력적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그들보다 약하니까. 좀 서툴기는 했지만 내가 그들에게서 자유로워지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나의 마음을 남들이 공감해주길 바랬다. 그들이 정말 이상한 사람이고 너한테 문제없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 대한 모든 게 부정되고 의심이 됐다. 나는 그들에 비해 나은 게 뭐지? 내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그들을 악으로 규정할수록 내가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그들을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정도로 분석하고 재단해서 그들을 나쁜 인간으로 몰아세워도 나에게만 나쁜 사람이었다. 어느 누구도 내 감정과 같지 않았고 나와 같은 감정의 크기로 분노해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은 절대 악이 되진 않았다.

나는 주로 날 리드해주는 사람에게 끌리는 편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거침없는 사람. 그래서 어디서도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제나 잘 쪼는 타입인 내게 그들은 우상이었다. 위에 세 사람을 나는 나보다 훨씬 우월하고 강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또 싫기도 했다. ‘친구와 있으면 나도 우월해지는 느낌이 좋았고, 중요한 결정은 그들이 해주니 묻어가는 편안함이 있어서 좋았다. 물론 종종 무시 받는 느낌은 감수해야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할 말은 했고, 그들에게 당하지만도 않았다. 주변의 지인들은 오히려 나의 공격적인 성향을 문제 삼기도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 비로소 하게 되었다. 나는 근데 왜 그 모든 기억들을 하나의 감정으로 퉁치고 그들을 몰지각한 사람으로 몰아야 직성이 풀리는지 모르겠다.

난 내가 좀 더 나은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자기 주장을 할 때 거침없고 당당하며 자신감 넘치는 사람. 하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고 웬만하면 적은 만들고 싶지 않다. 이런 완벽한 사람이 주변에 있겠냐만은 적어도 나는 그런 지향점을 가지고 살아왔던 거 같다. 그래서 남들을 평가할 때도, 자기검열을 할 때도 항상 모지라고 못난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들과 멀어진 것에 대해서는 아쉽지 않다. 다시 돌아가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 같다. 근데 왜 오랜 기간 동안 그들을 가슴에 품고 많은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도 이해되지가 않는다. 아쉽다기 보다는 억울함? 내가 그들에게 너무 쉽게 휘둘렸다는 생각? 아님 내가 먼저 이별의 칼을 휘둘렸다는 후회? 여하튼 나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그 상황을 곱씹고 그들을 계속 생각해 왔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내가 자유롭지가 않다. 쿨하지 못하고 강하지 못한 내가 너무 싫다. 묵은 감정에 연연해하는 내가 못마땅하다. 근데 참 이런 내가 싫으면 나한테도 화가 나고 분노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그들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방향을 바꿔 나한테도 화가 나야 하는데 어쩔 수 없었어. 네 탓만은 아냐. 그들에게도 문제는 있어.’ 라고 상황을 합리화 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나의 감정의 패턴들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내 진짜 욕망을 생각해보고 싶다. 하지만 나만 생각하고 나만 파다보니 자책과 분노만 쌓일 뿐 아무리 파도 보이지가 않는다. 수많은 관계와 수많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어 존재한다는 것. 니체의 필연성과 우연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나와 세계를 긍정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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