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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5주차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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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진 작성일19-11-11 23:58 조회1,0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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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당 화요 대중지성 / 5주차 서론 쓰기 / 2019. 11. 11 / 최희진


자기 자신에게 시달리는 인간


  여러 가지 제약은 있었지만 나는 최대한 이기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효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아버지는 한평생 나보다 더 이기적으로 사셨지만 온가족의 돌봄을 받으셨다. 우리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이타적인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가족의 생활비를 벌었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나는 학자금 대출 한 푼 받지 않고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지 3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으셨다. 신장 이식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평생 혈액 투석을 받아야 했다. 혈액 투석을 받을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말 못할 고민에 빠졌다. 자식이라면 아픈 어머니에게 신장 이식 수술을 해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올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수술비가 없었다. 그게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돈이 없다는 이유가 신장 이식 수술을 해 드리지 못하는 정당한 이유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1년을 보냈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혈액 내에 독성 수치들이 높아지면서 쇼크를 일으킨 거였다. 장의사는 가족들에게 수의를 입은 어머니를 보여주었고 손을 잡아보라고 했다. 차갑고 파랗게 굳은 손을 만지며 놀랍게도 나는 공포를 느꼈다. 자식이라면 죽은 어머니를 보고 슬픔이나 그리움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공포를 느낄 수 있지, 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더 괴로웠다.


  장례식을 마치고 어머니와 같이 살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공포가 찾아왔다. 어머니의 흔적이 있는 곳마다 생전의 어머니가 있었고, 동시에 시체가 된 어머니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공포는 약해졌지만 다른 감정들이 올라왔다. ‘내가 어머니에게 신장 이식을 해주었더라면 어머니는 분명 더 살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렇게 못살게 굴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 거다.’ 아버지에게는 원한이 치솟았고, 어머니에게는 죄책감을 느꼈다. 살아계신 아버지에게는 원망을 쏟아낼 수 있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은 점점 더 또렷해져 갔다. 지인들은 어머니를 잃은 나를 위로해주었지만 나는 나의 비겁함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것 같아서 움츠러들 뿐이었다. 얼마 후,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저런 이유가 겹쳐 나는 그 집을 떠나 아무런 연고가 없는 도시로 이사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피로하다고 느껴질 무렵, 어쩌다 타이밍이 그렇게 됐는지 출판사에서 외주를 받아서 하던 일이 대폭 늘어났다. 집 밖을 나가지 않고도 경제 활동이 가능해진 거다. 그때 내 주변의 관계라곤 같이 사는 남자친구, 졸지에 어머니의 유산이 돼버린 강아지 한 마리,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구 몇이 전부였다.


  그런 생활 패턴으로, 하루 종일 종이만 쳐다보며 혼자서 문제를 내고 문제를 풀며 6년을 지냈다. 오늘도 어제랑 비슷하게 엄마 생각이 나는지 스스로 체크했다. 나중에는 슬픔과 그리움도 생겼지만 내가 주로 느낀 감정은 미안함, 후회, 떳떳하지 않음, 죄책감, 부채감 같은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나는 비겁한 사람임이 분명해져갔다. 그 생활 패턴이 깨지게 된 계기는 어쩌다 타이밍이 또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출판사에서 외주를 받아서 하던 일이 뚝 끊겼을 때였다. 더는 집에서 할 일이 없어지자 나는 집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니체를 읽었는데, 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구절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집안에 틀어박혔던 시기에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인류가 지금까지도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중대하고도 무시무시한 병, 즉 인간이 인간에게, 자기 자신에게 시달리는 병이 시작되었던 것이다.”(니체, 『도덕의 계보』, 연암서가,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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