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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기 네번째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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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맥박 작성일19-11-12 01:28 조회9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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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당 화성 / 4학기 소논문쓰기 / 2019. 11. 12. 강내영

자기배려의 확실성을 찾아서
(부제 : 만년 병자 니체 추천 ‘병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서론. ‘자신’을 위한 선택

사건1. 올해 공부를 해 보겠다고 스스로 발심한 것은 일대 사건이다. 관뚜껑 닫기 전에 삶을 돌아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공부를 하겠다고 한해를 고스란히 투자한 오늘은 평생에도 손꼽을 일 중 하나일 터이다. 그러나 본디 이렇다 할 공부습관이 없던 나는 항상 부산스러웠고, 언제나 사유의 옆길에서 망상하고 놀았다. 또 불시에 사회로 복귀할지 모른다는데서 오는 불안과 조급증은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음미하기 어렵게 했다. 무엇보다 해석불가한 텍스트를 마주할 때면 ‘까막눈’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소환되면서 설움에 찬 어르신에 빙의하기 일쑤였다. 풍선처럼 부푼 기대와 화는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 했다. 이 패턴이 반복되더니 급기야 무기력이 왔다. ‘공부는 무슨..’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무엇 때문에 이걸 하는 걸까?’ 평소처럼 누워 있었지만 데굴데굴 재미를 품고 있던 게으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사지가 무거웠다.  

사건2. 아프다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지난 세 번의 학기를 거치는 중에도 그런 체험을 했다. 정신적으로 ‘지친다’, ‘힘들다’, ‘무기력하다’, ‘권태롭다’, ‘귀찮다’, ‘우울하다’라며 신음하는 말을 들은 것이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스스로를 병자라고, 아프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들의 커밍아웃에 놀란 것은 표면적인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황스러웠던 것은 심지어는 나조차도 사건1의 경험으로 무거운 감정들이 병이 될 수도 있겠구나하고 짐작한 바 있었는데 지인들이 약으로도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며, 살기 힘들다고 외칠 때까지 “세상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모...”라고 다시 한번 대수롭지 않게 나나 타인의 감정을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게 넘겼다는 사실이다. 그 일은 나에게 ‘책임’을 물었다. 도와야 할 친구들을 제때 돕지 못했다는데에서 오는 죄책감. 그러나 친구를 위한다던 행동은 과도한 의미부여와 “세상 이렇게 살 텐가!”라는 나의 꼰대짓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상처가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사건3. 십 수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은 인생 처음 맞닥뜨린 필연적 사건이었다. 남은 두 식구를 어머니 없는 표가 나지 않도록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병에 대한 두려움, 환경과 먹거리에 대한 불신, 집안일에 대한 과도한 의무감은 되려 그런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남은 식구들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을 동시에 키우고 있었다. 급기야 어머니 살아 계셨을 때 ‘누가 더 잘했네’, ‘못했네’, ‘서운하게 했네’ 등등 보기만 하면 예민하게 으르렁 댔다. 동생은 지겹다는 듯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는 생활을 했고, 나는 분기탱천한 채로 독립을 했다. 제일 심각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오매불망 두 자식을 기다리시... 는 것이 아니라 보름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비추며 제일 심각한 방황을 하셨다. 기어이 동생이 국외로 나가고 우리 세 식구는 정말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살기 시작했다. 그 시기 나는 여느 때보다 또렷한 정신으로 과거 어머니께 무관심하게 대했던, 무지하게 치료시기를 놓쳤던 후회의 순간들을 곱씹었다. 욕하고(원망하고), 울고(자책하고), 잠들기(망각하기)를 여러 달 반복했고, 몸에 이상이 오기 전까지 꼬박 반년 이상을 시체처럼 누워 살았다.

‘사건3’은 인생을 가르는 하나의 필연적 사건이었다. 이전의 나는 세상물정 모르는 맹꽁이요, 부모님 그늘 아래의 ‘어른아이’ 사람이었다. 필요한 것은 때를 쓰거나, 화를 내거나 스스로 열심을 다해 무언가를 손에 넣는다는 것이 무언지 모르는 소위 ‘빨대’라 부르는 부류였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아가는 일본의 중장년 히키코모리와 우리나라의 히키코모리를 비교하는 뉴스들. 아마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나는 뉴스의 한 꼭지를 장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호막 같던 어머니 사후 혹독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 전문지식을 갖추고 씩씩하게 업무에 대처하는 것에 반해 난 뭘 해야할지를 몰라 멀뚱거리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리고 내가 뭔가 한참 모자라고 어리숙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1년 동안 수 번의 직장을 옮겼고 그때마다 (강제적으로) 나를, 삶을 돌아 봤다. 업과 같은 무감각한 성격, 주변에 대한 무관심, 나의 무지가 자타에 주는 상처, 무엇보다 그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매번 같은 감정의 패턴이 돌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머리가 멈추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호히 선언해야 했다. 제대로 된 사회인이 되기 전까지 엄마를 보고 다시는 슬퍼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망각 능력을 한껏 키워 환자였던 어머니를 무의식 속으로 깊이 밀어 넣었다. 하지만, 망각은 뇌의 기억력 이외 육신이 기억하고 있는 감정까지 컨트롤 할 수 없었다. 당시 정신적 고통과 함께 이상이 생겼던 내 장기들은 (심장, 위, 대장, 간 등등) 여전히 ‘사건’을 만나면 통증과 탈이 나는 것으로 반응을 해 오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벌어진 ‘사건2’는 ‘사건3’ 이후 망각이 미처 제어할 수 없었던 신체가 기억하는 ‘후회’와 ‘분노’, ‘자책’의 3종 세트를 다시 끌어 올린 사건이었다. 적어도 나의 ‘의식’ 상에는 오늘날 감정패턴은 ‘사건3’ 이전에는 찌꺼기가 남지 않는 것들이었다. 특이한 점은 언젠가부터 ‘사건3’의 결과를 두려워하는 반대급부로 과도한 (혹은 오지랖과 같은) ‘동정과 연민’이 추가 작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사건2’에서 급부상한 문제는 ‘동정과 연민’의 문제가 되는 듯 했다. 사건3의 트라우마로 후회할 사건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고장난 전구처럼 나의 무의식이 오지랖에 자꾸 불을 들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헌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도 문제의 근원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동정과 연민을 추동하기 위해서는 ‘책임지지 않으면’, ‘신경쓰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 할 관계’라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다. 신경쓰지 않으면 또다시 긴 자책을 낳을 관계. 챙기지 않으면 후회와 분노와 자책의 감정 3종 세트를 돌리고도 남을 영향력 있는 관계. 가족과 친척, 지인들. 바로 그들이라고 인식되는 순간 본래 무관심한 성격은 책임감►오지랖(동정과연민)►꼰대질►분노►자책►망각의 패턴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사건1’이 내게 갖는 의미가 있다. 공부에 대한 착한 이미지와는 하등 관계없는 ‘사건3’ 이후 오래간만의 이기적인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건2와 3’까지도 모두 긍정하게 해 주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1에서부터 3까지 관통하고 있던 것은 근본적으로 ‘책임’의 문제였다. ‘사건3’ 이후 내가 책임이라는 단어를 짊어질 때마다 대부분 실패에 이르렀던 것이다. 조금의 불편과 서운함만 있어도 지금껏 썰을 푼 그대로 타자를 원망하고 스스로 자책하는 결과로 빠르게 치달았다. 그런 점에서 ‘사건1’은 좀 달랐다. 올해의 공부는 온전히 나 스스로 결정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되는 과정에도 지키겠다는, 겪겠다는 의지나 책임감이 유지되고 있었다. 과정에서의 갈등이나 어려움도 부정적으로 지속되게 끌고 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나에게 권유나 부추김을 하여 공부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 오롯한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닥쳐 누군가를 탓할 빌미가 없었고, 어떻게 보아도 내가 겪는 것이 옳다는 명백함 밖에 없었다. 온전히 받아 들여야 했기에 ‘부정’의 여지도 있을 수 없었다. 

 ”덕은 영혼의 건강이다“ 이 말이 올바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이 고쳐져야 한다. ”너의 덕은 네 영혼의 건강이다." (...) 그리고 그때서야 영혼의 건강과 질병에 대해 숙고하고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저마다의 덕’을 ‘그들의 건강’에 포함시킬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즐거운 학문> 단편120.영혼의 건강 p.195~196』

니체에게서의 고귀한 자들은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성찰하기 위한 자기배려,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한 배려를 실천했다. 그런 건강한 자기배려 상태에서 선택한 가치생성만이 과정에서의 고통까지도 우리를 긍정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배려에 능숙한 그런 자들에겐 죽음조차도 어떻게 맞아들일지의 ‘선택’ 사항이 된다. 또한, 니체는 그들의 도덕과 노예들의 도덕을 계보학적으로 사유하며 그로부터 병이 발생하는 매커니즘과 병에 대한 기준, 아픔이나 고통에 대한 인식도 뒤집는다. 종국엔 이기적인 귀족들의 자기배려 실천에 건강의 답이 있음을 깨닫고 니체는 만년병자 신세에서 잠깐의 기력을 회복하던 사이 <즐거운 학문>을 쓴다. 우리가 이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환경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고통스러워했으며, 날카롭게 관찰했던 니체가 긍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의 기준과 자신이 ‘아프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다시금 설정하고 스스로의 자생능력을 믿고 활성화시키려는 시도를 해 보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됐다. 나는 금번 에세이를 통해 ‘자신을 위한 선택으로써의 책임만이 우리를 긍정에 이르게 한다’는 설정으로 니체가 말하는 자기배려를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가 ‘아프다’고 믿는 것, 니체가 진단하는 병과 병자의 기준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아픔'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새롭게 할 것인지 모색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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